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사람으로 남을 수 없는 문재인… 고개 드는 역할론

김건호 2023. 4. 19.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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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2020년 신년기자회견 당시 “어떤 대통령으로 남고 싶느냐”는 기자 질문에 이처럼 답했다. 많은 언론과 지지자들이 이런 소박한 문 전 대통령 발언에 호감을 가졌다. 하지만 최근 수면 위로 떠오른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친문계 역할론을 보면 문 전 대통령의 이런 소박한 소망은 실현되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자신의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비판적인 메시지를 보내왔던 만큼 문 전 대통령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주문하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친문재인 세력이 친명계 세력을 대체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제공
◆“5년 성취 무너져”...잊혀진 삶 살 수 없는 문 전 대통령

19일 정치권에 따르면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다큐멘터리 영화 ‘문재인입니다’의 개봉을 앞두고다.

문 전 대통령은 전날 진보성향 방송인 김어준씨 유튜브채널을 통해 일부 공개된 이 영화 속 인터뷰를 통해 “5년간 이룬 성취, 제가 이룬 성취라기보다 국민이 대한민국이 함께 성취한 것인데 그것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과거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 허망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사실상 윤석열 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자연인으로서 잊혀질 수 없는 것이지만 현실 정치 영역에서는 이제 잊혀지고 싶다는 뜻을 밝혔던 것인데 끊임없이 저를 현실정치로 소환하고 있다”면서 “그 꿈도 허망한 일이 됐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처럼 “잊힌 삶을 살고 싶다”며 현실 정치에 담을 쌓겠다는 입장을 밝혀왔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꾸준히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내놨다.

지난해 12월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수사와 관련해선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같은 연륜과 경험을 갖춘 신뢰의 자산을 꺾어버리다니 너무나 안타깝다”고 했고, 지난 2월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저서 ‘조국의 법고전 산책’을 언급하며 “학자이며 저술가로서의 저자의 역량을 새삼 확인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갖는다”고 했다. 제주 4·3 참배를 앞둔 지난달 24일 “이념이 상처를 헤집지 말아야 한다”고 적었고, 지난 3일에는 제주 4·3 평화공원을 찾아 참배까지 했다.
이창재 감독의 신작 다큐멘터리 ‘문재인입니다’의 한 장면
◆고개 드는 친명계 교체론과 친문계 역할론

이같은 문 전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을 무시하기 힘든 이유는 민주당 내부에 있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로 어수선한 민주당에서 일부 강성 친문계와 비명계가 손잡고 친명계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민주당 최대 아킬레스건은 사법리스크다. 지금까지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옥죄어왔던 대장동·위례 신도시 개발 비리와 성남FC 후원금 의혹은 다음 달 11일부터 법원에서 치열한 법정공방을 예고하고 있다. 여기에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의 금품수수 혐의에서 시작된 검찰 수사는 2021년 전당대회 불법 정치자금 의혹으로 번져 민주당 전체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특히 이정근 게이트는 그 끝을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확대되고 있고, “검찰의 수사 의지에 따라 민주당 전체로 사건이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법조계에서 나오는 전망이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을 만난 비명계 의원을 중심으로 민주당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이같은 문 전 대통령 역할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비명계인 박용진 의원은 양산을 찾은 후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 전) 대통령도 민주당이 달라지고 뭔가 결단하고 그걸 중심으로 화합하면 총선에서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민주당의 ‘변화’를 강조했다는 게 박 의원 설명이다.
지난 1월 2일 문재인 전 대통령 내외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2일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문 전 대통령 사저에서 단체 사진 촬영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에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20일 페이스북을 통해 “퇴임 대통령이 거대야당 섭정 노릇, ‘양산대원군’까지 할 것인가”라고 질타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재인 역할론이 현실화하려면 친문계 의원을 중심으로 한 당 지도부 교체 등의 조건이 충족되어야한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 이야기다. 한 친문계 의원은 “기본적으로 문 전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기 위해선 친문계 의원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전면적인 정치개입은 하시지 않겠지만 위기의 민주당을 위해 문 전 대통령 역할을 바라는 의원이 다수 있다”고 말했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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