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었다 생각하는 순간 ‘갈망’ 다시 찾아와” 마약사범 3분의1 재범[마약의 늪]
마약 사범 재범률 36.6%
병원 입원, 교도소 수감에도 마약 끊지 못해
마약 후유증에 약물 중독 빠지기도
“출소 이후 재활 치료 의무화해야”
[헤럴드경제=박지영·박혜원 기자] “모든 마약에 한 번은 없습니다.”
지난 12일 경기도 마약(약물)중독치유재활센터 ‘경기도 다르크’에서 만난 A(36)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A씨가 마약을 처음 접한 것은 일본 유학생활 중이던 2005년. 지인의 권유로 대마초, 엑스터시, LSD 등 다양한 마약에 손을 댔다. 그때까지만 해도 본인이 ‘중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A씨는 “2011년 한국에 돌아온 뒤로는 2018년까지 마약을 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2018년 필로폰을 시작했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중독의 길로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경찰에 붙잡힌 경험도, 1년6개월 동안의 단약도 A씨를 마약에서 완전히 구해내지 못했다. 재발은 순식간이었다. A씨는 2019년 검거돼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고 2021년 3월부터 2022년 9월까지 약을 끊기도 했다. A씨는 “‘마약에서 완전히 벗어났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마약을 구해줄 수 있다는 말에 ‘갈망’이 다시 시작됐다”며 “그 한 마디에 가슴이 쿵쿵 뛰고 손에 땀이 났다. 결국 다시 손을 댔다. 중독은 평생 안고 가는 병”이라고 경고했다. A씨가 지난 5년간 필로폰 구매에 쓴 돈만 2억원이 넘는다.
대검찰청의 ‘마약류 범죄 백서’에 따르면 2021년 마약범죄 재범률은 36.6%다. 마약류 사범 3분의 1은 마약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검거된 마약류 사범은 1만8395명. 국내 마약류 암수범죄율(실제 발생했으나 통계에 잡히지 않은 범죄비율)이 28.57배라는 점을 고려하면, 해마다 17만명의 마약중독자들이 단약과 재발을 반복하는 셈이다.
마약은 뇌의 보상 회로를 자극해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분비시킨다. 도파민은 쾌락, 즐거움,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마약에 중독된 이들은 보상 회로의 민감도가 높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마약에 쉽게 중독되는 사람들은 일반적인 경우보다 마약에 민감하다. 작은 자극에도 큰 반응이 따라온다”며 “(중독자는) 실제 마약이 몸에 들어오지 않아도 기대치가 있기 때문에 마약에 대한 생각을 견디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병원, 교도소 등 마약과 단절된 환경에서는 마약을 끊었다가도 사회로 복귀하면 다시 마약을 시작하게 되는 이유다.
실제 헤럴드경제가 만난 마약중독 경험자들은 모두 마약을 끊었다 다시 시작한 경험이 있었다. 입원을 해도, 교도소에 수감돼도 그때뿐이었다. B(25)씨는 지난해 3월 스스로 정신병원을 찾았다. 한 달 동안 입원치료받은 뒤 사회에 나와서는 4개월 동안 마약을 복용하지 않았다. B씨는 “어느 정도 끊었다고 느끼니 자신감이 생겼다. ‘마약을 조절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마약을 했다”며 “착각이었다. 다시 마약을 시작한 뒤로는 4개월 동안 마약만 했다. 직장에서 잘렸고, 우울증이 심해졌으며, 가족에게 못 볼 꼴을 보였다”고 회상했다. B씨는 “너 이러다 죽겠다”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재활센터에 들어와 회복 중이다.
C(29)씨는 병원과 교도소에 다녀와서도 마약을 끊지 못했다. 2021년 6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C씨는 선고유예를 받았고 같은 해 11월부터 3개월간 입원하기도 했다. C씨는 “병원에서 나온 지 1~2주 만에 다시 시작했다. ‘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이전보다 더 심하게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C씨는 결국 어머니가 마약 투약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면서 4개월 동안 교도소에 수감됐다. C씨는 교도소에서 나와 다시 2개월 동안 입원했다. 이후에도 마약에 대한 갈망이 지속돼 지난 1월 재활센터에 들어왔다.
마약중독은 또 다른 약물중독에 빠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마약중독으로 인한 우울증이나 마약 투약 후유증에 향정신의약품을 오남용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A씨는 “필로폰 중독이 심해지면 투약 후에 망상, 환청 등에 시달린다. 처음에는 30분 정도였던 부작용이 길게는 1주일, 2주일씩 지속된다”며 “너무 괴로우니 동네 정신과에 가서 우울증, 공황장애가 있다며 약을 받는다. 일종의 자기 처방인데 결국 약에 취해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는 건 똑같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전반적인 재활치료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단순히 마약 복용·투약을 중지하는 ‘단약’과 마약에 대한 태도와 생활방식 전반을 바꾸는 ‘회복’을 구분하고 후자에 방점을 둬야 한다고 봤다. B씨는 “돌이켜보면 마약을 다시 하게 된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며 “(병원을 나온 이후) 마약했을 때와 동일하게 불규칙하게 살았고, 마약했던 사람들을 만나서 마약 경험을 나누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B씨는 “단순히 약을 먹지 않는 상태는 마약중독에서 벗어나는 것과 다르다. 회복과 재활에 대한 정보가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약중독 재발을 막기 위해 사법 절차와 치료·재활을 의무적으로 연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낭희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마약중독은 오랜 시간 개입이 필수적”이라며 “하지만 한국은 마약중독자에 대한 형사, 회복 시스템이 각각 분절돼 있다. 교도소에서 나와 사회로 돌아가서도 꾸준히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게 법으로 강제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교도소를 나와 재활·치료를 의무적으로 받게 하고 입원, 입소, 통원 등 다양한 절차를 입안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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