‘간호조무사 양성’ 특성화고 흔들어 누가 이득을 얻나

한겨레 2023. 4. 19.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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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법 제정 문제가 느닷없이 특성화고와 직업교육을 흔들고 있다.

정부·여당이 지난 11일 내놓은 간호법 중재안에 '간호조무사 학력 요건은 특성화고 간호 관련학과 졸업 이상으로 한다'는 내용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동안 별 문제 없이 잘해온 특성화고 대신 전문대에 간호조무사 양성을 맡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정은 이에 대해 의료계는 물론 교육계와 납세자인 국민을 납득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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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직업계고 간호교육교장협의회, 고등학교간호교육협의회, 한국간호학원협회 관계자들이 지난 18일 오전 국회 앞에서 전문대에 간호조무과 설치를 반대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김희영 | 고등학교 간호교육협회 회장·화곡보건경영고등학교 교사

간호법 제정 문제가 느닷없이 특성화고와 직업교육을 흔들고 있다. 정부·여당이 지난 11일 내놓은 간호법 중재안에 ‘간호조무사 학력 요건은 특성화고 간호 관련학과 졸업 이상으로 한다’는 내용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현행 의료법과 국회에 발의된 간호법은 모두 간호조무사의 학력 요건을 고등학교 졸업 인정자로 규정하고 있으나 당·정 중재안에서 이를 ‘고교 졸업 이상’으로 바꾼 것이다. 이는 전문대에 간호조무과를 설치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의미로, 오랫동안 정치권을 대상으로 로비를 벌여온 대한간호조무사협회의 영향력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전문대에 간호조무과가 생기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우리나라 중등 직업교육 체계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일이다. 전문대에 간호조무과가 생긴다면 학력에 따른 차별이 생길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받은 교육도, 자격증도 같은데 단지 고졸이냐, 대졸이냐에 따라 임금 등에 차별을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 조금이라도 나은 대우를 받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전문대를 택하는 경향이 늘어난다면, 결국 중등 직업교육을 책임지는 공교육기관인 특성화고가 위기에 빠지고, 직업계고 중심의 우리나라 중등 직업교육 체계가 흔들리게 된다. 학력 인플레이션에 따른 사회적 부담은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러므로 이 문제는 단순히 직능단체 간 갈등을 조정하는 차원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와 관련된 교육 비전의 측면에서 고민하고 결정해야만 한다.

전국의 간호조무사 양성 직업계고는 총 59개교, 학생은 8000명을 훌쩍 넘는다. 이들 학교는 보건복지부가 정한 까다로운 교육과정에 맞춰 이론과 실기, 현장 실습 등을 진행하고 있다. 또 3년 주기로 ‘간호조무사 교육훈련기관 지정평가제’를 통해 보건복지부의 인증을 받고 있다. 특성화고의 관련 학과를 졸업하지 못한 성인을 위해 마련된 간호조무사학원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학생들의 질 관리가 철저히 이뤄진다. 현행법 체제에서 양성된 간호조무사들에게 실력이나 수준의 문제가 있다는 평가는 들어보지 못했다. 현재의 간호조무사 양성 시스템에 구조적인 하자나 실행과정의 미비점이 있다는 지적도 딱히 제기된 바 없다. 간호법에서 간호조무사 자격 기준을 현행 의료법과 동일하게 규정한 것도 현행제도에 문제가 없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간호조무사는 의료체계를 떠받치는 기둥 중 하나다. 이들에 대한 교육을 내실화하고 강화하는 것은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러나 양성 방식을 전면적으로 변경하는 데는 반드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동안 별 문제 없이 잘해온 특성화고 대신 전문대에 간호조무사 양성을 맡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정은 이에 대해 의료계는 물론 교육계와 납세자인 국민을 납득시켜야 한다. 그런 과정이나 절차를 생략한 채, 무엇보다 현행 간호조무사 양성기관인 특성화고와 한마디 논의도 없이 슬그머니 중재안이라는 이름으로 내놓아서는 안 된다.

학력으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는 우리 사회가 나가야 할 방향이다. 또래보다 먼저 진로를 결정하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특성화고 학생들을 칭찬하고 지원해야 할 책임이 어른들에게 있다. 지금이라도 정부·여당은 특성화고와 직업교육 관계자들의 우려를 새겨듣고, 간호조무사 자격 조건을 변경하려는 시도를 멈추기 바란다. 거대 직능단체들의 정치적 싸움 때문에 180만 특성화고 학생들의 미래가 좌절되지 않기를, 우리나라 직업교육이 무너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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