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4대강 보에 물 많다고 물 부자 될까
[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4대강]
남종영 | 기후변화팀 기자
“오늘 아침 나는 이 위대한 인류의 업적을 처음 본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이곳에 와서 댐을 보았고 댐에 압도당했습니다.”
1935년 미국 콜로라도강 후버댐 앞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은 길이 남을 연설을 했다. 후버댐은 높이 220m가 넘는 당시 세계 최대의 댐이었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승리를 상징하는 증거였다. 옛 소련 스탈린이 말했듯, 당시 사람들은 “바다로 흘러가는 물은 버려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댐의 매끄러운 곡선과 회색빛 콘크리트의 육중함에 아름다움을 느끼던 시절이었다. 소설가 월러스 스테그너는 1946년 이렇게 썼다. “콘크리트의 미끈한 절벽과 저 거대한 발전소… 미국만의 것으로 보이는 육중하고도 부드럽고 능률적인 아름다움이 댐의 구석구석 드러나 있다.”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고, 아름다움의 가치도 마찬가지다. 지금 후버댐은 자연을 착취하던 시대를 증명하는 기념비로 서 있다. 그런데, 70년이 흘러 바다 건너 한국에서 후버댐의 미학이 부활할 줄이야!
4대강 공사가 한창이던 2009∼2011년, 기자 명함 하나 쥐고 4대강 공사 현장을 돌아다녔다. 그때 4대강 사업을 찬성 혹은 반대하는 사람들이 지닌 미학적 가치가 다르다는 걸 확인했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대개 ‘강에 물이 차고 배가 다니는’ 서구적 풍경을 이상향으로 생각했다. 큰비가 들 때마다 황톳빛을 드러내는 모래밭과 습지, 둠벙은 정비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아름답고 소중하게 생각한 것들이었다. ‘불규칙한 자연, 지배할 수 없는 자연은 참을 수 없어!’ 멀쩡한 강을 16개 댐(보)으로 막은 4대강 사업의 미학이었다.
물론 4대강을 재자연화하기로 한 게 미학적 문제 때문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매년 여름 낙동강을 중심으로 녹조가 핀 게 가장 컸다. 문재인 정부는 2019년 4대강 보 처리 방안을 발표했다. 요약하자면, 금강과 영산강 보는 개방하거나 해체하고, 낙동강과 한강은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최근 들어 광주·전남 지역 가뭄을 계기로 4대강 논쟁이 다시 불붙는 모양새다. 지난달 말부터 윤석열 대통령이 가뭄 극복을 위해 “그간 방치된 4대강 보를 적극 활용하라”고 세차례나 주문하면서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가 보를 개방해서 가뭄이 악화했다는 생각을 확인받고 싶었던 것 같다. 윤 대통령 첫 발언 사흘 뒤인 지난 3일 <조선일보>는 ‘영산강의 보 개방 이후 광주시민이 40일간 쓸 수 있는 물(1560만t)이 손실됐다’고 주장했다. 보를 닫았을 때 최대수위 7.5m에서 보를 열었을 때 수위를 빼면 나오는 물 손실량이란다. 사실을 호도하는 주장이다. 보를 닫아 ‘보기에 물이 많은 것’과 ‘사용할 수 있는 물이 많은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보를 닫아 저류량을 늘리더라도 이를 용수로 공급할 시설이 없으면, 가뭄 해갈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우리나라 내륙·산간 지역에서는 가뭄이 빈발한다. 반면, 4대강 유역에서 가뭄 때문에 취·양수가 끊긴 적은 한번도 없다. 따라서 4대강 보에 강물을 가둬 가뭄에 활용하려면, 수십㎞ 장거리 도수관로를 지어 내륙 깊숙이 보내야 한다. 그런 사례가 하나 있다. 금강 백제보의 강물을 충남 서부 보령댐까지 보내는 길이 21㎞의 도수관로다. 허나 경제성이 떨어진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600억원 넘게 들인 이 도수관로의 용수 공급량이 미미해 재무적 타당성이 없다는 보고서를 냈다. 학계에서도 가성비가 떨어지는 장거리 도수관로보다도 지천을 중심으로 취·양수장을 설치하거나 저수지를 짓는 분산형 대책이 더 효율적이라고 본다.
윤 대통령의 거듭된 주문에도 환경부는 4대강 보 활용방안을 못 내놓고 있다. 기껏 내놓은 게 농림축산식품부가 이미 추진 중인 영산강 죽산보∼나주호 간선수로의 도수관로 건설 사업인데, 이마저도 죽산보 수문을 열어도 양수가 가능해 4대강 보 활용과는 관련이 없다. 환경부는 3단 펌프를 이용하면 강물을 최대 10㎞ 보낼 수 있다고도 했다. 보에 물을 담지 않아도 양수는 가능하니, 이 역시 보 활용과는 관련 없는 대책이다.
윤 대통령 재촉에 한화진 환경부 장관도 기자브리핑을 자청하고 금강 백제보를 방문하는 등 덩달아 바빠졌다. 하지만 ‘4대강 보가 가뭄에 좋다’고 이야기만 할 뿐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속지 마시라! 강에 물이 많다고 물 부자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런 허풍이 녹조 가득한 지금의 우리 강을 만들었다.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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