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이 모자라’ 일정 빽빽 유동규···피로 호소에 재판 순연도
“증인 부득이하게 여러 사건이 있고, 여러 진술을 해야 해서 힘든 상황인 것 같은데요. …증인 건강을 헤쳐가며 재판을 계속할 수는 없으니까 약 드시고 쉬었다 하겠습니다. 이후 상황을 봐서 안 될 것 같으면 다음 기일에 하고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조병구)가 심리하는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 사건에서 지난 18일 재판부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게 한 말이다.
이날 증인으로 나온 유 전 본부장은 오전 10시에 시작한 재판이 오후 4시 넘어까지 이어지자 집중력이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다. 보다 못한 검찰이 “지금으로선 증인이 진술할 상태가 아닌 것 같다”고 해 재판이 중단됐다. 재판은 결국 평소보다 빨리 마쳤다. 건강 상태로 증언에 어려움을 표하던 유 전 본부장은 벌게진 얼굴로 법정을 나섰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핵심 인물 중 하나인 유 전 본부장은 빽빽한 ‘증인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그는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 이어 정 전 실장 뇌물 사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까지 줄줄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각 재판부 재판장끼리 유 전 본부장의 출석 일정을 조율하고 있지만 2~3일에 한 번꼴로 증인석에 선 유 전 본부장의 컨디션이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재판이 지연되는 일이 잇따랐다.
유 전 본부장은 지난 14일 오전 이 대표 재판, 오후 정 전 실장 재판에 각각 증인으로 나왔다. 하루에 재판을 ‘두 탕’ 뛴 것이다. 오전 408호 법정에서 이 대표를 겨냥해 날 선 증언을 쏟아내던 그는 오후 311호 법정에선 “좀 멍하다”며 피로를 호소했다. 오전 재판이 늦게 끝나 제대로 쉬지 못했다고 했다. 그의 건강 상태를 이유로 재판이 차례로 밀리자 형사23부는 “5월부터 대장동 본류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에서도 증인신문 절차가 진행되는 걸로 안다”며 일정에 우려를 표했다.
갱신절차 후 심리 재개를 앞둔 대장동 본류 재판, 형사1단독이 심리하는 위례 개발 특혜 의혹 재판 일정까지 고려하면 유 전 본부장은 앞으로 사실상 일주일 내내 법원에 출근 도장을 찍어야 한다. 이런 와중에 그는 이른바 ‘유동규 실록’으로 불리는 유튜브 방영횟수를 100회로 예고한 상황이다. 부정기적인 방송 등 언론 인터뷰까지 포함하면 법정 밖에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가 이렇게 쏟아내는 수많은 진술은 법정에서 신빙성 판단을 받게 된다. 검찰은 혐의 입증에 중요한 단서인 그의 진술을 두고 신빙성 굳히기에 나섰다. 증언을 뒷받침할 다른 증거를 제시하고, ‘디테일’에 집중하는 질문을 하는 식이다. 유 전 본부장은 법정에서 김 전 부원장에게 돈을 건넨 상황을 재연하거나, 정 전 실장 자택 구조를 직접 손으로 그려가며 진술하고 있다.
재판부들은 유 전 본부장 진술의 신빙성을 세밀하게 따질 것으로 보인다. 두루뭉술한 유 전 본부장의 진술에 의문을 제기한 재판부도 있었다. 정 전 실장과 김 전 부원장 사건을 심리하는 형사23부는 여러 차례 유 전 본부장에게 “기억을 짜내서 말하거나, 정답을 말하려고 하지 말고 명확히 진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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