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사범, 가두는 게 능사 아냐” vs “엄벌로 경각심 높여야”[마약의 늪]
전문가 “중독범죄, 엄벌로 극복되지 않아”
재활·치료센터 등 인프라 확충이 더 중요
검·경 등 수사기관서는 “이상적인 얘기” 반론도
정부, 마약범죄 양형기준 강화 추진 계획 발표
[헤럴드경제=배두헌·김영철 기자] “마약 단순 투약자는 구속시키고 감옥에 가두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마약중독은 엄벌로 극복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치료와 재활이 더 중요합니다.”
마약사건 전문 변호사인 박진실 법무법인 진실 변호사의 말이다. 박 변호사는 “마약 투약 범죄자들이 실형을 살지 않을 경우 국민들 눈높이에 안 맞을 수 있다”면서도 “이미 중독된 사람들에게 ‘처벌이 낮아서 재범한다’는 개념은 옳지 않다. 투약 초범은 치료·재활이 먼저이기 때문에 초범에 한해서 집행유예를 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19일 헤럴드경제가 인터뷰한 마약관련 전문가 상당수는 ‘마약 투약 범죄자의 처벌을 강화하자’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박 변호사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저었다. 전날 마약 범죄 양형 기준을 높이겠다고 발표한 정부 정책과는 다른 결이다.
이한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팀장은 본지 통화에서 “단순 투약자의 경우 사회에서 격리하는 것보다는 치료와 재활을 통해 사회인으로 역할 할 수 있게 하는 게 중점이 돼야한다”며 “단순 형량만 높이면 오히려 문제를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전영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교도소에서 마약류 범죄로 복역한 사람들은 다시 재복역하는 비율이 다른 범죄에 높다”며 “마약사범의 경우 ‘다시는 교도소 가고 싶지 않으니 범죄를 중단해야지’ 같은 생각이 약하다. 그만큼 마약은 중독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약중독자들이 사회로 복귀할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과 인프라가 열악하다는 지적도 공통적으로 나왔다.
전 선임연구위원은 “마약류 사범은 가석방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대부분 만기석방으로 나오게 되는데 이들을 체계적으로 연계해주는 시설 같은 게 마땅치 않다”며 “그러다보니 과거의 (마약 경험을 공유하는) 네트워크로 돌아가 다시 마약에 손을 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김영호 을지대 중독재활복지학과 교수(한국중독전문가협회 회장)는 “형식적으로는 만들어져 있는데, 잘 돌아가는 시설은 없다”며 “마약 중독과 관련한 법과 예산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법에 국가가 마약 예방, 치료, 재활 등에 예산을 확보할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국가의 대응이 검경 등 수사기관의 범죄 단속에만 집중돼있고,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조직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작년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마약류 대책이 나오면서 원래 2개 이상의 중독재활치료센터를 설치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예산 확보 과정에서 삭제됐다”고도 했다.
반대로 마약사범 처벌이 너무 약해 재범 가능성을 높이고 마약에 대한 경각심이 약화된다는 반론도 있었다.
신민영 법무법인 호암 변호사는 “마약 유통책을 뿌리뽑기 어렵다면, 마약 초범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차원에라도 형량 강화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마약이 급증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수요자를 엄벌하는 것도 고육지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시기관들도 마약 범죄 형량 강화가 현실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마약이 다른 범죄와 비교했을 때 법 자체가 약한 건 아니다. 단지 재판부가 집행유예, 선고유예를 많이 주는 것”이라며 사법부의 솜방망이 판결에 아쉬움을 표했다.
이 관계자는 ‘마약중독은 질병인 만큼 치료·재활이 더 중요하다’는 전문가들 제언에 대해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다소 이상적인 얘기”라며 “국내 치료 체계가 다른 나라 대비 미비한 상황에서 그런 인프라 구축이 당장 되는 게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최근 남경필 전 경기지사의 아들이 상습투약 혐의인데도 판사가 석방(구속영장 기각)해줬다가 다시 마약 투약하지 않았나. 만약 구속됐으면 추가 범행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8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마약 관련 재활제도 보강과 함께 마약 범죄 단속과 처벌 강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신자용 법무부 검찰국장은 “2021년 마약사범 실형 선고율이 50% 이하로 떨어지고, 집행유예 비율이 높아졌다”며 “마약은 재범이 높기 때문에 경미한 형이 선고되면 재범에 이를 가능성이 높고, 경각심이 약화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제9기 양형위원회 출범에 앞서 마약사범의 양형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1차 의견서를 제출한 상태고, 조만간 정부 대책을 담아 범정부적인 의견서도 낼 예정이다.
badhone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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