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봉투, 나와 상관없다"는 송영길에 민주당 부글부글…출당 요구까지
[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
지난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사건 중심에 있는 송영길 전 대표에 대해 당내 곳곳에서 성토가 터져나오고 있다. 계파와 선수를 막론하고 민주당 의원들은 송 대표의 '모르쇠' 태도에 "무책임하다"고 비판하며 한목소리로 그의 조기 귀국을 요구했다.
일각에선 송 전 대표와 더불어 이번 사건에 연루된 의원들을 출당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총선을 일 년여 앞두고 터진 대형 악재에 당내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민주당 최대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더미래)는 19일 입장문을 발표하고 "송영길 전 대표가 조기에 귀국하지 않고 이 사건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민주당은 가장 강력하고 엄중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촉구한다"며 사실상 출당 조치를 요청했다.
더미래는 "송 전 대표는 5선의 국회의원으로서, 인천시장과 당 대표까지 지낸 민주당의 책임있는 정치 지도자"라며 "그런데 송 전 대표는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전당대회 관련 사건에 대해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며 이번 주말 파리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밝히겠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 대표가 직접 국민에게 사과하고 송 전 대표에게 조기 귀국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줄 것을 요청했에도 불구하고, 귀국을 미루며 외국에서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당의 전직 대표로서, 또한 책임 있는 지도자로서 매우 부적절한 태도이자 처신"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더구나 본인이 당 대표 시절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된 의원들에 대해 탈당 권고, 출당 조치를 했던 전례에 비추어서도 매우 부적절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송 전 대표에게 조기 귀국해 의혹을 명명백백하게 밝힐 것을 정식으로 요청한다"고 촉구했다.
민주당 초선의원 모임 '더민초'도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송 전 대표는 조속히 귀국해 사건의 실체를 밝혀달라"며 "당이 위기이다. 국민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모든 노력을 보여드려야 한다. 당 대표 후보로서 당시 있었던 일들을 책임지고 확인해, 우리 당과 국민들께 알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번 기회에 우리 당에 아직 구태가 남아 있다면 모두 드러내 일소하고, 완전히 새로운 당으로 다시 태어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깅조했다.
당 지도부 내에서도 비판 목소리가 나왔다. 고민정·송갑석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송 전 대표를 공개 저격했다.
고 최고위원은 "도대체 송영길 캠프에서 어떤 일이 발생했길래 거짓이라고 믿고 싶은 말들이 녹음돼 있는지 납득할 수 없다"며 "(송 전 대표가) 누명을 썼다면 해명해야 하고, 작은 잘못이라도 있는 것이라면 국민 앞에 무릎꿇고 사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얼마 전 오영환 의원은 정치 개혁을 이루지 못했다며 스스로의 권한을 내려놓았다. 이런 후배 앞에서 어떤 선택이 존중받을 것인지 송 전 대표가 잘 알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송 최고위원 역시 "따로 할 말이 없다고 하는 송 전 대표의 무책임한 태도를 보며 당원들은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며 "다시 한 번 빠른 귀국을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한 친명 성향 김두관 의원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민께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얼굴을 들 수가 없다"면서 "먼저 송 전 대표, 윤관석·이성만 의원은 과거 사례와 같이 일단 탈당 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우리 모두 여의도와 동료 의원만 보지 말고 국민의 분노를 정면으로 봐야 한다"며 "송 전 대표는 속히 귀국해야 한다. 국민과 당원 앞에 진실 그대로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낙연(NY)계 이병훈 의원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본인 주변에서 일어난 문제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며 귀국을 미루는 모습은 당혹스럽기까지 하다"며 "5선 국회의원을 하고 당 대표까지 지낸 분이다. 송 전 대표는 하루라도 빨리 귀국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의원은 "기자간담회는 파리에서 가질 게 아니라 국민 앞에서 열어야 한다"며 "위기에 대처하는 모습에서 사람의 크기가 드러나는 법"이라고 지적했다.
역시 NY계인 윤영찬 의원도 "돈봉투의 수혜자로 지목받는 송 전 대표가 빨리 귀국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특히 윤 의원은 "작년에 이미 언론이 녹취에 대해 송 전 대표 측에 문의했고, 부인하는 와중에 프랑스로 떠난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 역시 충격적인 일"이라면서 "당을 검찰 수사의 칼날에 버려두고 외국으로 떠났던 것이냐"고 비판했다.
돈봉투 의혹이 최초로 제기된 후로 송 전 대표는 줄곧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며 선을 그어왔다. 송 전 대표는 이재명 당 대표가 지난 16일 전화 통화로 진상 규명을 위해 조기 귀국을 요청했으나 "(한국에) 들어가서 무슨 이야기를 하겠느냐"며 사실상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 전 대표는 즉시 귀국하는 대신 현재 체류 중인 프랑스 파리 현지에서 오는 22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송 전 대표는 이날 파리에서 한국 취재진과 만나 "22일에 말씀드리겠다"며 웃음만 짓고는 구체적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송 전 대표가 즉시 귀국을 미루고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밝히자 민주당 의원들은 애가 타는 모습이다. 송 전 대표가 귀국 시점이 늦어질수록 혐의를 숨긴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심어줄 수 있고, 총선을 1년도 안 남긴 시점에서 회복 불가능한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취재진과 만나 '송 전 대표에 대해 출당 등 조치를 고민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아무 답을 하지 않고 말을 아꼈다.
한편 돈봉투 사건을 계기로 당 내 도덕적 해이 문제가 도마에 오른 가운데, 일부 의원들은 '돈봉투 액수가 밥값 수준에 불과하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정성호 의원은 지난 1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부끄럽고 참담하다"면서도 "(돈봉투) 금액이 대개 실무자들의 차비, 진짜 소위 말하는 기름값, 식대 정도 수준일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정 의원은 결국 "부끄러운 사안으로 민주당에 실망한 국민들의 마음을 잘 알면서도 상처를 주는 실언을 한 저의 불찰을 반성한다"며 처음 정치에 나설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더욱 낮고 겸손한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고 사과했다.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정 의원의 발언에 대해 "당내 경선도 민주주의의 표상인데 그 문제로 지금 민주당이 상당히 어려움에 있다"며 "(정 의원이) 잘못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장경태 최고위원은 그러나 이날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다시금 '밥값'을 언급했다. 장 최고위원은 "(캠프 실무진이 받은 것으로 알려진)사실 50만 원은 한 달 밥값도 안 되는 돈으로 이런 돈은 아마 실비이지 않을까. 이런 관행은 없어져야 되지만 50만 원이 살포됐다는데 거창한 금액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에는 어렵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에 진행자가 "언론이 과장 확대 보도하고 있다는 말이냐"고 묻자 장 최고는 "50억을 7명에게 준 것과 50만 원을 20명에게 준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진행자가 다시 "어제 정성호 의원이 '이 돈은 차비, 식대 수준이다'고 한 그 말에 공감한다는 것인가"라고 하자, 장 최고위원은 "보통 선거캠프는 오전 7시부터 저녁 11시까지 돌아간다. 상근 근무자가 하루 3끼를 한 달 간, 30일이면 그만큼 금액이 들 것"이라고 말하며 정 의원의 전날 발언을 두둔했다.
[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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