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달러 지위 당연하지 않다"…흔들리는 기축통화 패권

김인엽 2023. 4. 19.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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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리포트
'달러 vs 위안화' 충돌 격화
사우디·러시아 연이어 '脫달러' 선언
브라질, 중국과 위안화 이용 거래 확대
마켓워치 "달러 지배력 황혼기 왔다"
세계 외환보유액에 달러 비중 줄지만
전문가 "현재 위안화는 달러 대체 못해"

“새로운 국제 지도가 그려지고 있습니다. 일부 국가는 중국 위안화나 인도 루피화와 같은 대체 통화를 찾고 있거나 자체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더 이상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지난 17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미국외교협회 행사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은 미국 달러나 유로화의 지배력 상실이 임박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부연했지만, 유럽 경제계를 대표하는 라가르드 총재의 말을 가볍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평가다.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가 흔들린다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이제는 패권 경쟁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중국이 일부 국가의 국제 거래 수단을 위안화로 바꾸고 있다. 미국 제재에 위협받는 국가도 이에 호응하고 있다.

 ○사우디·러시아 이어 브라질 “위안화로 결제”


라가르드 총재의 발언은 최근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등 정상들의 ‘위안화 지지’ 발언 이후에 나왔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지난 13일 상하이 신개발은행 본부를 찾아 “나는 매일 밤 왜 모든 나라가 그들의 무역 결제를 달러에 기초해야 하는지 자문한다”며 “달러가 세계무역을 지배하는 상황을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브라질과 중국은 14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위안화와 브라질 헤알화를 이용한 거래를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앞서 양국은 지난달 브라질 업체들이 달러 결제망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대신 중국에서 만든 ‘국경 간 위안화 지급 시스템(CHIPS)’을 이용하는 데도 뜻을 모았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위안화 중심 체제에 힘을 싣고 있다. 바실리 네벤지아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3일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국을 맡으며 “러시아 제재로 달러 기반 국제 지급 시스템의 신뢰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며 “이제 세계 경제를 ‘탈달러화’할 때”라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러시아를 비롯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국가 간 거래에서 위안화 사용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페트로 달러’ 체제의 중심 국가였던 사우디도 탈달러를 선언했다. 페트로 달러 체제는 1984년 사우디가 원유 결제를 달러로만 하기로 미국과 합의한 시스템을 말한다. 대부분 국가가 원유를 거래해야 했기 때문에 이 같은 페트로 달러 체제는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는 데 일조했다.

이런 체제는 사우디와 중국이 협력을 강화하며 흔들리고 있다. 중국 수출입은행은 지난달 14일 “사우디 국영은행과 첫 위안화 대출 협력을 성공리에 마쳤다. 아랍권 금융기관에 처음 시행한 위안화 대출”이라고 밝혔다.

 ○“각국이 제2 러시아 되지 않도록 모색”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달러의 지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파리드 자카리아 칼럼니스트는 지난달 24일 워싱턴포스트 기고를 통해 “지난 10년간 미국이 달러를 무기화하면서 많은 주요 국가가 제2의 러시아가 되지 않기 위한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달러를 정치적 제재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각국이 보고 달러 영향력을 줄이고 있다는 뜻이다.

자카리아는 세계 중앙은행 외환보유액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이 20년 만에 약 70%에서 60% 미만으로 떨어졌다는 통계를 언급하며 “이런 모든 대안에는 비용이 추가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각국이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점점 더 기꺼이 대가를 지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마켓워치는 17일 ‘미국 달러가 경쟁국들로부터 공격받고 있다. 달러가 세계 지배력을 잃으면 어떻게 될까’란 제목의 기사로 탈달러화 논의를 조명했다. 마켓워치는 “지난해의 격렬한 달러화 랠리가 빠르게 풀리고 중국과 다른 국가들이 달러화 의존도를 완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국제 무역과 금융에서 달러화의 지배력이 황혼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추측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당장 위안화가 달러를 대체하거나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지위를 잃을 가능성은 낮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자카리아는 “달러는 안정적이고 언제든지 사고팔 수 있으며, 정부의 변덕이 아닌 시장의 지배를 주로 받기 때문에 위안화의 국제적 역할을 확대하려는 중국의 노력은 효과가 없었다”고 분석했다. 도이체방크의 거시경제 전략가인 알란 머스킨은 다른 통화가 달러와 경쟁하기 위한 요소로 △외국인 투자에 개방된 경제 △개방된 채권시장 △시장 환율의 수용 △법치에 대한 신뢰 △정치 거버넌스 등을 꼽으며 “이런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다른 통화를 찾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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