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 후 ‘사면’된 와그너 용병 “대피소 숨은 5세 아이도 쐈다”···전쟁범죄 증언
러 인권단체에 민간인·포로 대상 범죄 증언
범죄 폭로 후 돌연 주장 철회
“와그너 그룹서 살해 협박 받아”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된 러시아의 민간군사기업(PMC) 와그너 그룹 용병들이 동부 격전지 바흐무트에서 지하실에 대피한 5~6세 여아 등 민간인 수백명을 학살했다는 전직 와그너 용병의 증언이 나왔다. 자신들이 저지른 전쟁 범죄를 털어놓은 용병들은 증언 이후 와그너 그룹의 살해 협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8일(현지시간)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프랑스에 거점을 두고 활동 중인 러시아 인권단체 굴라구넷(Gulagu.net)은 바흐무트와 솔레다르에 투입됐던 전직 와그너 용병 2명의 동영상 증언을 전날 공개했다. 이들은 와그너 그룹이 모집한 죄수 출신 용병으로, 6개월간 참전한 대가로 사면을 받아 러시아로 돌아간 상태다.
전직 용병인 아자마트 울다로프는 인터뷰 영상에서 자신이 바흐무트의 9층짜리 아파트 지하실에 대피한 5~6세 가량 여자아이 등 민간인을 사살했다고 말했다. 그는 “방해가 되는 것은 누구든 죽이라는 것이 (상부의) 명령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곳에서) 살려 내보낼 수 없었다”며 당시 지하실에 피신해 있던 민간인 300~400여명을 전원 사살했다고 말했다. 이들 중에는 어린이 40명도 포함돼 있었다.
담배를 피우며 화상 인터뷰에 응한 그는 “나는 러시아와 다른 나라들이 진실을 알기 원한다”며 “담배를 든 이 손으로 명령을 따르고 아이들을 죽였다”고 말했다.
바흐무트에 투입됐다가 사면된 또 다른 용병 알렉세이 사비체프도 “그 일대 모든 건물을 ‘청소’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그곳에 민간인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행위에 대해 나를 비난할 수 있겠지만, 나도 살고 싶었다”며 명령을 따르지 않은 용병들은 즉결 처형됐다고 말했다.
와그너 그룹이 우크라이나 포로들을 고문하거나 처형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사비체프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포로를 체포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쏘기만 하면 된다는 말을 (상부로부터) 들었다”면서 참호에 갇혀 있던 우크라이나 포로들에게 수류탄을 던져 50~60여명을 사살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전쟁 범죄를 이야기하면서도 “이건 전쟁이고 나는 그곳에서 한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굴라구넷은 두 용병이 살인죄 등으로 복역 중 지난해 9월과 10월 각각 대통령 사면으로 석방됐음을 보여주는 러시아 형사 문서와 참전 당시 받았던 메달 등 이들의 참전을 입증할 관련 서류를 공개했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영상이 공개되자 민간인 학살 등 전쟁 범죄에 대한 수사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러시아에서 탈출한 군인이 러시아의 전쟁 범죄에 대해 증언한 적은 있지만, 사면을 받은 후 러시아에 체류 중인 죄수 출신 용병들이 입을 연 것은 이례적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인터뷰 내용이 알려진 뒤 울다로프는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다. CNN은 그가 와그너 그룹의 협박을 받고 주장을 철회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울다로프는 러시아 통신사 리아-판(RIA-FAN)에 해당 인터뷰는 굴라구넷이 자신의 전과를 빌미로 협박을 해왔기 때문에 한 것이며, 인터뷰 당시 자신이 술에 취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일주일에 걸쳐 용병들과 화상 인터뷰를 진행한 굴라구넷의 설립자 블라디미르 오세킨은 두 용병이 진술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살해하겠다는 협박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용병 사비체프는 굴라구넷과의 첫 인터뷰 이후 현재 도주 중이며, 여러 협박을 받고 있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사비체프는 지난해 우크라이나군에 투항했다는 이유로 망치로 처형된 예브게니 누진처럼 자신도 와그너 그룹에 의해 잔혹하게 처형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와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이들의 인터뷰 내용이 보도되자 텔레그램 성명을 통해 도주 중인 사비체프를 와그너 그룹이 지난 24시간 동안 찾고 있다면서 “노골적인 거짓말이다. 이 사람들은 우리의 적이며 우리는 그들을 특별한 방법으로 다룰 것”이라고 경고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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