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향한 어둠의 반격, 메탈리카 '72 Seasons'[김성대의 음악노트]

2023. 4. 1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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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13일. 부산 서면 CGV에서 메탈리카의 열한 번째 앨범 [72 Seasons] 프리미어 영상을 보고 왔다. 이건 마치 그들이 수 십 년간 해온 일, 즉 공연이 끝나고 팬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전통의 연장선처럼 보였다. 새 앨범 작업이 다 끝났으니 멤버들이 곡마다 코멘트를 달고 개인 감상평도 곁들이며 '우리 신곡들 어때?' 함께 감상해 보자는 취지다. 이제 더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했던 블랙 앨범 리스닝 파티만큼의 열광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열혈 팬들은 바쁜 와중에도 극장을 향했다. 하지만 그날 본 영상들 중 제대로 만들어 처음 공개하는 뮤직비디오는 'Sleepwalk My Life Away'와 'You Must Burn!' 단 두 편이었고 나머지 네 편은 이미 유튜브를 통해 다 감상한 것들이었다. 황당했던 건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앨범의 필러처럼 급조한, 2000년대 초 윈도 미디어 플레이어에서나 볼 법한 음파 그래픽과 80~90년대 아케이드 게임의 귀퉁이에서 떼어 온 듯 조야한 이미지를 뮤직비디오랍시고 스크린에 건 것이다. 두 번째는 그렇게 걸었던 그림들을 지우고 제대로 된 뮤직비디오를 새로 넣어 관련 트랙들을 유튜브로 하나씩 공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그날 극장에서 팬들이 본 엉성한 그림들은 메탈리카의 신작 프리미어 행사 준비가 덜 됐다는 뜻이었고, 그건 새로운 인테리어를 예고한 식당이 인테리어 공사가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손님을 받은 꼴이었다.

10집 때처럼 전 세계 재능 있는 크리에이터들에게 기회를 주는 연장선에서의 뮤직비디오 제작이라면 나는 언제든 지지할 준비가 돼있다. 그런데 저런 식으로 마감에 쫓겨 대충 휘갈긴 글을 의뢰 측에 넘기는 작가 마냥 무성의한 시사회를 세계 최고 록 밴드가 아무렇지 않게 진행했다는 게 나에게는 작지 않은 충격이었다. 차라리 음악과 메시지에 집중할 수 있게 리릭 비디오(Lyric Video)를 틀거나 하다못해 대충 찍은 밴드 합주 영상이라도 보여줬다면 그렇겜까지 당황하진 않았을 일이다. 세계 톱 10에 드는 부유한 공룡 밴드가 수년간 정규 앨범 한 장을 대변할 극장용 영상(들)을 확보할 수 없었다는 걸 상식으로 이해할 만한 사람은 많지 않다. 정성의 문제고 의지의 문제다. 메탈리카와 큐프라임은 졸속에 가까운 이벤트를 "단 하룻밤!"이라는 자극적인 문구를 내세워 그렇게 버젓이 팬들 앞에 들이밀었고 팬들은 걸려들었다. 나도 그 희생량 중 하나였다.

10집을 두고 혹자가 했던 말처럼 이번 11집도 스래시 메탈로의 회귀라기보단 70~80년대 하드록과 NWOBHM이라는 '뿌리'로의 회귀에 더 가까웠다. 밴드의 공동 리더인 라스 울리히와 제임스 헷필드의 어린 시절을 사로잡았던 블랙 사바스 냄새가 많이 났고 몇몇 곡에선 씬 리지 풍 기타 화음을 강조했다. 대체로 속도보단 헤비니스에 방점을 찍은 듯 보였으나 그렇다고 속도를 완전히 좌시하진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 필요 이상으로 길게 느껴지는 곡 구성은 듣는 사람의 집중력을 시험했으며, 라스의 드럼은 귀를 찌르는 스네어와 찰진 베이스 드럼 톤을 앞세워 틈만 나면 가다 서다(Stop-Start)를 반복해 기어이 자신이 곡 중심에 서려했다. 그리고 발라드가 없었다는 것. 평론가 샘 워커-스마트(Sam Walker-Smart)는 누구보다 이 점을 아쉬워했는데, 그는 현재 메탈리카가 "스래시 전성기를 기념하는 일과 90년대 초반 차트를 장악했던 파워 사이에서 음악적으로 갇혀 있는 것 같다"며 이들이 늘 탁월했고 동시대 밴드들이 넘볼 수 없었던 영역은 다름 아닌 '멜로딕 발라드'였다고 주장했다. 멤버들(특히 제임스)이 조금만 더 깊이 성찰해 준다면 또 다른 'Master of Puppets'는 만날 수 없을지언정 'Nothing Else Matters'나 'Fade to Black'쯤은 다시 들을 수 있으리라는 게 샘의 바람이자 결론이었다. 그날 스크린을 통해 음원을 듣고 돌아선 내 첫 느낌은 대략 이랬다.

이미 언급했듯 10집 이후 7년이 흘렀다. 9집에서 10집까지는 8년. 그러니까 15년 사이 메탈리카는 정규작 두 장만을 냈을 뿐이다. 이런 페이스라면 이름 안에 이미 '메탈'을 장착한 이 밴드의 음악 정체성을 담보한 신작을 만날 기회도 이제 많아야 2~3번이 아닐까 싶다. 7년.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메탈리카에겐 꽤 많은 일들이 있었다.

밴드는 먼저 2017년 1월 11일 서울 공연(고척 스카이돔)을 시작으로 상하이, 베이징, 홍콩, 싱가포르를 거치는 아시아 투어로 한해를 열었다. 2월 12일엔 59번째 그래미 어워드 무대에서 레이디 가가와 함께 'Moth Into Flame' 공연을 했다. 퍼포먼스는 무난하게 흐르는 듯 보였으나 중간에 제임스의 마이크가 고장 나면서 공연 전체가 난감한 기운에 휩싸이고 만다. 2016년에 선보인 1, 2집에 이어 리마스터 박스셋 발매 릴레이가 [Master of Puppets]로 이어졌고(2017년 11월 10일), 밴드의 자선 재단인 '올 인 마이 핸즈(All In My Hands)'의 출범과 더불어 북캘리포니아 산불 피해자들을 위한 자선 콘서트로 1천700만 달러를 모금하며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을 다했다. 메탈리카는 그 사이 덴마크와 라틴 아메리카, 미국과 캐나다를 돌며 '월드 와이어드 투어'를 2017년 가장 인기 있는 투어 공연 중 하나에 올렸다.

이듬해 밴드는 3개월 휴가를 떠나기 전 2월과 5월 사이 유럽 아레나 투어를 끝냈다. 휴가를 마치고 이들은 9월부터 2019년 3월까지 북미 전역을 돌며 멈추지 않는 투어 의지를 불살랐다. 그렇게 '월드 와이어드 북미 아레나 투어'를 마친 밴드는 5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시작해 8월 독일 만하임에서 절정에 이른 유럽 아레나 야외무대를 꾸리며 변함없는 관객 동원력을 뽐냈다. 특히 2019년은 버클리 커뮤니티 극장(Berkeley Community Theatre)에서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S&M]을 녹음한 지 스무 해 되는 해. 메탈리카는 새로 지은 샌프란시스코의 최첨단 경기장인 체이스 센터(Chase Center)에서 세계 65개국 팬들과 해당 쇼의 20주년을 기념하기로 결정, 음악 감독 마이클 틸슨 토마스와 지휘자 에드윈 아웃워터와 손잡고 그해 9월 6일과 8일 이틀에 걸쳐 실황을 녹음해 2020년 8월 [S&M2]를 세상에 내놓는다. 체이스 센터 공연이 끝나고 얼마뒤 제임스는 재활원에 다시 들어갔고 곧이어 팬데믹이 닥친다.

전대미문의 역병이 지구를 뒤덮기 시작한 2020년 1월 15일, 클리프의 아버지 레이 버튼이 아내와 아들 곁으로 떠났다. 고인의 마지막 길에 제임스는 "레이는 내가 아는 가장 긍정적인 사람이었고 내 영웅이었다"라고 썼다. 라스는 "클리프와 그의 독특한 재능을 세상에 선물해 줘 고마웠다"며 고인에게 감사를 전했고, 커크는 "사랑해요 레이. 이제야 얀(Jan Burton)과 클리프를 만나시겠네요" 마지막 인사를 했다. 현재 클리프의 자리에 있는 트루히오도 "우리가 원하거나 가져야 하는 아버지"라고 고인을 추억했다. 그렇게 레이의 죽음과 더불어 팬데믹이 시작됐다. 공연을 해야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예술가들에게 치명타를 안긴 팬데믹은 메탈리카의 자유도 결박했다. 예정된 공연들이 빠르게 취소되는 걸 보며 밴드는 팬들과 관계를 유지할 방법을 다각도로 모색했다. 솔루션은 줌(Zoom) 미팅이었다.

2020년 초봄, 재활 치료를 받은 제임스는 [St. Anger] 때처럼 다시 태어나는 느낌을 받는다. 프런트맨의 화창한 컨디션에 맞춰 멤버들은 매주 예약된 줌 미팅을 통해 밴드의 결속 상태를 유지하고 아이디어를 소통했다. 그 과정이던 2020년 5월 1일엔 멤버들이 각자 집에서 줌으로 촬영한 연주 장면을 분할 화면으로 꾸민 'Blackened 2020'을 만들어 팬들과 공유하기도 했다. 커크는 2013년 인터뷰에서 "우리에겐 리프 뱅크가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던 적이 있는데, 아마 제임스도 언급한 '리프의 판도라 상자'가 이때쯤 열렸던 것 같다.

2020년 8월 10일, 집에만 있길 거부한 메탈리카는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가족 와이너리 겸 콘서트장인 군들라흐 분슈 와이너리(Gundlach Bundschu Winery)에서 코로나 촬영 기준을 지키며 드라이브인 극장을 위한 특별 영상을 극비에 찍는다. 이른바 '팬데미카(Pandemica)' 영상으로, 이 콘서트 영상은 8월 말 북미 300개 자동차 극장에서 상영됐다. 이 무대를 계기로 활력을 되찾은 메탈리카는 그해 말 북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11집을 위한 시동을 걸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멤버 모두 마스크를 쓴 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그리고 맞은 2021년에 밴드는 블랙 앨범 30주년을 기념해 나온 헌정 앨범 [Blacklist]를 국적/나이/장르/성별을 떠난 전 세계 대중음악 동료들로부터 받았고, 이듬해 11월엔 아직 가난하고 철없던 메탈리카를 2집까지 이끌어준 메가포스 레이블 존&마샤 자즐라 부부를 위한 공연을 1, 2집 곡들로만 세트리스트를 꾸며 바쳤다. 이에 앞선 봄에 커크는 자신의 솔로 미니앨범 [Portals]를 발매했다. 몇몇 괜찮은 멜로디가 들렸지만 [Portals]는 커크가 메탈리카의 리드 기타리스트로서 명성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만 증명해줬을 뿐, 딱히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이 모든 게 지난 7년 사이 메탈리카를 둘러싼 일들, 상황이었다.

"우린 앨범으로 판타지를 창조한 적이 없다. 그저 '지금'의 우리를 기록해왔을 뿐이다." - 제임스 헷필드

새 앨범에서 제임스는 라스와 단 둘이 곡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는 멤버 모두와 작곡하고 싶었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St. Anger] 때는 스튜디오에 모여 멤버가 같이 가사를 썼고 2~3집 때도 메탈리카식 '송캠프'는 이미 작동하고 있었다. 팬데믹이라는 변수가 밴드를 잠시 주춤하게 만들었지만(프로듀서 그렉 피델만은 LA에 있었고 나머지 멤버들은 미국 "서부 해안에 흩어져" 있었다. 라스는 이 상황을 "난장판"으로 기억했다) 2020년 8월 자동차 극장용 콘서트 영상 촬영과 같은 달 11월 '올 위드 마이 핸즈' 자선 방송을 거치면서 밴드는 새 앨범 작업을 느슨하게나마 시작할 수 있었다. 언제나처럼 새로운 음악은 기타 리프에서 시작돼 전 세계 호텔룸, 튜닝룸, 잼, 사운드체크에서 그러모은 수 백 개 아이디어가 한 자리에 모여 선별, 조립 과정을 기다렸다. 라스는 11집이 역대 메탈리카 앨범들 중 가장 마찰(불화)이 없었던 앨범이라고 자부했다.

앨범 자체를 "고유한 여정이자 독립된 실체"라고 말한 라스는 이번 작품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우연은 필연적으로 맞닥뜨려야 했던 이들의 어린 시절로 환원된다. 72시즌(72 Seasons). 옛날 'Invisible Kid'에서 했던 부모/아이 역할극의 냉소와는 조금 다른 정서의 신작 콘셉트는 부모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멤버들 삶의 첫 18년(72시즌)동안 형성된 자아, 정체성을 뜻한다. 18세는 1963년생인 제임스 헷필드와 라스 울리히가 메탈리카를 결성한 해(1981년)에 맞은 나이로, 제임스는 성인 시절이란 결국 어린 시절의 재연이고 의심의 여지없이 그 시간은 지금의 자신들을 만들었다고 단언한다. 부모가 되어서야 부모의 입장을 안다는 평범한 진리, 부모도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 그들은 우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그런 제임스의 단언에 켜켜이 녹아있다. 커크는 신보를 두고 마치 음악이 스스로 펼쳐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는데 그는 3집 때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마치 음반이 스스로 빚어진 것 같았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11집은 어쩌면 멤버들이 타자로서 자아를 바라보는 작품일지 모른다. 목표를 설정하고 그걸 이루려 머리를 싸매는 대신, 음악을 지켜보며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얽힐 수 있게 최소한의 관여만 하는 것이다.

사실 처음 염두에 둔 제목은 '슬픔의 72시즌(72 Seasons of Sorrow)'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이 18년 내내 슬픔만 느꼈을 리는 없으므로 '슬픔'은 제목에서 자연스레 사라졌다. 앨범 이미지에서 "선하고 밝은" 노란색이 악과 어둠을 상징하는 검은색과 대비되고 있는 건 그래서다. 이와 관련해 라스는 빛과 어둠이 각각 지닌 양면성, 둘의 상호작용이 작사가인 제임스가 하고 싶었던 말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가사를 쓰면서 제임스 자신의 약점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이해하며 투명해지는 과정을 겪었으리란 얘기다. 커크 역시 "어둠에 빛을 비추는 제임스의 가사"를 말했다. 종합해 보면 과거 [St. Anger]가 "어둠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영적(靈的) 여정"이었다면 [72 Seasons]는 어둠의 한가운데에 빛을 비춰 삶을 구하는 영적 각성인 셈이다. 인간이란 무릇 나이가 들면 열리고 내려놓는 법. 그것은 배려와 이해를 전제해야만 가능한 마음가짐이다. 내가 가진 것을 받아들이고 만족하며 살면 그것이 곧 행복이라 말하는 제임스는 어느새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것에 관해 배우면 된다"라는 생각까지 할 줄 아는 '진짜' 어른이 되었다. 부정적이 되려면 3초면 되지만 그걸 다시 긍정으로 되돌리려면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다는 커크의 말이 이 지점에서 울림을 준다. 신작은 어쩌면, 제임스가 부정에서 긍정으로 뒤돌아서기 위해 감행한 "성찰, 향수, 성장"의 40년 기록일지도 모른다.

라스는 메탈리카의 세월이란 언제나 헤비메탈을 연주하는 다른 방법을 모색해온 세월이라고 했다. 심지어 그는 같은 곡 안에서도 두세 가지 방법론을 고민했다. 라스가 말한 메탈리카의 그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72 Seasons]는(<리볼버>에서 잘 지적했듯) 그래서 메탈리카 42년 커리어를 망라한 것에 가깝다. 가령 'Shadows Follow'와 'Too Far Gone?'이 80년대 초중반 스래시 메탈의 열광이라면 'You Must Burn!'은 블랙 앨범의 환영이다. 또한 'Sleepwalk My Life Away', 'Chasing Light'의 록 그루브는 [Load/Reload]와 밴드의 오랜 친구인 코로전 오브 컨포미티(Corrosion of Conformity)의 동침이며, 첫 싱글 'Lux Æterna'는 자타공인 다이아몬드 헤드에의 헌정이다. 물론 라스가 그토록 강조한 메탈리카의 전무했던 11분짜리 트랙 'Inamorata'는 카이어스(Kyuss)를 가미한 'Orion'의 진화에 가깝다. 여기에 또 다른 평론가는 [Load/Reload]에 'One', 'Spit Out the Bone'을 더한 듯한 'If Darkness Had a Son'과 [Kill'em All] 시절을 닮은 'Screaming Suicide'의 다이내믹 리프, 'Harvester of Sorrow'의 부피감에 가까운 'You Must Burn!'의 그루브를 언급하며 이번 앨범이 가진 역사적 종합성을 진단했다. 이렇듯 [72 Seasons]는 처음 메탈리카를 접한 사람에게도 어필할뿐더러 오랜 팬들에겐 강박적 해체/해석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과거와의 재회, 융합 또는 화해에 가까운 무엇이다.

메탈리카의 역사는 프로듀서/엔지니어의 이름들로 정리된다. 헤비메탈의 게임체인징 앨범이었던 [Kill'em All]의 폴 쿠르시오, 2~4집의 플레밍 라스무센, 5~8집의 밥 록, 9집의 릭 루빈, 루 리드와의 협작 [Lulu](메탈리카 파트의 엔지니어/프로듀서를 맡았다)와 10~11집의 그렉 피델만. 9집에서 릭 루빈의 역할이 "레이블 계약을 위해 곡을 써내야 하는 신인 밴드라고 생각해 봐"라는 동기부여를 해준 멘토였던 걸 감안하면 사실상 9집도 음악적으로는 빈티지 장비를 잘 다루는 사운드 엔지니어 그렉 피델만의 솜씨로 보는 게 맞다. 알다시피 폴 쿠르시오는 헤비메탈에는 문외한이었던 프로듀서다. 그러니 블랙 앨범 정도를 빼면 사실상 메탈리카를 망친(?) 장본인으로, 그의 퇴출을 위해 온라인 서명 운동까지 벌일 만큼 팬들에겐 눈엣가시였던 밥 록 시절을 제외하면 메탈리카의 세월은 라스무센과 피델만의 '2파전'으로 압축해 볼 수 있다. 결론만 얘기하자면 2, 3집의 웅장한 크런치 사운드와 4집의 '마르고 건조한' 사운드를 들려준 라스무센의 작업물에 모던한 입자를 곁들인 것이 그렉 스타일에 가깝다는 게 내 생각이다. 라이브의 활력에 악착같이 들러붙는 밀도 있고 축축한 음향의 내성은 메탈리카가 [Death Magnetic]부터 왜 그렉을 계속 자신들의 곁에 두는지 이유를 설명해준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는 메탈리카의 다섯 번째 멤버로서, [Kill'em All](일렉트라 리이슈반) 때부터 밴드와 연을 맺어온 밥 루드윅의 마스터링을 등에 업고 메탈리카 역사에 기록될 만한 펀치감을 저들 사운드에 입혀주었다.

앨범 [72 Seasons]는 곡 '72 Seasons'로 문을 연다. 늘 그랬듯 신보의 가사는 대부분 제임스의 이야기와 생각이다("모든 앨범이 나의 자서전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이라는 말이 맞다면 그것은 또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있는 어린 시절. 그 시간을 바꿀 순 없지만 그걸 바라보는 관점, 의미는 바꾸어볼 수 있을 거라 제임스는 말하고 있다. 그런 제임스에게 클리프가 메탈리카에 오기 직전까지 활동한 밴드 이름과 닮은 "트라우매틱(traumatic)"이라는 단어와 18살에 이르기까지 제임스의 몸이 거쳤을 법한 불에 탄 물체들(요람, 세발자전거, 스케이트 보드, 풋볼 헬멧, 야구 방망이, 일렉트릭 기타 등)을 바닥에 흩트려놓은 앨범 아트워크에 직결되는 "과거의 잿더미(ashes of the past)"라는 가사는 분명 그가 13살 때 집을 나간 아빠, 16살 때 근본주의 종교 교리 때문에 손 한 번 못 써보고 보내버린 엄마가 남긴 상처를 표현한 말일 것이다. 알코올 중독자 아빠와 학대받던 엄마 사이에서 "엉망진창으로 살아온" 데이브 머스테인보단 그나마 나아 보여도 제임스의 어린 시절도 이처럼 만만치 않게 어두웠기에 그때 뿌리를 내린 분노와 독단은 그를 더욱 내성적인 인간으로 만들어갔다. 그 상태로 72시즌의 마지막 해에 라스를 만나 메탈리카를 결성한 일은 "이 삶이 시작되기 전 나에게 기회란 없었지(no chance before this life began)"라는 가사로 또한 설명되고 있다. 특히 이 곡에선 무대 공포를 언급하는 부분("무대 공포로 인한 질식(choking on the stage fright)")이 흥미로운데, 실제 82년 메탈리카 초창기 무대에서 프런트맨 역할은 제임스가 아닌 데이브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제임스의 입을 막은 과묵함과 수줍음이란 실은 분노의 다른 이름이었다. 이후 메탈리카 음악의 자양분이 되는 그 분노는 배신과 비열함으로 얼룩진 세상으로부터 제임스를 지켜준 갑옷이었고 방패였다.

반면 밴드의 공동 리더인 라스는 지역 신문에 재즈 칼럼을 기고하던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아빠와 합리적이고 꼼꼼한 기획자 타입이었던 엄마 사이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다. 그는 코펜하겐에서 재즈가 번성하던 시절 색소포니스트 덱스터 고든을 대부로 두었던 전형적인 자유분방 '히피' 유로트래시(Eurotrash)였다. 9살 때 딥 퍼플 공연을 본 뒤 인생의 방향을 고민했고 17살 때 무작정 런던에 가 만난 다이아몬드 헤드 멤버들, 같은 여행에서 잠시나마 들른 모터헤드의 [Iron Fist] 시절 스튜디오, 같은 해 코펜하겐의 한 클럽 "거실만한 공간"에서 공연하던 아이언 메이든을 보고 갈 길을 확실히 정한 도전적인 인물. 그가 바로 라스였다. 외톨이(라스는 외아들이다)라는 공통분모는 있었지만 제임스는 분명 어둠이 낳은 반항아, 라스는 빛이 뿜어낸 유로 메탈(NWOBHM)의 탕아였다. 재킷 사진의 검정과 노랑 배경은 그래서 메탈리카의 리더 둘이 보낸 완전히 다른 18년의 배경에서 비롯된 것으로도 읽힌다. 두 사람의 괴리는 메탈리카의 조화를 낳았다.

타이틀 곡 리프는 커크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는 새벽 3시에 만들었다는 'Enter Sandman' 때와 비슷하게 아침에 깨어나 이 리프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공중에 떠다니던 리프가 기타와 대화를 하듯 한 번에 만든 것으로, 때문에 수정도 거의 없었다는 설명이다. 라스의 빨라지는 템포와 동시에 솟구치는 코러스("인간의 분노(wrath of man)")는 블랙 앨범식 캐치 코러스(예컨대 "exit light~"같은)를 원형으로 하며 나아가 20년 전 분노(anger)를 주제로 했던 앨범의 거친 에너지에도 그 코러스는 닿아 있다. 단 하나 곡의 길이인데 6분대에 끊었다면 더 산뜻하고 담백한 트랙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스윙감과 그루브를 전제한 '단순하고 헤비하게'라는 블랙 앨범의 기조, 교훈이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원초적 드라이빙 리프가 작렬하는 이 곡의 초반 1분 35초는 이 작품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될 확률이 높다. 로버트는 그것을 "빠르고 대담한 퓨전 스래시"라고 평가했다.

라스는 두 번째 곡 'Shadows Follow'의 메인 리프를 "쿵쾅거린다"라고 표현했다. 제임스는 리프에서 라몬스 느낌이 난다며 스치듯 언급했는데 조금 갸우뚱한 부분이다. 그는 이 곡에서 어둠의 음악(헤비메탈)이 자신의 운명이 된 경위에 관해 관념적이고 주술적으로 풀어나간다. 한 리뷰어는 제임스가 다시 재활원으로 간 [S&M2] 직후(2019년)의 심경이 이 가사의 배경이라고 하며 '내면의 악마를 없애려 아무리 노력해도 그 그림자(shadows)는 계속 나를 따라다닌다(follow)'는 문장으로 노랫말을 요약했다. 슬레이어의 'Ghosts of War'가 생각나는 곡 허리 쪽 강력한 헤드뱅잉 리프가 일품이며, 살짝 쉬어 있는 듯 들리지만 제임스의 보컬엔 나이에 눌린 상실감 대신 나이를 잊은 자신감이 넘친다. 극장에선 보지 못한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는 인디 아티스트 트리스탄 자밋(Tristan Zammit)의 솜씨로, 메탈리카와 이 곡을 잘 이해하고 만든 느낌을 준다.

커크의 말대로 'Screaming Suicide'는 1978~82년의 NWOBHM을 노골적으로 좇는다.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땐 살짝 지루한 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앨범에서 네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곡이 됐다. 앨범 전체가 그렇지만 특히 이 곡은 사골 우리듯 반복 감상을 통해서만 자신의 진가를 드러낸다. 트루히오는 코러스 파트를 특히 마음에 들어 하며 제임스의 내면에 자리 잡은 "글랜 댄직과 밥 시거"가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수지 앤 더 밴시스(Siouxsie and the Banshees)의 수지 수를 그의 보컬에 빗댔다. 트루히오는 2분 50초 정도에서 낮게 포복하는 베이스 프레이즈로 곡의 심장을 노리는데 여기가 또 일품이다.

가사에서 의인화된 자살은 두려움에 직면한 인간의 불안한 내면을 묘사하고 있다. 유튜브의 정책은 '자살/자해 관련 주제'를 이유로 이 곡의 뮤직비디오를 부분적으로만 허용하고 있지만 정작 그 밑에 달린 댓글들에선 이 곡이 가진 치유와 위로의 힘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라스 역시 이 곡은 "팬들이 자신의 정신 건강을 어떻게 느끼는지 표현하도록 독려"하는 곡이라고 했다. 더 많은 대화가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신만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운다는 얘기다. 제임스도 언젠가 "아이들에게 해답은 주지 않고 의문만 갖게 하는 무책임한 밴드"라며 메탈리카를 비판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건 해답을 주는 게 아니라 자신과 같은 의문을 품고 고민하고 헤매는 친구도 있다는 걸 아는 것이다. 해답은 그런 다음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찾아갈 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파워 발라드 'Fade to Black'이 자살을 종용하는 곡이라고 비난하던 사람들이 그 곡을 들은 뒤 용기를 얻어 자살 충동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수 백 명 팬들의 증언에 머쓱해진 상황과 지금 상황은 어딘가 닮은 면이 있다.

[72 Seasons]는 트루히오가 그간 참여한 메탈리카 작품들 중 그의 존재감이 가장 선명한 앨범이다. 'Sleepwalk My Life Away'는 그중에서도 베이시스트를 더 빛내주고 있다. 특히 제임스는 묵직한 핑거링 베이스가 이끄는 인트로를 마음에 들어 했고, 커크는 "완전히 록킹하면서 다이내믹한 전환"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트루히오는 이 곡이 가진 오지 오스본적 코드 진행을 좋아했다. 여기저기 풀어헤쳐진 리프들이 단단한 메인 리프로 모이는 지점은 '리프의 수집과 선별, 반영'이라는 메탈리카의 오랜 작법이 그대로 녹아있는 양상이다. 인생과 몽유병을 등가에 놓고 초자연적 현상("자정의 태양 속에서(in the midnight sun)") 속 혼돈에 접어드는 곡의 느낌을 충실히 녹여낸 팀 삭센티(Tim Saccenti)의 뮤직비디오는 'Until It Sleeps'를 연출한 사무엘 베이어의 긴장에 은근히 닿아 있다.

'악마의 화음'이라 일컫는 3온음(Tritone)과 블랙 사바스는 동전의 양면이다. 어느 해외 비평가는 3온음과 블랙 사바스 또는 블랙 사바스의 3온음이 없었다면 헤비메탈은 없고 하드록만 있었을 거라고 말했다. 'You Must Burn!'은 그런 블랙 사바스가 연주하는 'Sad but True'다. 여기서도 베이스 라인으로 곡의 주어를 맡고 있는 트루히오는 모든 파트 중 미들 섹션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제임스는 그 중반부에서 연기처럼 퍼져나가는, 마치 레인 스탤리 마냥 주술적인 색채로 노래한 부분이 보컬리스트로서 새로운 도전이었다며 흥분했다. 이 곡은 스스로를 태워(burn) 진정한 자아를 찾고자 하는 자아의 거듭남에 관한 노래다. 마찬가지로 6분 안에 끊을 수 있었을 트랙이지만 라스와 제임스는 코러스와 메인 리프를 한 번 더 돌리면서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마냥 곡을 질기게 늘였다. 클래시(clashmusic.com)가 지적했듯 이처럼 "노래가 반복되다 갑작스러운 브리지나 휘몰아치는 솔로가 지루함을 덜어주기 전에 지루함을 느끼는 경우"가 이번 앨범에는 잦다. 농구로 치면 90년대 초까진 노룩 패스, 더블 클러치, 앨리웁 덩크로 득점하며 팬들을 열광시킨 반면, 지금의 메탈리카는 3점 슛과 자유투로 주요 득점을 올리는 모양새랄까. 인트로부터 아우트로까지 구석구석 욱여넣은 군살들은 확실히 줄이거나 없애도 됐을 '과잉'이다.

라틴어로 영원한 빛(Eternal Light)을 뜻하는 'Lux Æterna'는 2019년과 2022년에 다시 재활원을 찾은 제임스가 "빛과 쇄신"이라는 뜻을 담아 앨범 타이틀로 쓰려던 것이었다. 늘 우리 안에 있던, 이제 막 터져 나오려는 '영원한 빛'이라는 개념이 앨범 전체를 요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데뷔작의 'Motorbreath'에도 나오는 프리 코러스의 가사("오직 전속력으로!(full speed or nothing)")는 필 테일러(모터헤드)의 유산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라스의 더블 베이스 드러밍을 타고 곡이 지닌 에너제틱한 성격을 미련없이 대변한다. [Ride the Lightning]을 발매한 해(1984년)에 메탈리카를 처음 만난 판테라의 다임백 대럴은 타고난 리듬 기타리스트로서 제임스의 다운피킹 실력과 더불어 그의 "빠른 오른손"을 칭찬한 적이 있는데 'Lux Æterna'는 다임백의 증언을 증명하는 곡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였는지 트루히오는 녹음 때 슬쩍 피크를 썼을 만큼 이 곡의 속도감에 살짝 부담감을 느꼈다고 한다. 제임스의 폭발적인 코러스 샤우팅은 그의 건강을 걱정하는 일각을 향해 '나 아직 죽지 않았어!' 외치는 듯 들린다.

가사에는 메탈리카에게 엄청난 영향을 준 다이아몬드 헤드의 1979년 데뷔작 [Lightning to the Nations]를 향한 오마주("Lightning the Nation")가 포함돼 있어 '혹시, 이제는 정말(!)' 80년대 초중반 스타일로 돌아가주는 것인가라는 섣부른 예상, 기대를 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라스는 그러나 그 가사를 뒤늦게 발견했고, 당연히 '과거로 돌아가자' 따위 각오를 의도한 일은 없었다며 선을 그었다. 제임스의 가사와 라스의 배경(10대 시절 아메리칸 하드록에 심취해 있던 제임스를 NWOBHM 세계로 이끈 건 라스였다)이 맞아떨어진 건 그저 우연이었다는 얘기다. 제임스는 10대 시절 메탈 키드였던 자신들의 헤비메탈을 통한 열광, 구원, 해방, 동맹을 노래한 이 곡을 두고 "라이브의 에너지, 빛,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짧고 달콤하고 멋진" 트랙이라 자평했다. 그는 때문에 이 곡을 라이브에서 자주 연주하게 될 거라 덧붙였는데 실제 제임스는 이 곡을 프랑스 출신 테크니컬 메탈 밴드 고지라(Gojira)가 커버한 39년 전 곡 'Escape'보다 2회 많은 세 차례 무대에서 연주(2023년 4월 18일 기준)했다.

나는 늘 [Load/Reload]를 메탈리카가 좀 더 나이가 들어 냈어야 하는 앨범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Crown of Barbed Wire'가 반가웠다. 물론 듣는 사람에 따라 조금 늘어지는 기분이 들 수도 있는 이 곡은 "과거의 함정을 벗어나는 데는 성공했지만 심장에 불을 붙이는 데는 실패했다"는 혹자의 진단이 비수로 꽂히는 곳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메탈이란 속도도 중요하지만 메탈은 언제나 '헤비'메탈이었다. 우리가 메탈리카를 사랑한 이유, 메탈리카가 그토록 높은 곳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속도보단 무게와 그루브였다. 이 곡의 출렁이는 메인 리프가 딱 그 범주에 든다. 어둡고 블루지하며 느리고 처절하다. 노랫말이 묘사하는 "왕좌에서 녹슬며 피 흘리"는 왕이란 어쩌면 메탈리카 자신을 은유한 것일까. '이건 이러저러한 의도로 썼다'라고 말하는 가사보단 개인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추상적 표현을 즐기는 제임스여서 사람들은 이 곡에서도 암호 같은 그의 시를 각자 추리로 풀어볼 수밖에 없다. 트루히오도 "노랫말에 늘 해석의 여지가 있는 것이 제임스와 메탈리카의 매력"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표현은 제임스의 몫이지만 해석은 그걸 듣는 사람들의 몫이다.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를 감독한 코리 데이글(Corey Daigle)은 그걸 흉악범이 맞는 비참한 최후로 풀어냈다.

메탈리카의 장수 비결은 젊음에 있다. 여기서 젊음이란 듣는 사람들의 젊음이다. 젊은 세대는 어느 시대에나 있다. 그리고 젊은 시절 전성기를 맛본 메탈리카는 늘 자기 세대의 분노와 고민을 가사와 음악에 녹여왔다. 수년 전 넷플릭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는 그 가사와 음악을 MZ 세대의 코앞까지 데려갔었다. '옐로 앨범'의 연료(fuel) 같은 'Chasing Light'는 젊다. 저들이 일찍이 다이아몬드 헤드와 머시풀 페이트에게서 물려받은 성향, 즉 끊임없이 템포를 바꾸고 분위기를 바꾸는 리프의 나열, 향연을 집요하게 게워낸다. 11집에선 제임스의 리듬 기타와 커크의 리드 기타가 맞물리며 감동을 주는 장면들이 심심찮게 포착되는데 이 곡에서도 마찬가지다. 팜뮤트 다운피킹과 더불어 30년이 넘게 해온 방식임에도 새삼 그 가치를 곱씹게 되는 것은 그 작법이 잘 유지, 적용되었다는 뜻일 게다.

가사는 언뜻 헤비메탈이라는 음악이 헷필드라는 아이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제임스에 따르면 이 곡은 노숙인이든 청년이든 그들을 단순한 사회 구성원 이전에 하나의 고유한 영혼으로 바라봐줄 것을 권하고 있다. 빛을 좇고 투쟁하고 다시 일어나 모든 것을 끝내라고 종용하는 메시지는 그래서 단말마 같은 인트로 노랫말("빛은 없어!(there's no light)")이 "어둠이 없다면(without darkness)"이라는 전제를 내건 내막에 대한 설명과 같다. 나는 "그들도 누군가의 자식이고 그들을 도울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한다"는 제임스의 언급에서 메탈리카의 음악이 남몰래 품어온 휴머니즘을 본다. 부디 당신에게도 드러나길.

인트로를 짧게 갔다면 더 좋았을 'If Darkness Had a Son'의 코러스 가사 "어둠에게 자식이 있다면 바로 나야(If darkness had a son here I am)"는 제임스가 오래전부터 휴대폰에 담아두었던 글귀다. 커크는 그 코러스 멜로디를 칭찬하며 지난 9, 10집 앨범에서 발전해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작이 기본적으로 인간 영혼의 탐구, 자아의 이해에 방점을 찍고 있는 만큼 "영혼을 탐색하고 숨겨진 악마와 대면하는 시간을 보낸 결과"라는 <케랑!>의 곡 진단은 꽤 적절해 보인다. 어둠(darkness)과 유혹(temptation)을 핏줄 관계로 설정한 곡의 메시지를 영상으로 옮긴 사람은 이미 타이틀 트랙 '72 Seasons'와 'Screaming Suicide', 'Sleepwalk My Life Away'와 'You Must Burn!', 'Lux Æterna'에서 실력을 발휘한 팀 삭센티다. 후시 작업이 아닌 현장 연출을 지향하는 '연극적인' 그의 창작 철학은 어둠에 대해 긍정적 시각을 갖게 된 화자의 흥분을 표현해야 했던 이 곡에도 절묘하게 침투한다. "Temptation!" 밴드는 벌써부터 팬들이 외쳐줄 2023년판 'Creeping Death'식 떼창을 기대하고 있다.

비교적 짧고 후련한 'Too Far Gone?'은 누가 들어도 'No Remorse'와 'Breadfan'의 합체, 변주다. 1, 3집의 스피드와 그루브를 겸비했다. 제임스가 늘 염두에 두는 지론("보컬은 퍼커션의 일부")은 곡 곳곳에 적용되며 노래를 버틸 수 있게 한다. 다만 귀에 쏙 들어오는 코러스 멜로디는 좀 더 밀어붙였더라면 좋았겠다(이럴 땐 좀 늘려도 되는데). 제임스는 앞만 보고 내달리는 이 곡에서 하루를 무사히 버텨내려는 자의 절망, 고립, 동요(Agitation)를 노래한다. 트루히오는 제목과 질주감 때문인지 노래를 들을 때마다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케랑!>은 'Room of Mirrors' 인트로에서 러시(Rush)의 그림자를 목격했고, 나는 절과 절 사이 템포 체인지에서 'Hit the Lights'를 들었다. 또한 드라마를 절정으로 이끄는 트윈 기타의 화음은 씬 리지를 닮았다. 커크가 이 곡과 관련해 언급한 곡들('Orion'과 'To Live is to Die')의 주인공인 클리프 버튼이 가장 좋아했던 밴드가 씬 리지였다는 건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지난 앨범의 'Here Comes Revenge'와는 다른 결을 지닌 트리스탄 자밋의 애니메이션은 환상의 가면을 벗고 자유를 갈구하는 한 남자의 절박한 몸부림을 밴드의 합주 장면과 혼돈의 이미지들에 겹쳐 호쾌하게 그려냈다. 후반부 더블 베이스 드러밍은 80세를 지난 폴 맥카트니, 아직도 활동 중인 롤링 스톤스, 지금도 28곡으로 세 시간을 공연하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언급하며 "아직 10년은 더 할 수 있다"라고 말한 라스만의 자기 증명이다.

"불화와 공존하는 궁극의 평화" 또는 "불행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로 압축할 수 있을 'Inamorata'는 또 한 번 베이스에 의미 있는 자리를 허락하며 밴드 내 트루히오의 존재감을 부각한다. 'Are You Gonna Go My Way'(레니 크래비츠)를 빼닮은 펑키 하드록 리프가 주도하는 메인 리프가 1부를 장식하고, 곡 중반 세미 어쿠스틱으로 이탈하는 2부에서 트루히오는 자신만의 'Orion'과 'My Friend of Misery'를 찾아 나선다. 곡을 쓸 때 항상 멜로디와 구성을 중시하는 제임스의 성향은 이 곡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는 것이다.

사실 트루히오는 올해로 메탈리카 멤버가 된 지 '72시즌'을 훌쩍 넘겼음에도 그는 늘 밴드를 겉도는 느낌을 주었다. 클리프와 제이슨은 각각 2, 3집과 4, 5집이라는 메탈리카 전성기 대표작들을 장식한데 비해 트루히오는 모든 것을 이룬 밴드에 그저 안착한 듯한 모습이랄까. 9집과 10집이 절대 나쁜 앨범이 아니었는데도 이상하게 사람들의 관심은 트루히오에게 덜 적극적이었다. 그런 그가 가장 두드러져 보이는 게 바로 [72 Seasons]다. 어떤 감상 환경에서도 트루히오의 베이스를 비켜가긴 힘들 정도로 그렉 피델만은 신작에서 베이스 사운드를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 깊이 고민한 듯 보인다. "메탈리카가 어디로 갈 지에 대한 물음표"라는 평을 받은 [72 Seasons]의 엔딩곡 'Inamorata'는 그래서 나에겐 트루히오가 어디로 갈 지에 대한 물음표로 보이기도 했다.

"음악을 한다. 부자가 된다.(Play music. Get rich.)"

40년 전 고등학교 졸업 앨범의 '계획(plans)' 항목에 제임스는 위와 같이 적었다. 물론 제임스는 둘 다를 이뤘다. 40년간 앨범 11장을 냈고 전 세계에 1억 2천5백만 장 이상을 팔아 냈다. 그리고 제임스를 비롯한 메탈리카 멤버들은 지금 인생의 3분기가 시작되는 환갑을 지나고 있다. 죽음도 불꽃놀이도 사람들이 떠난다 해서 멈추는 게 아니라고 말한 제임스. 그럼 무엇이 멈추게 하는가. 그건 라스와 자신이 밴드를 접기로 결정하거나 밴드 활동에서 더는 특별한 걸 느끼지 못할 때, 또는 둘 중 한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길 때 뿐이다. 비록 멤버들이 'Battery' 같은 곡을 연주하기 위한 체력 유지 차원의 유산소,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하고는 있지만 일본 록 평론가 이토 마사노리(Masanori Ito)의 말처럼 완강한 정신력은 유지할 수 있어도 육체의 강인함은 언젠간 사라진다. 음압의 박력과 질주감은 젊음의 특권이라는 얘기다. 이토는 명인(名人)이란 밀기만 하는 기술을 벗어나 '끌기'와 '바꾸기' 기술로 활로를 찾으면서 어떤 경지에 이르는 법이라며, 그것으로 얻은 폭과 깊이가 바로 명인만이 안겨줄 수 있는 숨은 맛이라고 했다. 메탈리카는 '명인'일까. 각자의 생각에 맡긴다.

얼마 전 한 팬은 자기가 원하는 건 쓰레기(Trash)가 아닌 스래시(Thrash)라고, 나름 라임까지 갖춰 과거와 미래를 어떻게든 엮어보려는 메탈리카의 음악적 노력을 냉소했다. 언젠가 라스는 팬의 저런 반응에 건넬 대답을 미리 해둔 적이 있다. "스래시(Thrash)라는 단어는 지성이 결여된 것처럼 느껴진다." <케랑!>의 저널리스트 말콤 돔이 앤스랙스의 'Metal Thrashing Mad'를 언급하며 생긴 '스래시 메탈'이라는 수식어에 불편함을 비치며 라스가 80년대 중반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동안 메탈리카 팬들은 메탈리카를 너무 사랑해서 메탈리카의 변화 또는 진화에 꾸준히 화를 내왔다. 이번에도 여기저기서 그 화가 느껴진다. 아마 저 팬도 지난 10집에서 진화한 '이단(異端)의 메탈리카와 메탈리카의 클래식이 일으킨 화학 작용'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거나 아예 느낄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말, 이젠 안 그럴 때도 되지 않았나.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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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약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마이데일리 고정필진
웹진 음악취향y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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