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만 하는 태권도?’ 편견에 화끈한 날아차기···4050여성 ‘고군분투 수련기’
흰색 도복을 입은 수련생들이 순서대로 나와 임미화 관장이 들고 있는 미트(손잡이가 있는 동그란 판)를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호기롭게 발차기를 했다가 스텝이 엉켜 헛발질하거나 착지에 실패해 엉덩방아를 찧는 수련생도 있다. “40대분들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임 관장의 말에도 수련을 중간에 포기하는 낙오자는 없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나라차 태권도장의 성인반 수업 풍경이다. 이곳은 전체 수련생 중 30%가 성인이다. 이 중 40대 이상 여성 수련자는 약 9%(17명)를 차지한다.
각자 하는 일은 달라도 태권도에 대한 마음은 ‘진심’이라는 40~50대 여성 수련자들을 지난 17일 도장에서 만났다.
2021년부터 태권도를 시작했다는 고선규씨(48)는 20년차 임상심리전문가다. 고씨는 최근 태권도 입문 과정과 수련기를 담은 에세이 <내 꿈은 날아차>를 펴냈다. 고씨는 “비극적인 죽음을 경험한 내담자들을 오랫동안 위로하려면 나부터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지인이 태권도를 추천했다”며 “성인 여성들이 수련하는 모습이 신선했고 함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중학생 딸과 함께 수련하는 이문희씨(48)는 운동도 하고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도장에 등록했다. 미국 변호사인 이씨는 주변에서 ‘골프나 테니스를 하지 왜 태권도를 하냐’는 말을 종종 듣지만, 태권도를 그만둘 생각은 없다.
“태권도장이 주변에 이렇게 많은데도 정작 태권도를 해본 사람은 적다는 게 안타까워요. 정말 재미있거든요. 특히 미트를 발로 찰 때의 쾌감은 굉장해요. 배우는 속도는 남들보다 느리지만 1단 따기를 목표로 정진하고 있어요.”
40대 수련자 중 유일한 검은띠인 전미경씨(43)는 아이가 수련하는 모습을 보고 태권도에 입문했다. 한 포털사이트 개발자로 일하는 전씨는 태권도를 하며 허약체질에서 벗어나 복근 소유자가 됐다고 말했다. 당초 목표는 1단이었지만 지금은 사범 자격증에 도전할 수 있는 4단 따기를 위해 수련하고 있다.
전씨는 “골프장에 가면 40~60대를 흔히 볼 수 있는데 태권도를 하는 40대 이상 여성이 너무 적어 아쉽다”며 “은퇴 후 비슷한 또래의 할머니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는 실버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40대 이상 여성이 태권도를 배운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적은 없다고 말했다. 태권도가 국기임에도 ‘아이들이 하는 운동’ ‘보육의 연장선’으로만 여기는 탓이다.
수련자 중 최연장자이자 맏언니인 이경애씨(58)는 미국에서 30여년을 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재택이 활성화되면서 한국에 들어왔다. 이씨는 “미국에서는 태권도를 특별한 운동이라고 생각해 도장이 멀리 있어도 찾아가고 온 가족이 함께 수련한다”고 말했다. 그는 “젊을 때는 일하고 살림하느라 바빠 아이들만 태권도를 시켰는데 앞차기, 옆차기 등 발차기가 너무 재미있다”면서 “유단자들의 발차기를 보며 ‘언젠가 나도 해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고 말했다.
난생처음 써보는 몸의 움직임이 어색하고 다음 동작이 기억나지 않을 때 좌절하기도 하지만 이들은 태권도가 요즘 삶의 원동력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한편으로는 여성들이 요가원이나 헬스장처럼 편하게 찾아갈 만한 태권도장이 없다는 점은 아쉽다고 했다.
고씨는 “태권도장은 많지만 성인반을 운영하는 곳이 적다. 특히 여성들이 등록할 수 있는 도장이 많지 않다”며 “국기원이나 태권도협회에서 여성들이 태권도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여성 태권도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주 기자 jinj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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