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기념사서 윤 대통령이 거론한 “사기꾼”…누구 겨냥했나
민주당 “기념사마저 정치적으로 이용”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4·19혁명 열사가 피로써 지켜낸 자유와 민주주의가 사기꾼에 농락당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사기꾼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야당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의 4·19혁명 기념사는 정치 선동의 수단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수유동 국립4·19혁명민주묘지에서 열린 제63회 4·19혁명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에서 “거짓, 선동, 날조 이런 것들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들은 독재와 전체주의 편을 들면서도 겉으로는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운동가 행세를 하는 경우를 세계 곳곳에서 많이 봐왔다. 이러한 거짓과 위장에 절대 속아서는 안 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윤 대통령은 또한 “민주주의는 국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정치적 의사결정 시스템”이라며 “자유를 지키기 위한 민주주의가 바로 자유민주주의”라고 말했다. 또 “독재와 전체주의 체제가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쓴다고 해도 이것은 가짜민주주의”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가 피와 땀으로 지켜온 민주주의는 늘 위기와 도전을 받고 있다. 독재와 폭력과 돈에 의한 매수로 도전을 받을 수도 있다”면서 “그러나 지금 세계는 허위 선동, 가짜뉴스, 협박, 폭력 선동, 이런 것들이 진실과 자유로운 여론 형성에 기반해야 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을 왜곡하고 위협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은 바로 우리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라며 “민주주의의 위기는 바로 우리 자유의 위기”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는 혁명 열사의 뒤를 따라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히 지켜내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함께 모인 것”이라며 “뜻깊은 역사적 자리에 다시 한번 혁명 열사와 유가족분들께 감사 말씀을 올린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보도자료에서 “오늘 기념식은 10주기 기념식에만 대통령이 참석하던 관례를 깨고 2007년 이후 16년 만에 참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 여야 지도부도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와 악수를 나눴으나 별다른 대화를 하지는 않았다.
‘사기꾼, 전 세계적 세력’ 설명 앞뒤 안 맞아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사기꾼’ 발언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와 관련 없는 세력들이 민주주의자를 참칭하면서 나라를 어지럽히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그런 사례들을 제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일반론이란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4·19가 지켜낸 한국 민주주의와 관련해 사기꾼을 언급한 만큼 사기꾼이 ‘전 세계적 세력’이란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대통령의 4·19혁명 기념사는 정치 선동의 수단이 아니다”라며 “이승만 독재에 항거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확립한 4·19혁명 기념일에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과 언론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싶은 것이냐”라고 비판했다. 박 대변인은 “민주 영령의 정신을 계승하고 대한민국 헌법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대통령이라면 4·19 혁명 기념사를 국민 통합과 여야 화합을 위해 써야 한다”고 말했다.
김한규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역사상 대통령 기념사와 연설문을 통틀어 처음으로 ‘사기꾼’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면서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를 비난하기 위해 4·19 기념사마저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대통령에게 무슨 기대를 할 수 있을까”라고 썼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4·19를 추념하면서 성찰하는 자세마저 없으면 기념의 의미가 없다”면서 윤 대통령의 발언을 비틀어 “자식들이 피로써 지켜낸 자유, 우리가 농락당하고 있다”고 썼다.
이재랑 정의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정부를 향한 분노와 비판의 목소리를 ‘거짓 선동, 날조, 전체주의 독재’라 이야기한 적대적 기념사는 실로 국민을 향한 선전포고”라며 “윤 대통령이 현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가장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도 이날 4.19혁명 기념 논평을 통해 민주당을 공격했다. 유상범 수석대변인은 공식 논평에서 “국정의 동반자가 되어야 할 제1야당의 전·현직 당대표가 모두 사법리스크로 얼룩진 현재의 모습은 4·19 영령들이 이룩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퇴보시키는 일”이라면서 “다수란 숫자만을 믿고 당리당략을 위해 펼치는 정치는 4·19 영령이 꿈꾸었던 정치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의 기념사와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유 대변인은 추가 논평을 내고 “(윤 대통령의) 기념사 어디에도 현재 야당에 대한 언급은 없다”면서 “민주당은 대통령의 4·19혁명 기념사 전체의 흐름은 관심 없고, 항상 그래왔듯 정치공세 소재만 찾고 있다”고 민주당의 비판을 반박했다.
이두리 기자 re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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