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 정부 비판 야권 거물 인사 체포…‘아랍의 봄’은 어디로 가나
사이에드 대통령, 정부 비판 인사 압박
NYT 등 외신 “야당의 무능도 한몫”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민주주의 바람을 몰고 왔던 ‘아랍의 봄’ 발원지 튀니지의 정치적 혼란이 점입가경이다. 2019년 정권을 잡은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의 철권통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야권 핵심 인사이자 ‘아랍의 봄’을 주도했던 라체드 가누치 엔나흐다 대표가 전격 체포됐다. 정부를 비판해 체제 안정을 해쳤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사이에드 대통령의 폭주를 제어해야 할 야권도 ‘아랍의 봄’ 이후 실정을 거듭하며 신뢰를 잃은 상황이다. 갈 곳 잃은 튀니지인들의 시름 깊어만 가고 있다.
18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튀니지 경찰은 전날 밤 가누치 대표와 엔나흐다 간부 2명을 체포했다. 이어 엔나흐다 사무실을 폐쇄했다. 엔나흐다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100여 명의 사복 경찰이 가누치 대표 자택과 당사를 급습했다”고 설명했다. 튀니지 당국은 가누치 대표 딸의 집도 압수수색을 했다.
가누치 대표는 튀니지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1980년대부터 비폭력 이슬람주의를 원칙으로 민주화운동을 이끌었고, 1987년 쿠데타로 집권한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다가 종신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특히 2010년 12월 노점상인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단속에 항의해 분신자살하며 촉발된 ‘아랍의 봄’ 민중 봉기를 주도해 민선 정부 수립을 이뤄냈다. 2012년 미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된 그는 시민사회의 강력한 요청에도 주요 보직을 모두 사양하는 겸양도 보였다.
하지만 튀니지는 심각한 경제난과 정치 갈등, 부정부패 등으로 ‘아랍의 봄’ 분위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결국, 2019년 10월 헌법학자 출신 사이에드 대통령 당선 이후 권위주의 시절로 회귀했다.
지난해 7월 사이에드 대통령은 대통령에게 행정부 수반 임명권과 의회 해산권, 판사 임명권, 군 통수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개헌안엔 임기 5년에 1차례 연임이 가능한 대통령이 ‘임박한 위험’을 이유로 임기를 연장할 수 있는 조항도 담겼다.
정권을 향한 불만이 거세지자 사이에드 대통령은 올해 들어 비판 세력을 잇달아 잡아들이는 공포 정치를 펼치기 시작했다. 지난달엔 최측근이자 강경파인 카말 페키 전 튀니스 주지사를 내무장관에 임명하며 야권 인사 탄압 수위를 높였다. 페키 장관은 야권을 겨냥해 “국가 안보에 위협적인 조직”이라는 등의 날 선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가누치 대표 체포도 페키 장관의 뜻이 관철된 결과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월 이후 최소 24명의 야당 정치인과 언론인, 시민 활동가, 판사가 체포됐다”며 “가누치 대표는 사이에드 정권이 표적으로 삼은 인물 중 가장 거물”이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사이에드 대통령의 실정을 바로 잡을 세력이 없다는 데 있다. 지난해 12월 치러진 총선 투표율이 8.8%에 그친 배경엔 여권과 야권에 모두 실망한 유권자들이 투표를 포기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었다.
NYT는 “지난 10년 동안 심해진 경제난으로 튀니지인 상당수는 유럽으로 떠나야 했다”며 “많은 튀니지인은 엔나흐다와 야당 연합이 사이에드 대통령을 밀어내고 권력을 되찾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지적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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