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호 "전주국제영화제 후원회 결성…빚진 마음으로 봉사할 것" [직격인터뷰]
"후원회 참여 기업인 40여명…100명이 목표"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배우라는 타이틀을 얻고 활동하며 과분한 사랑을 받았어요. 그래서 영화계에 진 빚이 있죠.영화계에 남아있는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올해부터 임기를 시작하게 된 정준호(54) 전주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은 요즘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다. 골프 의류 브랜드와 웨딩업체 등 사업체를 운영하느라 원래도 눈코뜰 새 없이 바빴는데, 전주국제영화제의 공동집행위원장이라는 이름까지 달고 보니 인생의 속도가 2배속에서 3배속으로 뛰었다.
"주변에서 다들 건강 걱정을 많이 해주세요. 아이들도 어린데 이팔청춘이라 생각하지 말고 건강 잘 생각하라고요. 아이들이 어리니 앞으로는 일을 줄이려고는 하는데, 집행위원장직을 맡게 된 후부터 24시간을 초단위로 나눠 쓰고 있어요."
공동 집행위원장으로 임기를 시작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정준호 집행위원장의 선출을 반대하는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립·예술 영화를 지원하는 전주국제영화제의 방향성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 정준호 집행위원장을 향한 우려의 핵심이었다.
"우려의 목소리들을 듣고 미안했던 부분이 있었어요. 내가 너무 상업 영화 위주의 배우 생활을 해왔구나. 독립 영화나 저예산 영화, 실험 영화에 조금 더 관심 갖고 신경을 썼더라면 지금 느끼는 빚진 마음이 덜했을 것 같아요. 저는 연기자로 과분한 사랑을 받았어요. 빚진 마음으로 영화계를 위해 봉사할 만한 게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위원장 직함을 받게 됐고, 마음의 빚을 봉사하는 마음으로 갚겠다 생각했어요. 지금도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정준호는 자신을 집행위원장으로 추천했던 우범기 전주시장과는 일면식도 없었다고 했다. 집행위원장 후보로 추천을 받고 우 시장을 만난 그는 자신에게 요청된 공동집행위원장으로서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까지 전주국제영화제는 독립예술영화를 대표하는 영화제로서 고유의 컬러, 정통성을 잘 이어왔어요. 그렇지만 영화제를 후원하는 전주시의 입장에서는 전주 시민과 영화제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부족하다는 인식도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제가 영화인들만의 축제가 아니라 전주 시민들과도 어우러지도록 발전이 됐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많은 고민 끝에 제가 집행위원장을 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은 사업가이자 배우로서 제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을 기존 영화제에 잘 녹이면 전주 시민들이 조금 더 함께 공감할만한 영화제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집행위원장이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전주국제영화제를 위한 후원회를 결성하는 것이었다. 네트워킹 능력과 기발한 아이디어 등 사업가로서의 장점이 발휘된 대목이다. 정준호 집행위원장이 직접 기업인들을 만나러 다니며 독립예술영화인들의 제작비 지원을 위한 후원금을 받아 기금을 조성하고 있다. 현재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전주 시네마 프로젝트를 통해 장편 영화 프로젝트를 발굴해 지원하고 있는데, 후원회의 기금은 이것과는 별도의 타이틀로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에 쓰일 예정이다.
"민성욱 공동집행위원장님이 20여년 가까이 전주국제영화제에 몸 담아 오셨기 때문에 영화제의 정통성과 품격을 지키고 그간의 컬러를 유지하는 것은 잘 해주실 겁니다. 새롭게 공동집행위원장으로 합류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실질적으로 필요한 부분들인 것 같아요. 기업인들을 만나 '독립예술영화를 통해 홍상수, 봉준호 감독이 태어났다. 앞으로 여러분이 낸 기금이 세계적인 감독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관심을 가져달라'고 얘기하고 있어요. 공감하고 같이 해주신 분들이 현재까지 40여명 되시는데 저는 목표를 100명까지 잡고 있어요."
후원회 결성 말고도 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해야할 일이 많다. 베를린 국제영화제 등 영화제에 출장을 다녀왔고, 영화제 관련 여러 부분들에 관여해야 하기에 미팅 참석도 잦다.
"영화계에 25년을 몸 담아 왔지만 영화제가 이렇게 오래 준비가 필요하고 많은 인력이 투여되는 행사라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했어요. 영화제는 일 년간 준비가 되는 거더라고요. 작품을 선정하고 유치하려면 네트워크가 없으면 안 돼서 많이 돌아다니고 많이 만나야 해요. 집행위원회 들어가서 당황했어요. 생각보다 시간적인 여유가 많지 않았으니까요.그래도 영화제 관련 각 파트에서 일하는 분들과도 인사하고 호흡하고 가끔은 소주 한 잔씩 하며 마음에 있는 이야기들을 하다보니 제가 조금씩 이곳에 스며들어가고 있다고 느낍니다."
정준호 집행위원장은 일부 세간의 인식처럼 정치적인 야심이나 직함에 대한 욕심 때문에 영화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봉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생각보다 더 막중해 큰 부담감을 느끼며, 때로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기도 한다고 했다.
"후회했었죠.(웃음) 그동안 쌓아온 저의 라이프스타일이 무너져 버렸으니까. 집행위원장 타이틀을 달게 되니 제 위에 조직위원장이신 시장님이 있고, 문화체육관광부, 정부, 의회가 있고 그 중심에서 제 행동 하나하나, 일거수일투족이 집행위원장 직함을 대신하는 게 되니 신경 쓸 일이 많아요. 그렇지만 지금은 그저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제가 열심히 하면 모두가 다 느껴주시겠죠."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총42개국 247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역대 최다 기록이다. 정준호 집행위원장은 올해 영화제는 조금 더 관객 친화적인 서비스를 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골목상영이나 야외상영은 현장 구매 티켓 비율을 높이고 주차 문제와 숙소 문제 등을 완화할 방안을 놓고 고심 중이다. 출품작 출연진 외에도 영화인들과 관객들이 기다리는 유명 스타 게스트들을 다수 초대해 관객과 더불어 시민들도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전주에서 365일 영화제가 계속된다고 생각하고 '영화의 도시 전주'를 만들기 위해 애쓰려고 합니다. 영화제 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는 것 뿐 아니라 비영화제 기간에도 풍부한 문화콘텐츠가 있는 전주에 많은 관광객이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하나씩 만들어 가야죠. 영화 만드는 사람들은 늘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추구합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영화를 위해서 몸 담고 열정 바친 감독과 작가의 영화 한 편이 우리 살아가는 삶 속에 밑거름이 돼주잖아요. 전주국제영화제를 그렇게 도전하는 감독과 제작자, 영화인들을 대변해줄 수 있고 그분들의 가족으로 함께 갈 수 있는 영화제가 되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오는 27일부터 5월6일까지 열흘간 전주 영화의거리 일대에서 개최된다. 개막작은 다르덴 형제 감독의 '토리와 로키타' 폐막작은 김희정 감독 연출, 박하선, 김남희 주연 '어디로 가고싶으신가요'다.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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