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잠그는 EU…반도체법·탄소국경세에 韓기업 긴장
유럽연합(EU)이 자국 산업을 강화시키기 위한 법을 줄줄이 내놓으며 블록화 작업을 본격화한다. 대규모 투자를 통해 역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는 반도체법, 철강·알루미늄·비료 등 수입품에 탄소국경세를 부과하는 탄소국경제도(CBAM) 등이 대표적 예다. 주요 수출국들의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해지면서 정부의 대응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같은 날 유럽의회는 본회의 표결을 통해 CBAM과 탄소배출권거래제도(ETS) 확대 개편안 등을 최종 승인했다. EU 이사회가 법안들을 공식 승인하면 법률로 최종 확정된다.
CBAM은 EU가 수입하는 철강, 알루미늄, 비료, 전기, 시멘트, 수소 등 6개 품목 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량 추정치에 탄소국경세를 부과하는 법안이다. 탄소 국경세는 EU 탄소배출권거래제(ETS)를 기준으로 책정된다.
ETS는 탄소 배출량이 기준을 넘을 경우 초과량에 대한 배출 권리를 거래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EU는 ETS 탄소 배출 감축 목표치를 상향 조정하고, CBAM 시행 확정에 따라 ETS의 무료 할당제도 2026년부터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다.
반도체법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EU의 반도체법이 역외 기업에 대한 명시적인 차별 조항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평가했지만 EU가 역내 혜택을 강화하고 공격적으로 점유율을 높이면 우리 기업들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EU가 미·중에 이어 세계 반도체 수요의 20%를 차지하는 3대 소비시장이라는 것도 우리 기업이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EU의 반도체 공급망 점유율은 10%에 불과하지만 대부분 시스템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 기업인 것도 시스템반도체 역량을 키우려는 한국에 위협이 될 수 있다. 한국의 시스템반도체 점유율은 3% 수준이다.
미국 반도체전문지 세미콘엔지니어링이 집계한 2021년~2022년 주요 반도체 기업들의 유럽 지역 반도체 투자액은 약 487억달러(약 64조원)다. 유럽의 굵직한 반도체 기업뿐만 아니라 인텔, 글로벌파운드리(GF)도 유럽에 첨단 칩 제조 시설을 잇달아 건설할 예정이다. 여기에 반도체법을 통해 조성하기로 한 430억유로(약 62조원)를 합치면 126조원을 넘는 대규모 투자가 단행된다.
지난 3월 발표한 '국가첨단산업 육성전략'과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강화 이행전략'이 좋은 예다. 정부는 경기 용인을 시스템반도체 육성을 위한 국가산단으로 지정했다. 2042년까지 300조원을 투입해 첨단 반도체 제조공장(팹)을 5개 구축하고 국내·외 우수 소부장 기업, 팹리스 기업을 최대 150개 유치할 계획이다.
세액공제율도 대기업·중견기업의 경우 현행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각각 확대했다. 정부는 앞으로도 국내 반도체 기업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정책을 보완한다는 방침이다.
CBAM과 관련해서도 CBAM 인증서 구매가 의무화되는 2026년 전까지 EU와 협의를 지속해나간다. 정부는 EU에 한국이 2015년부터 운영 중인 탄소배출권제도(ETS) 등 탄소 감축 정책을 반영해서 CBAM 인증서 감면 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요청중이다. 이외에도 RE100과 RPS(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 전기요금 내 환경부담금 등 이중 삼중으로 탄소배출에 대한 비용을 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는 또 오는 10월 타결이 예상되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지속 가능한 글로벌 철강 협정'(GSSA) 가입을 추진 중이다. GSSA는 미국과 EU가 정한 탄소배출량 기준에 따라 철강 관세율을 차등 부과하는 협정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EU에서 CBAM 초안을 낼 때부터 업계와 논의해 우리 기업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협상을 지속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이에 대응해 ETS를 개편하고 기술 탄소 저감을 위한 연구개발(R&D) 예산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민경 기자 eyes0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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