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논란 중심에 선 ‘제주 들불축제’
시, 도민 의견 수렴 후 축제 추진 여부 결정
제주의 대표축제로 꼽히는 제주들불축제를 둘러싼 존폐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도민의 직접 참여와 토론으로 해답을 찾는 ‘숙의형 정책개발’ 방안까지 제안됐다.
제주녹색당은 지난달 27일부터 지난 17일까지 도민 749명의 서명을 받은 ‘들불축제 숙의형 정책 개발’ 청구인 서명부를 제주시에 제출했다고 19일 밝혔다. 제주도와 제주시는 지난 18일 접수받은 서명부가 조례가 정한 청구요건에 맞는지 등을 검토한 후 ‘제주도 숙의형 정책개발심의위원회’에 넘겨 추진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숙의형 정책개발 의제로 결정되면 원탁회의, 공론조사, 시민배심원제 등 여건에 맞는 방법을 활용해 들불축제 개선방안을 논의하게 된다.
앞서 제주시도 지난달 20일부터 31일까지 자체적으로 오픈채팅방 등을 통해 들불축제 개선방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다. 그 결과 존치와 폐지, 개선 의견이 모두 팽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시가 지난달 들불축제가 끝나자마자 도민 의견 수렴에 나섰고, 숙의형 정책개발 방안까지 제안된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 들불축제의 변화와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곳곳에서 제기되면서다.
들불축제는 오랜 전 제주 중산간 마을에서 봄이 찾아올 무렵 해충을 없애기 위해 목장이나 들판에 불을 놓았던 풍습에서 유래한 축제다.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1997년부터 시작했으며 서부지역에 있는 새별오름을 통째로 불태우는 것이 축제의 백미다. 제주 들판에 우뚝 선 거대한 오름이 불타면서 밤 하늘에 붉은 불꽃을 내뿜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오름 불놓기 당일에만 15만명의 도민과 관광객이 찾아 액운을 태우고, 한해 소원을 빈다.
하지만 들불축제는 오름을 인위적으로 불 태운다는 점에서 환경 훼손 논란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기후위기가 전 세계적인 화두가 된 상황에서 일부러 불을 놓고 불 구경을 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행위라는 지적도 있다. 제주녹색당은 “기후재난으로 세계 도처가 불타는 마당에 불구경을 하고, 기후위기가 심각한 상황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탄소를 배출하는 들불축제는 세계적인 웃음거리이자 파렴치한 행위”라고 밝혔다.
산불을 극도로 주의해야 하는 건조한 봄에 불을 놓는 축제라는 점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실제 올해 축제가 치러진 지난달 9~12일을 전후로 육지 곳곳에서 산불이 발생해 피해가 컸고, 정부 차원의 산불방지 대국민 담화문이 발표됐다. 이 때문에 들불축제는 4년만에 대면행사로 치러졌지만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오름 불놓기 등 불과 관련한 행사는 모두 취소됐다. 지난해에도 강원도 일대에서 대규모 산불이 발생해 들불축제가 전면 취소됐다. 당초 들불축제는 정원대보름을 전후로 열렸으나 추위와 비바람으로 파행 운영이 이어지자 2013년부터 경칩이 속하는 주말로 변경해 현재에 이르렀다.
환경 훼손 꼬리표…기후위기 시대 역행
건조한 봄철 산불 우려 속 불 놓기 문제
‘옛 목축문화 기반 이색 축제’ 존치 의견도
반면 제주의 옛 목축문화를 기반으로 20년 이상 개최한 축제라는 점, 불 놓기를 주제로 한 국내 유일의 이색 축제라는 점, 연인원 30만명 이상 몰리는 제주의 인기축제라는 점 등에서 폐지하기에는 아쉽다며 존치하자는 의견도 있다. 들불축제는 2020년부터 올해까지 대한민국 문화관광축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다만 산불로 전국이 고통받는 봄에 불을 놓는 것만큼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지난 11일 제주도의회에서 들불축제의 방향성을 묻는 도의원의 질문에 “들불축제 개최 시기가 건조해 산불에 상당히 취약하기 때문에 들불을 놓는 것 자체는 앞으로는 상당히 어렵다”면서 “(제주도는) 지속 가능한 생태적 접근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들불축제가) 그에 부합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축제를 주최하는 제주시는 내년 예산을 반영하는 9월까지는 개선방안을 도출한다는 계획이다.
제주시 관계자는 “현재 축제 평가 용역이 진행 중이고, 다음달 축제평과보고회를 열어 여러 의견을 듣을 예정”이라면서 “들불축제가 숙의형 정책개발 의제로 채택되면 해당 절차에 따라 시민이 참여하는 숙의과정을 진행하고 예산 반영시기 전까지 최선의 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미라 기자 mr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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