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여론조사 과학적으로 해야"에 전문가 "이미 과학적"
"공정하게 안하면 국민 속이는 것" 여론조사 책임자들 얘기 들어보니
조사협회 대변인 "공정성 객관성 안 떨어져, 싸잡아 비판해선 안돼"
"인정할 건 인정해야" 갤럽 "이미 다 공개하고 있다"
진중권 "여론조사가 과학적이지 않다고 믿는 듯"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근로시간 유연화 방안을 추진하면서 돌연 여론조사가 표본 설정과 질문 내용, 방식이 과학적, 객관적이고 공정해야 한다고 여론조사 문제 자체를 제기해 논란이다.
그러나 실제로 대부분의 여론조사는 표본 설정 방식과, 조사 방식, 질문 문항 등 조사개요를 모두 중앙여론조사심의원회에 제출하고 있고, 전부 공개 돼 있다. 이에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미 “과학적 객관적인 면이나 공정성은 문제되지 않는다”며 “모두 싸잡아 비판할 일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8일 국무회의에서 근로시간 유연화 문제를 두고 “정부는 지금 광범위한 여론 수렴을 1대1 대면 조사, FGI, 또 표본 여론조사 등을 실시하고 있다”며 “이러한 여론조사 내용도 결과 뿐 아니라 내용도 과정도 모두 공개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특히, 표본 여론조사는 표본 설정 체계가 과학적이고 대표성이 객관적인지 제대로 공개되어야 한다”며 “나아가 질문 내용과 방식도 과학적이고 공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결국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국민들께 여론조사 과정과 결과를 소상히 알려드리고 이에 따라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며 “과학과 데이터에 기반한 당정 협의도 속도감 있게 추진해 주시길 당부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의 노동시간 개편안 관련 여론조사가 비과학적이고, 불공정하고 조사과정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아왔다는 것처럼 여기게 하는 발언이다.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 이른바 '주69시간 노동제'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대부분 절반 넘게 반대하는 결과가 나왔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14~16일 전국 성인남녀 1003명에게 현행 법정근로시간에 대해 전화면접 조사 방식으로 물은 결과(항목 로테이션) 60%가 '적정하다'고 봤고, 19%는 '많다', 16%는 '적다'고 답했다. 5%는 의견을 유보했다.
한국갤럽은 이어 정부가 평균 일하는 시간은 주당 52시간 내로 제한하되, 특정 주에는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게 하는 안을 내놓았는데, 이와 관련해 두가지 주장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하자 '바쁠 때 몰아서 일하고 길게 쉴 수 있어 찬성한다' 36%, '불규칙·장시간 노동, 삶의 질 저하 우려되어 반대한다' 56%, 의견 유보 8%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한국갤럽은 대부분의 응답자 특성에서 부정적 시각이 우세하며, 특히 30·40대와 사무직(이상 60%대 후반) 등에서 강하다고 발표했다. (응답률 9.0%,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0%포인트, 그밖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 기관이 같은달 13일부터 15일까지 사흘간 18세이상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조사를 실시한 NBS 전국 지표조사 결과 69시간제 개편 관련 방안에 대해 '근로시간과 휴무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어 찬성한다'는 응답이 40%, '노동자가 과도한 연장근로를 강요받을 수 있어 반대한다'는 응답이 54%로 나타났다. (응답률 17.4%,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0%포인트)
'여론조사 꽃'이 같은 달 10일부터 11일까지 양일간 전국 만18세 이상 남녀 1024명을 상대로 ARS 및 전화 면접조사를 통해 최근 발표된 “윤석열 정부의 주 69시간 근로 시간 허용 개편안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물어본 결과, '반대'가 절반(59.4%)을 넘어 '찬성' 31.7%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주 69시간 일하고 휴가를 몰아서 쓰는 것이 기업 현장에서 잘 지켜질 것이라는 기대”에 10명 중 7명 이상(74.9%)이 '잘 지켜지지 않을 것'라고 응답했다고 이 기관은 전했다.(응답률 16.8%,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0%포인트)
이에 앞서도 지난해 12월17~19일 스트레이트뉴스의 의뢰로 여론조사 업체 조원씨앤아이가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 RDD 방식의 ARS 여론조사(응답률 3.1%, 포본오차 95% 신뢰구간 ±3.1%)를 실시했다. 조원씨앤아이가 '윤석열 정부의 주 52시간 법정 근로시간을 최대 69시간까지 허용하는 노동시장 개혁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고 묻자 응답자들은 찬성 41.1%, 반대 55.3%, 잘 모르겠다 3.6%로 나타났다.(응답률 3.1%,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0%포인트)
뉴스토마토도 지난해 12월23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미디어토마토에 의뢰해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사흘간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0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48.5%가 현행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주 52시간제 유연화' 정책에 대해 반대한다고 답했고, 40.4%는 '주 52시간제 유연화' 정책에 찬성 의견을 표했다고 밝혔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11.0%였다. 찬반 격차는 오차 범위 밖이었다.(응답률 3.7%,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0%포인트)
이 같은 결과가 윤석열 대통령이나 정부 측이 보는 것처럼 표본설정과 질문 구성, 조사방식 등 조사과정이 미흡하거나 불투명해서 반대 여론이 높게 나온 것일까.
국내 주요 여론조사기관이 회원사로 가입돼 있는 한국조사협회의 대변인을 맡고 있는 김춘석 한국리서치 여론조사본부장(전무)는 19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여론조사 기관들은 샘플링이나 절차 등에 있어 과학적 절차를 밟고 있다”며 “여론조사 관점에서 볼 때 이미 과학적 절차, 샘플링, 결과해석 등은 상당히 평균 이상 올라와 있다”고 밝혔다.
모든 과정을 공개해야 한다는 윤 대통령 주장에 김 대변인은 “훨씬 공개적이고 객관적이다.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제출해 공개하도록 돼 있다. 이렇게까지 공개하게 돼 있는 나라가 없다”며 “일부 지적을 받을 만한 조사나 정파성을 띤 조사가 없는 것은 아니나 보편적인 한국조사협회 회원사 등에서 실시하는 조사의 공정성이나 객관성이 떨어진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김 대변인은 '모든 여론조사기관을 싸잡아서 부족한 것처럼 얘기하는 게 타당한 문제제기라 할 수 있느냐'는 질의에 “정치권이든 정부든 불리한 여론조사 결과 나오면 문제의식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고, 사회과학이다 보니 완벽한 것은 있을 수 없다”면서도 “설문 문항에 대한 지적은 언제나 겸허하게 받을 필요는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그걸 '의도성을 가지고서, 과학적인 기본체계나 절차를 갖추지 않으면서 조사를 했다'고 싸잡아 비판해서는 안 된다. 인정할 건 인정하면서 개선할 부분을 지적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정 지지도가 27%(한국갤럽)까지 하락하자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 자체를 문제삼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는데 어떻게 보느냐'는 질의에 김 대변인은 “그러지 않기를 기대해야 한다”고 답했다.
한국갤럽 관계자도 이날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조사와 관련한) 모든 내용을 공개하고 있다”며 “제도적으로도 공개하게 돼 있다. 그밖의 말씀 드릴 것은 없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18일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 평가마저 부정하는 것이냐”며 “전 정부 탓, 야당 탓, 언론 탓도 부족해 여론조사 탓을 하고 있으니 참 한심한 대통령”이라고 비판했다. 강 대변인은 “노동시간 개편과 관련한 표본 여론조사의 배경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지만, 국정지지도가 하락한 것으로 나온 최근 여론조사들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내비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도 18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이분(윤 대통령)이 쉽게 말하면 69시간제 노동제에 대한 여론조사가 과학적이지 못했다고 믿는 것 같다”며 “'우리 뜻을 제대로 알렸다면 여론조사 결과가 달랐을 것'이라고 보고 지금 다른 방식의 여론조사들 얘기하고 있다. … 이 부분을 다시 띄워볼까 하는 마음이 좀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한국갤럽, NBS지표조사, 여론조사꽃, 조원씨앤아이, 미디어토마토의 여론조사 개요와 관련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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