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수 진실화해위원 임명 배제…재심제 취지 망각한 위헌적 적용

한겨레 2023. 4. 1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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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선출한 민주당 몫 진실화해위원인 허상수 4·3유족회 공동대표에 대해 43년 전 판결에 대한 재심 결과를 문제 삼아 대통령실이 임명을 거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의 2022년 12월27일 전원위원회 모습.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왜냐면] 이재승 |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회에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된 허상수 재경제주4·3희생자및피해자유족회 공동대표가 대통령실 인사검증 과정에서 최근 탈락했다. 탈락 사유는 43년 전 집행유예형과 관련한 2021년 재심 선고유예 판결인 것으로 알려졌다(<한겨레> 4월18일치 10면).

허상수 선생의 임명 유보 소식을 접하고 지난 2년 동안 같은 위원회의 상임위원을 지낸 사람으로서 소견을 표명하고자 한다. 특히 위원 임명과정의 소동이 정치적 기 싸움이 아니라 법리적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재심 제도에 관심을 기울여온 학자로서 지나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선고유예도 유죄판결이므로 공직 취임의 장애사유라는 취지의 문장을 기사에서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재심 판결에서 나온 선고유예를 새로운 유죄 판결인 양 결격 사유로 취급하는 것은 잘못이다.

허상수 선생은 1980년 전두환 시절에 특허사무소에 근무하다가 노조 활동과 관련하여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과 형법상 사문서변조·행사 및 건조물침입죄 등으로 기소되어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허상수 선생은 항소하였으나 1982년 징역 8월 집행유예 1년에 처해졌다. 그런데 1994년과 2015년에헌법재판소는 이미 폐지된 특별조치법이 초헌법적인 긴급조치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국가긴급권의 실체적인 발동 요건, 사후 통제 절차, 시간적 한계에 관한 헌법 규정을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이 특별조치법의 일부 조항들을 위헌으로 판단하였다. 이렇게 위헌 결정이 내려진 처벌법에 의해 과거 처벌받았던 사람들은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재심을 청구할 수 있으며 그 경우 사실상 무죄 판결이 보장된다.

허상수 선생도 이 사건에 대해 2021년 재심을 청구하였다. 법원은 관행상 죄목별로 형을 분리하여 결정하지 않고 통으로 형을 정한다. 이러한 방식 때문에 2021년 재심 사건을 다룬 서울고등법원은 원심 법원의 대상 판결을 깨고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한 반면, 형법 위반에 대해서는 재심 사유가 없다고 보고 해당 부분의 유죄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고등법원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던 원래의 판결과 달리 징역 4월의 선고유예로 기술적으로 마무리하였다. 여기까지 재심 법원의 판단에는 잘못이 없다. 잘못은 재심 제도의 본질을 오해한 인사검증 담당자에게 있다. 두 가지 사항을 지적해보겠다.

첫째로, 2021년 선고유예는 유죄 판결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1982년 유죄 판결의 그림자 판결에 불과하다. 재심법원에 의한 무죄 판결은 과거의 유죄 판결을 깨뜨리므로 형성적 효과를 낳지만, 재심 법원에 의한 유죄 판결은 과거 유죄판단의 확인에 그치므로 어떠한 추가적인 효과도 발생시키지 않는다. 재심 재판에서 판사가 3년이나 5년의 징역형을 선고하는 실제 사례들이 왕왕 있는데 검사가 이러한 형벌을 집행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집행유예이든 선고유예이든 실형 선고이든 원래의 유죄 판결을 통해 피고인은 죗값을 치렀기 때문에 재심 재판에서의 유죄 판결은 허구적인 것이다. 이와 같이 재심에서의 유죄 판결이 법적 효과를 전혀 발생시키는 않는다는 보장 때문에 재심 제도가 존재한다. 과거의 유죄 판단을 유지하는 기술적인 방편에 불과한 선고유예 판결을 새로운 판결인양 취급하는 것은 재심 제도에 관한 법적 놀이 규칙을 위반하는 것이다.

둘째로, 2021년 선고유예 판결을 결격 사유로 활용하는 것은 이제 동일한 행위를 이중으로 처벌하는 효과를 발생시킨다. 이는 일사부재리 원칙의 우회적 위반이고 형사 피고인을 이중적 위험에 빠뜨리는 조치로서 헌법이 엄격히 금지하는 바이다. 임명 유보는 그림자 판결을 재심 제도의 본질에 반해서 집행하려는 시도이고, 재심 판결의 의미를 위헌적으로 확장하는 행위이고, 인사 관련 법령을 위헌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본디 재심은 피고인을 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서만 허용된다. 어쨌든 위헌적인 인사검증은 허상수 선생의 공무담임권과 재판청구권을 근본적으로 침해한다.

허상수 선생은 제주4·3사건을 오랜 기간 천착해왔기 때문에 대규모 집단희생 사건을 조사하는 진실화해위원회의 위원으로서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인사검증과정에서 재심 제도에 대한 개인적 학습까지 추가하였으니 진실화해위원회의 주요 대상 사건인 재심 사건들도 능히 감당하게 되었다고 평가한다.아무튼 대통령실 인사담당자나 허상수 선생 모두 이 소동으로 상처받지 않고 진실과 화해에 봉사해주시기를 당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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