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혁신 단상]〈6〉 건설혁신의 지향점과 역할 분담
발주자는 보다 적은 비용으로 보다 좋은 품질의 시설물을 얻기를 원한다. 시공자는 발주자의 요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어야 공사를 수주할 수 있다. 그래서 상명하달의 건설문화로, 불철주야 돌관작업으로, 때로는 과도한 밀어붙이기로,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발버둥 친다. 간혹 밑지면서도 일을 한다. 발주자의 이익추구와 이에 따른 시공자의 무리한 건설 활동의 부작용이다. 한편, 시공자도 늘 높은 이윤을 확보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종종 하도급업자에게 손실을 전가하거나, 슬쩍 부실하게 공사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기필코 원가를 아껴 이윤을 확보하려 한다. 이런 얘기는 건설기업의 이익추구로 발생하는 부작용의 일부이고, 더 많은 부정적 사례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근로자들은 조금이라도 덜 일하고 조금이라도 더 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임금을 더 많이 주는 현장으로 옮겨 다니기도 하고, 매뉴얼대로 일하기보다는 최대한 쉽고 빠른 방법으로 일하고 싶어한다. 그러다 보니 건설현장에서는 품질하자와 안전사고 문제가 늘 따라다닌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발주자가 더 낮은 비용으로 더 좋은 시설물을 가능한 한 빨리 얻고 싶어 하는 것, 시공자가 조금이라도 더 이윤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 근로자가 임금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받고자 하는 것. 그런데 이 세 가지의 서로 다른 추구는 상충된다. 발주자의 욕구를 충족시키자니 시공자의 이윤이 줄 것이고, 시공자가 이윤을 더 챙기기 위해 공사비를 마냥 깎아 줄 수도 없고 직원이나 작업자의 임금을 막 올려 줄 수도 없다. 이 상황을 동시에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 있다. 바로 노동생산성 향상이라는 마법이다. 이 마법을 쓰면 서로 충돌하는 세 가지 욕구가 모두 충족될 수 있고, 부작용도 해소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노동생산성 향상은 기업의 본질적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발주자에게 더 낮은 비용으로 시설물을 건축해 줄 수 있으면서도 기업이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다면, 그래서 직원과 근로자의 임금과 복지 수준도 올려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경쟁력이다. 이런 생산성 기반의 경쟁력 향상 원리는 곧 가격경쟁력과 품질경쟁력을 의미하며, 국내시장과 해외시장을 가리지 않고 통하는 본질적인 것이다. 결국 건설혁신의 지향점은 획기적인 생산성 향상이어야 한다.
건설산업의 노동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누가 어떤 역할을 분담해야 할까. 우선 기업은 당연히 스스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생산성 향상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생산성을 높이는 설계·엔지니어링기술 및 시공기술 개발과 디지털전환을 통한 프로젝트 관리 혁신에 기반을 둬야 한다.
인력 감축이나 비정규직 증원 등과 같은 방법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이런 방법은 생산성이 향상된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겠지만, 지속가능한 수단이 절대 아니다.
인력 감축이나 비정규직 증원 등과 같은 방법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상장기업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살펴보면 지난 2018~2022년 5년 동안 10대 건설사의 비정규직 비율은 26%에서 31%로 늘어났다. 정규직이 5% 늘어나는 동안 비정규직이 23%나 늘어난 결과다.
건설현장은 더 심각하다. 몇 곳을 알아보니, 보통 40%에서 많게는 60%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연구개발(R&D) 투자도 더 필요하다. 2022년 기준 10대 건설사의 매출액 대비 R%D비 비중은 평균 0.60%인데 R&D 투자가 가장 큰 기업 한 곳이 1.14%이고 나머지는 1%도 안 된다.
누구나 알만한 어느 회사는 0.06%였는데, 이 회사의 2022년도 비정규직 비율은 42%에 달했다.
글로벌 건설기업은 어떨까? 2020년에 발표된 맥킨지 보고서를 보면 세계 2500대 기업에 속하는 건설기업의 2017년 R&D 투자 비율은 1.4%다. 우리 건설기업들이 이 의미를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발주자는 건설산업의 생산성 향상 노력을 자극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물론 이런 것은 공공발주자의 몫이다. 민간발주자가 건설산업 생산성에 관심을 기울일 이유도 없고, 관심을 보여 달라고 할 논리적 설득도 불가능하다. 민간 발주자는 대부분 일회성 공산이 높기 때문이다.
평생 집을 몇번 지을 것이며, 빌딩을 몇채나 지을 것인가.
그러나 공공부문은 다르다. 매년 수십조원의 건설사업이 집행된다. 올해 계획된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 공공부문 건설공사의 발주 규모가 38조원이 넘고, 2013~2022년 공공부문 수주액 평균은 47조원이 넘는다. 영향력의 범위도 넓지만 매년 지속된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공공발주자는 발주자로서 당연히 저비용 고품질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건설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유도하는 각종 제도를 운용할 필요가 있다. 건설기업의 생산성 향상이 발주자·시공자와 건설근로자 모두의 이익을 향상시킬 수 있는 윈-윈-윈 전략이고 해외건설 경쟁력 향상의 밑거름이며, 국가 경제적 차원에서도 이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느냐? 2월과 3월 기고문에 언급한 영국과 싱가포르 사례를 참고하라.
유정호 광운대 건축공학과 교수 myazure@kw.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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