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6만6000바퀴 면발 먹은 우리는 “라면의 민족” [라면史 60년]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올해 사람 나이로 환갑이 넘는 라면은 허기를 달래던 식품에서 시작해 수출로 나라의 경제에도 기여하는 ‘K-푸드’의 대표 주자가 됐다. 1963년 삼양식품이 일본에서 라면 제조 기술을 도입해 국내 최초 ‘삼양라면’을 출시한 후 60년 만이다.
19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올해 3월까지 한국의 3대 대표라면(신라면·삼양라면·진라면)의 누적 판매량을 합치면 약 575억개다. 무게로 환산하면 약 690만톤에 달한다. 초대형 원유운반선박(30만톤) 23대, 아프리카코끼리(4.5톤) 15만3333마리에 달하는 양이다.
라면 브랜별(누적)로는 농심 신라면이 373억개, 삼양식품 삼양라면이 117억개, 오뚜기 진라면이 85억개가 지금까지 팔렸다. 면발의 길이(봉지당 46m 기준)를 기준으로 하면 총 26억4500만㎞로 지구를 6만6001바퀴, 지구와 달(38만4400㎞)을 3440번 왕복하는 거리다.
삼양라면 이후 농심, 오뚜기의 추격이 이어졌다. 농심은 1965년 ‘롯데라면’을 시작으로 라면 사업에 뛰어들었다. 오뚜기식품은 1987년 12월 청보식품을 인수해 오뚜기라면을 설립한 후 약 3개월 만인 1988년 3월 오뚜기 진라면을 내놨다.
60년간 매출 1위 라면도 여러 번 바뀌었다. 삼양라면은 1987년에 후발 주자인 농심의 안성탕면에 자리를 내줬다. 1991년부터는 농심의 신라면이 지금까지 30년 넘게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삼양라면 1봉지(100g, 1963년) 최초 가격은 10원이었다. 이후 1978년 50원, 1981년엔 100원으로 오른 뒤 2022년(120g) 기준 한 봉지 가격은 687원이 됐다. 당시 자장면 가격(25원)의 40%였던 라면 값은 올해 기준 자장면 값(평균 6361원)의 10%대다. 60년 전 당시 서울 시내버스 이용로(5원)보다 높았던 라면은 올해 기본요금(교통카드 기준, 1200원)의 절반 수준으로 위상이 역전됐다. 대표적인 서민 식품이지만 프리미엄 라면의 도전도 멈추지 않고 있다. 가격이 하림 챔라면(3800원, 2023년)과 장인라면(2200원,2021년), 삼양식품의 컵라면 쿠티크 에센셜짜장(2800원)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세월 동안 라면의 국물 색도 다양하게 변했다. 2011년 8월 출시된 팔도 꼬꼬면은 ‘하얀 국물 라면’ 열풍을 일으키며 출시 168일 만에 1억개 판매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후에도 요괴라면 봉골레맛(옥토끼프로젝트, 2017년), 쇠고기미역국라면(오뚜기, 2018년), 북엇국라면(오뚜기, 2019년), 삼계탕면(삼양식품, 2019년) 등 기존 빨간색 라면과 다른 국물 색을 가진 제품들이 계속 나왔다. 삼양식품은 지난해 흑후추로 국물 색이 진한 갈색을 띄는 흑삼계탕면을 여름 한정판으로 출시했다.
면의 종류도 세분화됐다. 쌀면, 곤약면, 감자면 등은 물론 초록 면도 한때 관심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면이 노란빛을 띄는 이유는 리보플라민(비타민 B2)이라는 재료 때문이다. 그러다 1983년 팔도는 클로렐라를 첨가한 녹색 면이 특징인 ‘팔도 클로렐라 라면’을 출시한 게 대표적이다. 다만 이 녹색라면은 2011년 말부터 국내 생산과 판매가 중단됐다.
그러나 매년 쏟아지는 신제품 속에서도 한국인들은 ‘아는 맛’인 빨간색으로 결국 회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한국 라면 브랜드 중 ‘기타’ 비중은 2018년 28%에서 지난해 23.7%로 감소했다. 이는 신라면, 삼양라면, 진라면 등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기존 유명 라면을 찾는 비중이 계속 올라가고 있다는 의미라고 유로모니터는 해석했다.
박윤진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코리아 수석연구원은 “2020년 한국 식음료 시장에 분 ‘아는 맛’ 열풍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기존 장수 브랜드들이 ‘신라면 건면’, ‘신라면 블랙’ 등 새로운 에디션을 내놓아 익숙함과 신선함 모두 잡은 점도 ‘‘기타’ 규모가 줄어든 것에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라면은 ‘내수용’이란 말도 옛말이 됐다. 해외 수출 역꾼으로도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1969년 삼양라면이 해외로 라면을 첫 수출하면서 업계의 출발선을 끊었다. 당시 라면 26만 상자를 최초로 베트남에 수출한 것이 그 시작이다. 이제 라면업계는 수출액(즉석면류, 8억6200만달러)이나 수출국(143개국) 모두 지난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며 사실상 매년 새 역사를 쓰고 있다.
한국 라면의 해외 수출액은 2011년 2억달러 규모였지만 2019년 5억달러, 2022년 8억달러를 돌파했다. 특히 코로나19 기간 전인 2017년~2019년 연평균 4억8000만달러였던 수출액은 2020년~2022년 연평균 7억7000억만달러로 60% 가까이 증가했다. 매운맛에 도전하는 ‘불닭 챌린지’가 소셜네트워크(SNS)에서 인기를 끈 것도 한몫했다. 삼양식품의 인기 제품 불닦볶음면은 현재 삼양식품 라면 수출의 70%를 넘게 차지한다. 간편식 수요와 K-푸드 인기, 라면 섭취가 재미와 더불어 한국을 만나는 하나의 ‘문화 상품’처럼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셈이다.
그 사이 라면을 즐기는 법도 진화했다. 삼양식품은 1976년 라면 자판기를 처음으로 설치했다. 이는 1977년 롯데산업이 일본으로부터 커피 자판기를 도입한 것보다 빨랐다. 컵라면 자판기는 독서실 등에 설치되며 더욱 시민의 생활 속으로 다가왔다. 2000년대부터 서울 한강공원의 편의점들에 즉석 라면 조리기가 도입되기 시작해 일명 ‘한강 라면’ 문화가 생겼다.
전자레인지 라면도 함께 발달했다. 전자레인지에 라면을 조리할 경우 면발이 더욱 잘 익어 식감을 좋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심의 첫 전자레인지 라면은 1999년 나온 ‘사이버라면’이다. 업체들은 전자레인지 조리에도 강한 용기면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농심은 이후 신라면블랙사발, 앵그리짜파구리큰사발, 카구리큰사발 등 전자레인지 라면을 지속 선보이고 있다. 오뚜기 진라면 컵라면, 김치면 등 전자레인지 조리가 가능한 컵라면을 찾는 일은 이제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라면시장의 성장에는 제품 개발에도 적극적인 라면업계의 노력이 숨어 있다. 국내 대형 라면 제조업체인 농심·삼양식품·오뚜기는 모두 연구 개발(R&D) 부서를 두고 있다. 농심의 경우 약 200명 규모의 연구 개발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데 지난해 기준 약286억원을 비용으로 지출했다. 농심 R&D 부서에서는 ▷신볶게티(신라면볶음면+짜파게티) ▷카구리면(카레+너구리) ▷라면왕 김통깨 등 ‘모디슈머(개성 담긴 자신만의 조리법을 개발하는 소비자들)’들의 레시피을 제품했다. 오뚜기라면 라면연구소와, 삼양식품의 R&D 부서에서도 약 30여명의 연구원들이 제품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hop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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