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전세사기’ 대상 주택 전수조사해야···정부 매입 시 형평성 논란 불가피”

유희곤 기자 2023. 4. 19.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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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자들로 구성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회원이 지난 18일 인천 미추홀구 주안역 남측 광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조태형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전세사기 피해 주택의 경매 일정을 연기하라고 지시한 지 이틀째인 19일 금융권에서는 경매 연기로 임차인의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는 만큼 정부 차원의 전수조사와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실질적인 대책으로 꼽히는 정부의 피해 주택 매입은 형평성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와 금융투자상품이나 가상통화에 투자한 ‘영끌족’과는 차이가 있는 만큼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반론이 나왔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는 이날 오후 회원사 실무진과 인천 미추홀구 등 전세사기 피해 주택에 대한 임차인(피해자) 지원 방안과 담보물(주택) 처분 방안 등을 논의했다. 다만 최근 불거진 전세사기에 사용된 주택의 채권자는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 관계자는 “대통령이 직접 전세사기 피해자 보호를 강조하면서 은행권도 자체 방안을 논의했으나 은행이 임차인이 거주하는 주택을 담보로 집주인에게 대출한 건수가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2금융권 관계자는 “정부가 법적으로 전세사기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확인해야 각 금융사가 채권자인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정확히 집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국토교통부와 금융위원회는 기획재정부, 금융감독원,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은행 및 제2금융권 중앙회 등과 전세사기 피해자 추가 지원방안 논의를 위한 관계부처 회의를 열었다.

금융권에서는 정부가 ‘경매 일정 연기’라는 임시대책으로 시간을 벌었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임차인의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 시장이 현재보다 더 침체해 경매가도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A 주택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이 2억원, A 주택을 담보로 집주인에게 대출을 실행한 은행의 (선순위) 근저당권이 5000만원인데 경락대금이 2억2000만원이라면 임차인은 배당 절차에서 2억2000만원 중 5000만원을 제외한 1억70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경매 유예 후 부동산 경기가 더 악화하면 경락대금이 낮아지고 선순위 채권은 그대로여서 임차인이 돌려받는 보증금은 더 줄어들 수 있다.

은행이나 은행에서 대출채권을 매입한 다른 금융사가 아예 경매를 취소하면 부실채권은 금융사가 떠안게 된다. 정부가 금융권에 이를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뿐더러 법적으로는 임차인이 아닌 주택 소유자를 도와주게 돼 바람직하지도 않다.

임차인들을 대상으로 한 저리 대출도 현 시점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미 정부와 지자체가 대책을 밝혔고, 안 그래도 자금이 부족한 피해자들에게 또 빚을 권장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해당 주택을 매입하고 일정 기간 보유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본다. 이때는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지난해 청년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선제적인 채무조정을 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을 때도 “특정 연령층의 빚투(빚내서 투자)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까지 정부가 책임져주냐”는 비판이 나왔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특례 프로그램 대상을 전 연령층으로 확대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전세사기 피해자를 구제해주면 보이스피싱, 투자사기 등 다른 범죄 피해는 왜 정부가 보호해주지 않냐는 요구가 높아질 것”이라면서 “정부도 피해 임차인 주택을 매입하는 게 실질적인 대책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런 문제 때문에 인천 전세 사기 사건이 알려진지 9개월 동안 고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주택 매입을 공식화한다면 형평성 문제를 설득해야 하고, 장기적인 주택 매입금 회수 방안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의식주 문제는 단순 투자 피해와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면서 “개인의 책임과 정부의 피해 구제 사이에 적절한 조화점을 찾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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