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살 곳 사라져"...육군 중사 출신 전신마비 가장에게 덮친 전세사기
세 자녀와 살기 위해 겨우 구한 집이었는데
집주인 "많이 노력해봤는데 반환 안 되겠다"
"전신마비 판정받았을 때보다도 더 고통"
장애인식개선교육 강사 겸 유튜버로 활동 중인 이원준(45)씨가 일명 '전세왕'으로부터 전세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씨는 육군 중사로 일하던 2011년, 자전거 사고로 목 아래로는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 장애인이 됐지만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 자신의 유튜브 채널 '버럭중사' 등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전신마비 딛고 일어났는데…전 재산 털어 구한 집 주인이 '전세왕'
이씨는 17일 유튜브 '원샷한솔'에 출연해 자신의 전세사기 피해를 공개했다. 그는 '전신마비가 되던 그날보다 지금이 더 힘든 이유'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2019년 10월 인천 서구의 한 신축빌라로 이사해 살다 지난해 12월에서야 뒤늦게 전세사기 피해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씨는 "화장실 쪽 벽면이 벌어져,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는데 답장이 없다 한 달 만에야 '웹(Web)발신'이라고 적힌 단체 문자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가 집주인 이모(43)씨에게 받은 문자는"전세보증금을 반환하려고 노력했지만, 능력이 되지 않아 파산하기 직전"이라는 내용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가며, 은행 대출 1억3,000만 원에 어머니가 시골 땅을 판 전 재산 7,000만 원을 더하는 등 전 재산을 털어 구했던 집이었다. 이씨는 "아이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욕창으로 입원해있던 상황에서도 전화를 돌려가며 힘들게 찾은 집이었다"고 말했다.
뒤늦게 전세사기 피해 사실을 알게 된 그가 알아본 결과, 그가 살던 집 주인은 언론에 다수 보도됐던 '전세왕'이었다.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고 전세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보증금반환보험 등도 가입하지 않아 다른 전세사기 피해자들보다도 더 절망스러운 상황이었다.
백방으로 알아볼수록 절망스러움이 더해질 뿐이었다. 이씨가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영상에는, 그가 휠체어를 타고 주민센터와 법률구조공단 등을 찾아다니며 해결 방안을 찾는 모습이 담겼다. 그는 "뉴스에서만 보던 일을 내가 겪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전신마비) 장애를 입었을 때보다 더 충격으로 느껴질 만큼 마음이 안 좋았다"고 했다. "중증 장애를 가지고 있는 내가 당장 가족들과 살 곳이 없어졌다는 절망감 때문"이라고 했다.
이씨는 세 자녀와 어머니를 부양하며 살 수 있는 방안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는 "여러 곳에서 상담을 받으며 느낀 것은 정말 피해자가 너무나 많고, 내가 너무 무지했다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탓했다. 이어 "주민센터, 은행 등을 반복해서 오가면서, 마치 내가 공부를 못해서 벌을 서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며 "참 비싸고 힘들게 인생을 배워나가고 있다. 마치 누군가 '네가 이래도 견딜 수 있겠냐고 자꾸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가 4년 전 유튜브를 시작하며 채널에 적었던 소개글은 "버럭중사는 당당하며 사명감 높고 자부심 강한 대한민국의 육군 부사관이었다"며 "이제는 중사라는 계급을 떼고 지체장애 1급 척수장애인으로서 세상 앞에 당당히 나아가려 한다. 지켜봐주고 응원해달라"는 말이었다.
전세사기 피해자 인천 지역만 3,000여 명
이씨와 같은 전세사기 피해자 숫자는 인천 지역에서만 3,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난달 13일 개소한 인천 피해지원센터에는 17일 기준 832건의 전세사기 피해 사례가 접수됐고 법률 지원 등 상담 건수는 2,240건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숨진 채 발견되는 일도 잇따랐다. 인천 미추홀경찰서에 따르면 17일 오전 2시 12분쯤 인천시 미추홀구 한 주택에서 30대 여성 A씨가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했다. 조사 결과 A씨는 이른바 '건축왕'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로 경찰에 신고를 접수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2월 28일과 이달 14일에도 20~30대 피해자 2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2월 28일에 숨진 채 발견됐던 피해자는 휴대폰에 메모 형태로 남긴 유서에서 '(전세사기 관련) 정부 대책이 굉장히 실망스럽고 더는 버티기 힘들다'며 '저의 이런 결정으로 이 문제를 꼭 해결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담겼던 것으로 전해졌다.
원다라 기자 d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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