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전세사기 피해가구 셋 중 하나는 ‘최우선변제’도 못 받아… “우선 매수권 줘야”

김민소 기자 2023. 4. 1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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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청년 3명 극단선택
피해 눈덩이 불듯... 검찰 추산 100억→500억
최우선변제 1원도 못 받은 가구... 3곳 중 1곳
경매중지는 ‘임시방편’...”우선매수권 부여해야”
아기는 종일반에 맡기고 저랑 남편은 하루 종일 일만 하고 있어요. 애기랑 밖에 나 앉을까봐 매일 불안하죠. (사기당한 집이) 경매에 넘어갔는데 당장 낙찰되면 빚더미만 안고 쫓겨나야 하니까...

인천 미추홀구에서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황모(30)씨는 두 살배기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온 종일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전세사기를 당한 신혼집이 경매에 넘어가 수천만원의 빚을 떠안게 됐기 때문이다. 황씨는 “경매 일시 중단 등 정부가 여러 대책을 내고 있지만, 내일 당장 경매가 확정되면 집을 비우고 대출금을 토해내야 한다”며 불안한 심정을 토로했다.

19일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대책위(대책위)에 따르면 인천 미추홀구 일대 전세사기 피해가구는 3079세대. 이 중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한 가구는 2083세대, 경매나 공매에 넘어간 가구는 1066세대에 달한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경매로 넘어간 주택에 대한 최우선 변제액 상향 ▲연 1~2%대 저리 대출(전세대출 대환대출 포함) ▲경매 중지 등 피해를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연이어 발표했지만, 이미 수천만원의 빚을 떠안은 피해자들을 구제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2개월 사이 전세사기를 당한 청년 세 명은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소액 임차인을 보호해주는 ‘최우선변제 제도’가 현실에선 무용지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근 몇 년 사이 전셋값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변제 기준을 벗어난 가구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 2월 변제 기준과 변제액을 소폭 높였지만, 소급 적용이 되지 않아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픽=손민균

미추홀구 전세사기는 ‘건축왕’이라 불리던 남모(61)씨가 주축이 됐다. 건축업자인 남씨는 수도권 일대에 토지를 매입해 우후죽순으로 주택을 지었다. 이후 완공된 주택을 담보로 받은 대출과 전세보증금 등으로 다른 주택을 신축하면서 주택을 총 2700여채까지 늘렸다. 은행 대출금으로 걸려있는 근저당만 3000억원대를 넘어선다.

검찰은 이 같은 과정에서 남씨 등이 가로챈 전세 보증금이 500억원대일 것으로 파악했다. 당초 피해금액은 125억원, 피해자는 161명으로 추산됐지만 수사가 진행되면서 피해자와 피해금액은 빠르게 늘고 있다.

◇ 최소 생활 보장해준다는 ‘최우선변제금’... “한푼도 못 받아”

최우선변제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조항으로, 전셋집이 경매로 넘어갈 때 소액 임차인이 보증금 중 일정 금액을 최우선 변제받도록 한다. 근저당 설정으로 선순위가 된 은행보다 앞서 보증금 일부를 보장받게 하는 것이다. 소액 세입자에게 최소 생활을 보장해주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대책위에 따르면 대책위에 가입한 439가구 중 131가구, 셋 중 한 곳은 최우선변제금을 단 한푼도 받지 못했다. 최근 3년 사이 전셋값이 급등해 소액 임차인 기준에서 벗어나는 데다가 소액 임차인 기준 역시 근저당이 설정된 시점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전세사기 피해로 극단적 선택을 한 30대 청년은 보증금이 7000만원이었지만, 2011년 근저당 설정 당시 소액 임차인 전세금 기준이 6500만원이었으므로 보증금을 단 한푼 돌려받을 수 없었다. 지난 17일 사망한 30대 청년도 임대인의 요구로 전세보증금을 9000만원으로 올리면서 소액 임차인 기준액을 넘어서 최우선 변제를 받지 못하게 됐다.

그래픽=손민균

이에 정부는 지난 2월 최우선변제에 있어서 소액 임차인의 기준과 변제액을 모두 소폭 상향했다. 인천의 경우 소액임차인 범위가 7000만원 이하에서 8500만원 이하로, 우선변제 금액도 2300만원에서 2800만원 이하로 올랐다. 그러나 이 같은 변화에도 이번 개정안이 소급 적용이 되지 않아 전세사기 피해자 다수는 여전히 1원도 건지지 못할 상황에 남게 됐다.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를 지원하겠다고 내놓은 ‘연 1∼2%대 저리 대출’을 이용한 피해자는 석 달간 단 8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피해자 3000명분 예산 1660억원을 책정해뒀다.

그러나 아무리 저리라고 해도 또 빚을 내는 게 피해자들에겐 부담이고, 대항력 유지 등을 위해 이사를 원치 않는 피해자가 많아 실적은 미미하다.

◇ “경매 중단은 미봉책... 경매 우선 낙찰권 보장해야”

피해자들은 경매 중지와 더불어 경매 우선 낙찰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매 중지는 거주지를 옮기거나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 필요하지만, 마땅한 대책이 없이 추후 경매가 재개될 경우 보증금을 잃는 건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전세사기 피해 주택 중 경매로 넘어간 곳은 집값 하락 등의 영향으로 원래 가격의 50~60% 수준에서 낙찰되고 있다. 선순위 채권자인 금융권이 먼저 채권을 회수하고 나면 사실상 피해자들이 받을 수 있는 돈은 사라지게 된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경매 주택을 우선 매수할 수 있는 권리와 매수 대금을 저리에 대출할 수 있는 방안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이에 여당인 국민의힘은 전세 사기 대책으로 피해 주택을 공공 매입하거나 피해자들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채권을 회수해야 하는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계속해서 경매를 중단할 수가 없고, 현행법으로는 금융기관에 권고 형태 외에는 경매를 중단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낙찰가가 많이 떨어진 경매 주택에 대해 임차인에게 우선매수청구권을 줘서 싼값에 낙찰을 받도록 하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해 입게 된 피해를 상쇄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임성도 법무법인 우리 변호사도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경매절차에서 우선적으로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관련 법령을 개정하거나 특별법을 제정하면 가능하다”며 “공동소유자나 가등기권자 등 다른 권리자들과의 관계를 고려해 우선매수권을 행사할 요건이나 시기 등을 정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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