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와인의 왕'… 혀에 닿는 떫은 맛에 반하다 [김기정 컨슈머전문기자의 와인 이야기]

김기정 전문기자(kijungkim@mk.co.kr) 2023. 4. 1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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⑭ 피에몬테지역 바롤로 와인
라 스피네따 캄페 2018
민트잎 살짝 베어물듯
떫은맛과 허브향 조화 탁월
브루노 지아코사 팔레토 2017
"시음 없이 구매 가능한 와인"
로버트 파커도 극찬

이탈리아 와인은 잘 알지 못합니다. 가끔씩 마셔볼 기회가 있었지만 프랑스나 미국 와인처럼 체계적·집중적으로 시음해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와인과 관련된 '업'을 가지고 매일 마셔보지 않으면 나라별·지역별로 다른 와인 '맛'의 탄착군을 형성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 종류의 와인을 한자리에서 비교 테이스팅해보는 '그랜드 테이스팅'이나 여러 빈티지의 와인을 맛볼 수 있는 '버티컬 테이스팅'을 적극 추천합니다.

최근 WSA와인아카데미에서 진행한 '바롤로(Barolo) 와인 시음회'에 참석했습니다. 바롤로는 이탈리아 와인의 자부심입니다. 국내에 수입되는 이탈리아 와인의 상당수가 중저가 '가성비' 와인이지만 바롤로는 이탈리아 와인 중 고급 와인에 속합니다. 이날 시음회는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역 4개 와인을 마셔보는 자리였습니다.

부르고뉴 레드가 '피노 누아' 단일 포도 품종으로 생산하는 것처럼 피에몬테도 '네비올로'라는 단일 품종으로 와인을 만든다고 합니다. 네비올로는 안개라는 뜻의 네비아(Nebbia)에서 유래된 것으로 바롤로 포도밭에는 안개가 잔뜩 낀 날이 많다고 합니다. 네비올로 품종은 질병에 취약하고 풍부한 일조량이 필요해 피에몬테 외에 다른 지역에서는 생산이 어렵다고 합니다. 아주 강한 타닌과 산도가 특징인데, 이날 시음회에 나온 와인은 산도보다 '타닌'이 너무나도 강했습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덜 익은 바나나 껍질을 씹을 때 느껴지는 떫은 맛 수준입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바나나도 '타닌' 성분 때문에 떫은 맛이 난나고 합니다. 와인을 시음하면 보통 와인을 바꿀 때마다 물을 마시거나 식빵을 먹어서 입안에 남아 있는 와인의 향과 맛을 제거하는데요. 이날은 정말 많은 물로 입안을 헹궈냈습니다.

네비올로 품종은 젊은 영 빈티지일 경우 '달달한 타닌감(Rose and Tar)'이 특징이고 오랜 시간이 지나 숙성되면 숙성될수록 젖은 낙엽, 흙맛, 버섯향이 느껴지는 '숲속의 풍미(Forestale)'가 느껴진다고 하네요.

이날 강의를 맡은 박수진 WSA와인아카데미 원장은 "개인적으로 네비올로 품종을 가장 좋아하는 '최애'로 꼽는다"면서 "처음에는 다가서기 어렵지만 보면 볼수록 매력에 빠져드는 '볼매' 스타일의 와인, '츤데레' 와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문제는 '시간'인데요. '숙성 잠재력'이 좋은 프랑스 부르고뉴 레드 와인의 경우 영 빈티지와 올드 빈티지의 맛 차이가 엄청나다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또 부르고뉴 레드가 '제값'을 하려면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합니다. 네비올로 역시 '볼매'의 특징을 제대로 느끼려면 숙성 잠재력이 높은 바롤로 올빈(올드 빈티지)을 마셔봐야 하는데요. 부르고뉴 올빈처럼 바롤로 올빈 역시 한국 시장에서는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가격도 비싸고 절대적인 수량 자체도 많지 않다네요. 숙성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회전식 발효조(Rotary fermenter)나 일반 오크통보다 작은 오크통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있는 추세라고 합니다.

라 스피네따 바롤로 캄페 2018

이날 시음회에는 체레토 바롤로 2016(Ceretto, Barolo 2016), 라 스피네따 바롤로 캄페 2018(La Spinetta, Barolo Campe 2018), 피오 체사레 바롤로 2017(Pio Cesare, Barolo 2017), 브루노 지아코사 팔레토 바롤로 2017(Bruno Giacosa, Falletto Barolo 2017) 등 네 종류의 와인이 나왔습니다.

WSA 금요시음회의 특징은 처음에는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진행한다는 점입니다. 어떤 와인인지 모르고 마셔야 자신의 기호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는 거죠. 실제 커피도 그렇고 와인도 그렇고 '가격'을 미리 알고 마시면 높은 가격의 제품에 더 우호적인 평가를 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습니다.

모두 상대적으로 영 빈티지 와인이라 진정한 바롤로의 맛을 평가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이날 시음회에서 참석자들의 선호도가 가장 높은 와인은 라 스피네따 바롤로 캄페 2018이었습니다. 이 와인의 가장 강한 특징은 '허브향'입니다. 민트 또는 박하향 같은 상쾌한 향이 와인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모히토 칵테일을 마시다가 민트 잎을 살짝 베어 물었을 때의 느낌입니다. 또 네비올로답게 꽉 찬 타닌의 맛이 강했고 복합미의 힌트가 숙성 잠재력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타닌과 산도가 부드러워졌을 때 얼마나 밸런스를 잘 유지하면서도 구조감을 가져가느냐가 관건일 것 같습니다.

브루노 지아코사 팔레토 바롤로 2017

이날의 숨은 하이라이트는 브루노 지아코사 팔레토 바롤로 2017이었습니다. 사실 향이 많지 않아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또 '산미가 높고 약간의 쌉쌀함이 특징이다'라고 테이스팅 노트에 적었습니다. 아직은 덜 숙성된 탓에 텁텁한 타닌의 맛이 지나치게 강했습니다.

박 원장은 "볼수록 매력적인 바롤로의 전형을 보여주는 와인"이라면서 "군더더기 없이 흠잡을 데 없는 맛과 향"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빈티지별로 들쑥날쑥함이 없는 것도 또 다른 특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로버트 파커도 "이 세상 와인 중 시음해보지도 않고 자신 있게 구매할 수 있는 유일한 와인"이란 평가를 남겼다고 합니다.

피오 체사레 바롤로 2017은 아쉬움이 큰 와인이었습니다. 이름을 알고 마시면 그 '명성' 때문에라도 좋은 평가를 받았을 텐데 블라인드로 시음하다 보니 저는 '가볍다'라고 짤막하게 한 줄 적었을 뿐입니다. 깊은 인상을 주지 못했습니다. 다만 1881년 설립돼 가장 오랜 전통을 지닌 바롤로 생산자이며 '바롤로의 교과서'라 불릴 정도로 전형적인 바롤로의 맛을 내는 와인이라는 설명을 들으니 다시 한번 마셔보고 싶은 생각은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체레토 바롤로 2016은 '감기약' 맛이 강했습니다. 신선한 산도가 살아 있으면서도 상대적으로 오래된 빈티지라 '세월'의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기정 컨슈머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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