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을 그린 화가···호퍼의 삶을 만나다
드로잉·판화·유화 등 270여점
7개 섹션으로 나눠 전생애 조망
반려자이자 모델로만 그려졌던
'조세핀 호퍼' 재발견도 볼거리
서울시립미술관서 8월 20일까지
지난 2020년 영국 ‘가디언’지는 “오늘날 우리는 모두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다, 그는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의 예술가인가?”라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한다. 에드워드 호퍼는 자신이 성장한 뉴욕이 거대한 대도시로 변모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풍요로운 뉴욕 속 고독함과 외로움을 그려낸 작가다. 그의 작품은 마치 팬데믹 기간 삭막해진 도시 속에서 장기간 격리로 고립된 우리의 모습을 반영한 듯하다. 1900년 대 작가가 지금 전 세계적으로 다시 주목 받는 이유다.
국내에서 미국의 전설적인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약 270여 점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대규모 개인전이 열린다. 서울시립미술관은 20일부터 2023년 해외 소장품 걸작전 중 하나로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를 뉴욕 휘트니미술관과 공동 기획·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미 미술 애호가들 뿐 아니라 대중들 사이에서도 올해 최고의 기대 전시로 꼽힌 이번 전시는 호퍼의 전 생애를 드로잉, 판화, 유화, 수채화 160여 점과 산본 호퍼 아카이브(Sanborn Hopper Archive)의 자료 110여 점을 7개 섹션으로 나눠 조망한다.
각 섹션은 ‘에드워드 호퍼', ‘파리’, ‘뉴욕’, ‘뉴잉글랜드’, ‘케이프코드’, ‘조세핀 호퍼’, ‘호퍼의 삶과 업’으로 구성된다. ‘에드워드 호퍼’에서는 자화상과 드로잉 등으로 작가의 성장 과정을 보여준다. 그를 상징하는 대표작 ‘자화상’ ‘계단’ 등을 볼 수 있는 섹션이다. 작가는 1900년대 초 학생 시절 얼굴과 상반신, 손을 수차례 그리는데 이는 예술적 표현과 기술적 숙련을 위한 노력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상업화가에서 전업작가로 나아가는 과도기였던 1910~1920년 대에는 자화상을 통해 예술가의 자아성찰을 부각한다. 특히 그는 이름이 알려진 1940년대에도 자화상과 손 그리기를 반복했는데 이를 통해 세밀한 근육의 묘사, 명함의 사용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자기 계발을 시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섹션은 예술의 수도였던 파리를 3회 방문한 호퍼가 빛의 효과에 눈을 뜬 여정을 그린다. 화폭을 사선이나 평행으로 가르는 대범한 구도의 작품은 모두 파리에서 시작됐다. 또한 인물의 개성을 빠르게 포착한 그림에서는 생계를 위해 선택한 삽화가로서의 행보가 작가의 예술에 끼친 영향을 엿볼 수 있다.
‘뉴욕’과 ‘뉴잉글랜드’ ‘케이프코드’ 섹션에서는 화려한 도시보다 평범한 일상을 그린다. 고층 건물의 수직성보다는 수평 구도에 관심을 갖는 시기이기도 하다. 작가는 화려한 도시보다는 서정적인 고향의 모습을 주로 그렸는데 아내 조세핀 호퍼를 만난 ‘뉴잉글랜드’에서는 변화 무쌍한 자연을 투명한 느낌의 수채화로 표현해 야외 작업의 깊이를 더했다. 30년간 매해 머물던 ‘케이프코드’에서는 평범한 장소에 대한 그의 독특한 감수성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 전시됐다.
이번 전시의 또 다른 볼거리는 그간 에드워드 호퍼의 반려자, 모델로만 그려졌던 ‘조세핀 호퍼’의 재발견이다. 에드워드 호퍼는 촉망 받는 예술가인 조세핀 호퍼를 만나 1923년 함께 야외 작업을 하며 수채화를 시도한다. 그해 가을 조세핀 호퍼의 소개로 브루클린 미술관에 출품된 그의 수채화는 미술관의 소장품으로 채택되며 미술계의 큰 호응을 얻기도 한다. 조세핀 호퍼는 미술 동료이자 에드워드 호퍼의 훌륭한 조력자이기도 했다. 특히 그는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 이력, 작품 판매 등 상세한 정보가 적힌 장부 관리를 30년 이상 지속하고 사망 이후 2500여 점에 달하는 작품과 자료 일체를 휘트니 미술관에 기증한다. 과묵한 에드워드 호퍼가 언급하지 않은 세부사항 역시 조세핀 호퍼의 기록 덕분에 사료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전시는 8월 20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전층에서 진행된다.
서지혜 기자 wise@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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