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우크라 ‘무기지원’ 첫 언급···대통령실 진화에도 파장 확산 불가피
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용 무기 지원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19일 전해지면서 파장이 국내외로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정부 입장 변경은 아니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국정운영 최고책임자가 처음으로 이를 ‘가능한 선택지’로 언급한 것 자체가 국제사회에 유의미한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 국내적으로는 정부 외교 노선을 둘러싼 논쟁 격화가, 국제적으로는 러시아의 반발과 긴장 고조가 예상된다.
윤 대통령이 전날 이뤄진 영국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민간인 대규모 공격, 대량학살, 중대한 전쟁법 위반 발생을 전제로 “(그 때는) 인도 지원이나 재정 지원에 머물러 이것만을 고집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 살상용 무기를 포함한 군사적 지원을 고려할 수 있다는 취지로 그간 한국 정부의 입장에 변화를 시사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2월 러시아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뒤 경제적·인도적 지원을 벗어난 살상 무기 지원에는 철저히 선을 그어왔다. 윤 대통령 취임 후에도 이같은 입장은 유지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출근길 문답에서 “우리나라는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공급한 사실이 없다”며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인도적이고 평화적인 지원을 국제사회와 연대해서 해왔다”고 이를 재확인했다.
대통령실은 이날도 ‘정부 입장 변화는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전제가 있는 답변이었다”며 “답변 그대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또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한 한국의 인도적 접근 원칙을 재확인한 발언일 뿐 무기제공 등과 관련한 기존 정부 입장에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의 진화에도 파장 확산은 불가피하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은 한·러시아 관계뿐 아니라 러시아와 주요 관계국으로 묶인 중국과 북한 등을 함께 자극할 수 있는 이슈로 꼽힌다. 정부가 그간 무기 지원에 선을 그은 데도 한국과 러시아 관계 악화로 한국이 보복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는 점, 대북 문제 등 한반도 긴장이 고조될 수 있는 점 등이 함께 고려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할 경우 “한·러 양국 관계는 파탄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한·미 밀착 ‘외길’을 걷는 외교 기조로 이미 축소된 정부의 외교적 선택지가 극단적으로 축소될 우려도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무기 지원을 언급한 것은 그간 이를 강하게 요구해온 미국 등 서방의 요구에 호응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실제 우크라이나와 미국 등 서방의 무기 지원 압박은 고조돼왔다. 취임 일주일만에 이뤄진 한·미정상회담을 시작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프놈펜에서 이뤄진 한·미·일 정상회담 등에서도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확대가 주요하게 언급됐다.
정부는 한·미정상회담 당시 미국의 무기지원 요청은 없었다고 밝혔지만 미국이 지속적으로 한국의 군사적 지원을 요청해왔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지난 1월 “한국이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이라는 특정한 문제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공개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한·미동맹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민주주의 국가들과의 ‘가치동맹’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가 이를 계속 거부하기는 어려울 거란 전망이 적지 않았다. 이번 언급이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이 임박한 시점에 나온 것을 두고 사전에 미국 측에 ‘선물’을 줄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간 누적된 정부의 기류변화 신호와 맞물려 우회 지원 형태의 무기 제공이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의 한국 국가안보실 인사 도청 의혹 문건에는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 등 안보실 관계자들이 155mm 포탄 우크라이나 지원 방법을 고민하는 내용이 담겼다. 문건에서 이 전 비서관은 “정부 원칙은 전쟁 중 국가에 살상용 무기를 수출하지 않는 것”이라며 포탄 지원에 반대했다. 그는 또 방미를 앞두고 정부 원칙을 바꾸면 미국과 ‘딜(거래)’을 한 것으로 오해받을 우려가 있다고도 했다. 정부는 이 문건이 “상당수 위조됐다” “공개된 자료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부인중이다. 김 실장과 이 비서관은 지난달 전격 교체됐다. 최근에는 한국이 155㎜ 포탄 50만발을 미국에 대여 형식으로 제공해 우크라이나에 간접 지원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를 공식 부인하지 않았다.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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