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제 의무화···취지는 좋은데, 목돈은 필요하고
퇴직급여를 일시금이 아닌 연금형태로 받도록 ‘퇴직연금제도’를 의무화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노후소득 보장을 강화하기 위해 공적 성격을 띤 연금제도를 다양화하자는 취지다. 아직은 일시금을 선호하는 퇴직자들이 많기에 일시금 일부 수령, 일시금 지급 숙려제도 등 단계적 전환 방안이 제시됐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퇴직연금 발전방향에 관한 공청회’를 열었다. 지난주 기초연금 개선방향에 이은 두 번째 공청회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저출생·고령화, 노인빈곤율 등의 실태를 고려하면 기초생활보장제, 기초연금,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으로 소득계층에 따라 노후소득원을 다층화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핵심 쟁점은 퇴직연금제를 의무화할지 여부, 연금제도로서의 기능 강화 방안이다. 국내에서는 1953년 근로기준법에 퇴직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면서 ‘퇴직금’ 제도가 꽤 오래전에 뿌리내렸다. 퇴직급여는 대상과 사업장 범위가 확대돼왔으며, 2005년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이 시행되면서 노·사 합의에 따라 퇴직금(일시금)과 퇴직연금 중에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연금특위 산하 민간자문위원인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날 발제에서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따져보면 보험료율이 굉장히 높아지는데 이를 어느 수준에서는 제한을 둘 수밖에 없다”며 “그러면 장기적으로 노후소득 보장성이 약화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그냥 보고만 있을 게 아니라 보완하기 위해서 퇴직급여를 연금화를 하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양 위원은 “현재 사업주가 적립하는 퇴직급여 보험료율(8.33%)에 수익률을 국민연금 수준(2017~2021년 5년 평균수익률 7.90%)으로 높이면 약 20%대의 소득대체율이 생기는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며 “중산층 이상에서는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으로 50%대의 소득대체율을 보장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연금은 현재 생산가능인구에게 보험료를 걷어 공적 기금을 형성한 뒤 노인세대에 확정된 급여를 지급하는 제도다. 퇴직연금은 국민연금과 달리 개인이 적립해둔 급여에 이자 등을 더해 퇴직 시에 받는 것이라서 추가 비용이 늘어나거나 인구구조 변동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양 위원은 설명했다.
양 위원은 관련 법 개정을 서둘러 진행해야 하며,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를 위해서는 국민연금공단이 퇴직연금 사업자로 참여해 ‘메기 효과’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자금 운용을 느슨하게 해 수익률(2017~2021년 기준 5년 평균 수익률 1.96%)이 낮다는 것이다.
2021년 기준 전체 노동자의 52.4%가 퇴직연금에 가입하고 있으나 사업장 단위로 기업의 퇴직연금제도 도입 정도를 의미하는 제도 전환율은 27%에 그친다. 개인으로 보면 10명 중 9명은 연금이 아닌 일시금 형태로 퇴직급여를 받는다. 영세사업장의 적립금 관리 부담, 노동시장 구조상 중하위 소득계층은 적립금이 매우 낮은 문제 등은 연금화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날 또 다른 발제자인 남재우 민간자문위원(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개인이 충분한 연금을 받으려면, 유효한 규모의 적립금을 쌓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중도인출을 차단하거나 제약해야 한다”고 했다.
연금특위 여야 위원들은 현실적으로 퇴직자들이 퇴직금을 주택구매, 전세자금, 자녀 학자금·결혼자금, 사업자금 등의 ‘목돈’으로 쓰고 있어서 중도인출이나 일시금 수령을 차단하거나 제한하면 반발이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개인 자산 사용권에 대한 국가의 개입 또는 규제에 따른 반발을 고려하면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었다. 개인마다 퇴직연령이 다르고 퇴직연금을 쌓기 어려운 노동시장 구조 등을 고려할 때 다른 사회보장제도의 개혁과 같이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남 위원은 중도금 부분 인출, 적립금 담보 대출제, 일시금 지급 숙려제도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양 위원은 개인의 선택권 이상으로 개인 소득이 사라지는 노후 소득부분을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현실적으로 퇴직연금을 이번 연금개혁 과정에서 곧바로 의무화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용하 민간자문위 공동위원장은 “노후소득 보장체계의 근간은 국민연금으로, 국민연금을 먼저 안정화하는 게 최우선이다. 퇴직연금제도를 강제하긴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며 중장기적으로 연금화로 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연명 공동위원장은 “노동계에서도 연금화 방안에 충분히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한다. 당사자들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퇴직연금을 국민연금의 보완적 연금으로 갈지 퇴직 이후 공적연금 수령 시까지 가교연금으로 갈지 등 역할에 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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