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로 전재산 잃었는데 빚 내서 또 전세 가라는 정부
실 집행은 9억에 불과·긴급주거도 9명뿐
정부가 전세피해 임차인을 위한 저리 대출을 위해 1600억 원 규모의 예산을 편성했지만, 3개월 간 실제로 집행된 금액은 9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긴급주거 지원을 받은 피해자도 9명 뿐이었다.
이미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을 위한 정부 대책은 사실상 ‘긴급주거’와 ‘저리대출’ 둘 뿐인데, 그마저도 각종 문턱에 가로막혀 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운 상황이다.
19일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실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정부의 ‘전세피해임차인 지원대출’을 받은 피해자는 총 8명이었다. 전체 금액은 총 9억원으로, 편성 예산의 0.5%에 그쳤다. 월별로 보면 2월엔 3명이 3억원을, 3월엔 5명이 6억원을 각각 빌렸다. 1월은 지원자가 아무도 없었다.
국토부는 지난해 8월 “전세사기로 인한 보증금 피해를 1%대 저리 대출로 지원하기 위해 1660억원의 예산을 신규 편성했다”고 밝혔다. 그 당시 확인된 전세사기 피해자(3040명) 중에서 ‘(부부합산) 소득 7000만원 이하(68%)’와 ‘피해액 2억원 이하(50%)’ 요건을 만족하는 이들 1033명에게 각각 1억6000만원을 지원할 계획으로 산출한 금액이다.
시중은행 전세대출 금리가 계약 당시보다 2~3배 이상 올랐음에도, 정부가 마련한 저리 대출을 이용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임차인 대항력을 유지하기 위해 기존 주택에 계속 거주해야 하는 피해자들 상황을 간과한 대책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를 인지한 정부는 5월 중 기존 주택에 계속 거주하는 피해자들을 위해 대환대출 상품을 출시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전세사기로 전재산을 잃은 사람에게 더 큰 빚을 지고 또 전세를 들어가라는거냐”며 정부 대책의 실효성을 지적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피해지원프로그램 안내를 보면, 저리대출 한도는 최대 2억4000만원 또는 임차보증금의 80% 중 적은 금액으로 되어있다. 새로 이사갈 집의 보증금의 20%는 피해자들이 자력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HUG 관계자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피해자들의 거주 이전을 지원하는 상품이다보니, 기존 주택에 계속 살 수 있는 피해자들은 굳이 추가 대출을 일으켜 새로 이사를 갈 유인이 크지 않다”며 “5월 중 기존 대출을 대환할수 있는 상품이 출시되면 수요가 개선될 것”이라고 했다.
당장 이사를 가야하는 이들을 위한 긴급주거 지원 역시 실효성이 떨어지긴 마찬가지다. 정부는 상반기 중 수도권 긴급주거 주택 500호를 확보하겠다고 했으나, 올해 긴급주거지원을 받아 입주까지 완료한 피해자들은 불과 9명(1.8%)이었다. 긴급거처로 제공되는 공공임대주택은 6개월마다 계약을 갱신해 최대 2년까지만 거주가 가능한데다, 입지나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청약 미달’이 난 곳들이 대부분이라 신청이 저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천 의원은 “전세사기 피해자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정부 대책이 실제 현장에서 거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면서 “요란한 빈 수레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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