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칼럼] 우리는 어떻게 세월호 10년을 맞을까
김영희 | 편집인
지난 16일 ‘세월호 참사 가족극단 노란리본’의 활동을 담은 다큐 영화 <장기자랑>을 봤다. 개봉관도 상영 횟수도 많지 않아 일정에 맞추다 보니 어쩌다 ‘그날’이 됐다. 극장이 비어있으면 쓸쓸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객석이 절반 넘게 찼다. 영화 속 세월호 엄마들은 배역을 두고 시샘도 하고, 때론 멋지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감추지 않는다. ‘피해자다움’에 갇히지 않는 그들의 일상에 나를 포함한 관객들은 울다가 웃었다. 어느덧 무대 경험 300회를 넘긴 베테랑 극단의 단원들. 그들은 계속 사회에 말을 걸고 있었다.
‘9주기’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진 올해다. ‘세월호 피로증’이란 말이 나돌던 때, 그래도 세월호 10년쯤 되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다. 그 정도 세월이면 갈등과 혐오도 과거 일이 되고 안전 사회에 대한 국가적 합의가 어느 정도는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였다. 그런데 10이란 숫자가 현실로 쑥 다가왔다. 얼마 전 통화한 유민 아빠 김영오씨는 “광화문광장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단식할 때 어쩌면 아주 오래 걸리지 않을까 했는데 그게 현실이 됐구나 싶다”고 말했다. 지역에서 에어컨 설치기사 일을 하는 그는 아직도 자신을 향했던 혐오와 정보기관 사찰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했다. “다른 에스엔에스와 달리 일베 같은 이들이 없어보여” 겨우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고 했다.
지난해 당선자 신분으로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가장 진심 어린 추모는 대한민국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던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침묵했다. 김건희 여사의 ‘노란 스카프’ 같은 것도 없었다. 대통령실은 별도 메시지가 없느냐는 질문에 세종·안산·인천 등 행사에 국무총리 등이 참석했다며 “충분히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전달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반성과 사과 없이 ‘역대 내각의 인식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는 일본 정부식 발언이라도 배운 걸까. 교육부는 안산에서 오후 3시 열린 기억식에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017년 이후 처음으로 불참한 데 대해 “교통 여건 등이 불확실해 장차관이 역할을 나눈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전국 시도교육청에 보낸 안전주간 공문에 ‘세월호 참사 추모’ 표현이 사라진 것이나 부총리가 별도 추도사를 내지 않은 것도 “특별한 의도는 없다”고 했다. 궁색한 변명이다.
정권 차원에서 짜기라도 한 듯 이뤄진 침묵과 부재, 변명 뒤에 이태원 참사가 있음을 모르진 않는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공사로 서울시의회 앞으로 옮겼던 ‘세월호 기억공간’이 쫓겨날 상황을 수수방관하고 이태원 참사 합동분향소엔 2900만원 변상금을 부과했다. 얼마 전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세월호 이후 구축했던 재난안전통신망의 서버 용량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행정안전부는 이태원 참사 당시 교신 내용을 모두 삭제했다. 세월호와 이태원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추모관의 형태나 장소는 협의할 수 있는 사안이다. 개인적으론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조사국이 세월호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이 지지하는 내인설이 아니라 잠수함 충돌설 같은 외력설 입증에 매달려온 걸 비판적으로 생각해왔다. 공무원들의 사법적 처벌만이 쟁점이 될 때 참사에 대한 사회적 기억은 외려 납작해지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다. 그럴수록 사회적 참사의 희생자들을 존중하는 정부의 인식과 태도가 중요하다. 유가족들을 ‘떼쓰는 집단’이나 ‘불법점유자’로 여기는 듯한 정부와 서울시 모습에 인간적 모멸감을 느끼는 이가 나뿐일까. 안전한 사회를 위해 사회적 참사를 기억하려는 시민들의 ‘연대’를 지우겠다는 불순한 의도마저 느껴진다.
지난주 한겨레 토요판은 응급구조사가 된 세월호 생존자 애진씨의 이야기를 전했다. <장기자랑>에는 노란리본 극단에서 활동 중인 애진 엄마 김순덕씨도 나온다. 영화에서 김씨는 희생자 유족들이 손을 내밀어줘 고맙다고 말하지만, 수인 엄마 김명임씨는 애진 엄마가 이 세상과 끊어지지 않는 느낌을 줬다며 고마워했다. 거기까지 아니어도 괜찮다. 4·16 재단이 일주일간 진행한 온라인 캠페인 ‘#기억은 힘이 세지’엔 3만7800여명이 참여했다. 어떤 이는 나처럼 고작 영화 한편을 봤을 거고, 어떤 이는 우연히 티브이에서 기억식 생중계를 봤을지 모른다. 거기서부터가 출발이다.
1989년 축구팬 97명이 압사한 영국 힐즈버러 참사는 20여년 뒤에야 독립적 조사가 이뤄졌다. 비록 법적 처벌은 한명에 그쳤지만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구조적인 문제가 드러났다. 조사 결과를 들은 희생자 유족들은 5분가량 기립박수를 쳤다. 반면 지난해 참사 8년 만에 사참위의 ‘백서’가 나왔지만 논란만 일부 보도됐을 뿐, 평가나 후속조처는 전무한 게 우리 현주소다. ‘누가 잘못했는가’를 넘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사회적 기억을 만들지 않는다면 안전 사회도,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공동체도 불가능하다. 정부가 침묵하고 지우려 한다면, 시민들이 세월호 10년을 이야기할 때다.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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