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호퍼, 그의 일생이 서울에 왔다
화업 60년 다양한 장르 270점 선보여
이후 영화·광고·뮤비 등 큰 영향
“다채롭고 심오한 예술세계와 삶 조명”
국제적 인기 작가인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작품들이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호퍼는 대도시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외로움·소외감·공허함 등 내면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들로 특히 유명하다. 도시의 평범한 일상적 삶과 정서를 빛의 대비, 독특한 공간 구성과 인물 표현 등으로 담아낸 작품은 시공을 넘어 세계의 도시인들과 교감하면서 사랑받고 있다. 20세기 초중반 급성장하던 도시 미국 뉴욕과 곳곳의 지역, 미국인들의 삶을 가장 미국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연극적 화면의 작품은 후대에 영향을 끼쳐 영화나 광고 영상, 뮤직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에 꾸준히 차용되고 있다.
호퍼의 국내 첫 개인전 ‘에드워드 호퍼-길 위에서(Edward Hopper: From City to Coast)’가 20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개막한다. 개막 전부터 주목을 받아온 화제의 전시이기도 하다.
전시회에서는 초기부터 말년까지 전 생애에 걸친 회화·드로잉·판화·수채화 160여점과 아카이브 등 모두 270여점이 선보인다. 호퍼의 삶과 예술세계를 큰 틀에서 조망하는 대규모의 회고전 성격이다.
다만 ‘현대 도시인의 고독’이란 호퍼의 작품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면서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유명작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 등은 만날 수 없다. 이번 전시는 호퍼를 향한 통념을 넘어 다양한 작품세계를 보여준다는 취지에서다. 전시를 공동기획한 서울시립미술관과 미국 뉴욕 휘트니미술관은 “흔히 호퍼 하면 현대인의 고독을 다룬 작품을 떠올리지만 그가 걸어온 길은 다채롭고 심오하다”며 “이번 전시가 호퍼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그의 작품이 여러모로 지친 우리에게 공감과 위안을 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호퍼를 소개하는 도입부인 ‘에드워드 호퍼’를 시작으로, 그가 선호한 장소를 따라 ‘파리’ ‘뉴욕’ ‘뉴잉글랜드’ ‘케이프코드’, 이어 호퍼의 아내이자 동료로 큰 영향을 미친 ‘조세핀 호퍼’와 ‘호퍼의 삶과 업’ 등 7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첫 전시실 ‘에드워드 호퍼’에서는 유명한 ‘자화상’(1925~1930)을 비롯해 그의 삶을 일별하는 드로잉 등을 만난다. 후기 작품인 ‘계단’(1949)은 도시·문명의 공간인 집에서부터 문밖 미지의 공간인 자연풍경으로 시선을 이끌어 상상력을 자극한다.
생계를 위해 삽화·광고 작업을 하면서도 전업작가의 꿈을 키운 호퍼는 3번에 걸쳐(1906~1910) ‘예술의 수도’라는 파리를 여행했다. 그는 파리에서 당시 전위적 야수파나 큐비즘보다 빛의 효과를 강조한 인상주의 화풍에 영향을 받았고, ‘비스트로 또는 와인 가게’(1909), ‘푸른 저녁’(1914) 등을 그렸다. ‘푸른 저녁’은 미국 전시에서 혹평을 받아 호퍼가 유럽풍이 아닌 미국적 풍경과 삶을 집중 관찰하게 한 계기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호퍼가 태어나고 살아간 ‘뉴욕’ 섹션에서는 빛의 대비 효과를 극대화한 초기의 에칭판화 작업부터 1920~1930년대 주요 작품들을 접한다. ‘밤의 창문’(1928), ‘황혼의 집’(1935), ‘도시의 지붕들’(1932), ‘뉴욕 실내’(1921)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밤의 창문’ ‘황혼의 집’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사적이고 은밀한 공간을 담은 작품들이다. 그의 작품에는 밖에서 실내를 들여다보는 관찰자적 시선이 많은데 창문이 핵심 요소다. 창문은 안과 밖을 연결하기도 하지만 내·외부의 분리를 상징한다. 창문은 도시화로 인구가 급증하면서 창문 너머의 이웃집 공간이 익숙해지는 상황, 도심 속 사람들의 일상적 모습, 나아가 남과 더불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심리적 장치로도 읽힌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의 습작도 만날 수 있다.
‘뉴잉글랜드’ 섹션은 메인주의 작은 어촌인 오건킷 등을 표현한 풍경화들로 구성됐다. 바다와 땅·빛과 그림자의 극적인 대비, 물감을 두껍게 칠하는 임파스토 기법을 통한 바위의 양감, 대담한 구성 등이 엿보이는 작품들이다. 호퍼 부부가 자주 찾은 ‘케이프코드’에서는 호퍼가 가장 좋아했다는 작품으로 알려진 ‘이층에 내리는 햇빛’(1960)을 비롯해 뉴욕의 주류 밀매업소를 소재로 한 유명작 ‘오전 7시’(1948) 등이 완성됐다. 이들 작품은 자연을 상징하는 숲과 도시를 의미하는 건물을 빛·색조로 극적으로 대비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삼 생각하게 한다.
‘조세핀 호퍼’와 ‘호퍼의 삶과 업’에서는 말년작인 ‘햇빛 속의 여인’(1961)을 비롯해 초기 삽화들, 다양한 기록자료 등을 통해 호퍼의 삶을 살펴본다. 특히 아내 조세핀 니비슨 호퍼(1883~1968)는 지금의 호퍼를 있게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미술학교 동문으로 아내이자 동료 작가이며, 호퍼의 작업을 지지하고 비평해준 이야기는 유명하다. 호퍼의 작품 속 여성 모델이기도 하다.
전시 개막을 맞아 방한한 휘트니미술관 애덤 와인버그 관장은 “섬세한 관찰로 현대인들의 내면 풍경을 그려낸 호퍼의 작품이 관람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서울시립미술관 최은주 관장은 “호퍼가 평생 쏟은 예술에 대한 열정과 노력, 그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개별 작품 감상뿐 아니라 전시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작가가 발전해가는 과정도 살펴보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시기간 중 연계 강연, 교육 프로그램 등도 운영된다. 전시는 유료 관람·사전 예약제이며, 8월20일까지다.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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