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돈봉투 의혹' 쏟아지는데 해외에서 오불관언하는 송영길

연합뉴스 2023. 4. 1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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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시 대표 경선후보였던 송영길 전 대표가 돈봉투 살포에 관여했을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민주당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과 강래구 한국감사협회장의 통화가 담긴 휴대전화 녹음 파일에 따르면 송 전 대표는 자금책인 강 회장이 돈 봉투를 지역 본부장들에게 나눠줬다고 보고하자 '아유 잘했네, 잘했어'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송(영길)이 '래구가 돈 많이 썼냐'고 묻더라"는 이씨의 발언, 윤관석 의원과 함께 돈봉투 살포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이성만 의원이 "'송 있을 때 같이 얘기했는데'라고 하더라"는 강 회장의 발언도 공개됐다. 강 회장은 또 이씨에게 "영길이 형이 어디서 구했는지 그런 건 모르겠지만 많이 처리를 했더라고"라고 말하기도 했다. 송 전 대표가 윤, 이 의원의 돈봉투 살포를 인지하거나 보고받았을 뿐 아니라 별도로 직접 금품을 전달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건의 윤곽은 2021년 5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송 후보 캠프 관계자 9명이 국회의원 10여명을 포함해 전국대의원, 지역본부장 등 70여명에게 모두 9천400만원의 현찰을 뿌렸다는 것이었는데 녹취록이 추가로 나오면서 그 규모가 더 커질 수도 있는 상황이 됐다.

지난해 12월부터 파리에 머무는 송 전 대표는 사건이 터지자 "잘 모르는 일"이라면서 "이정근의 개인적 일탈 행위를 감시·감독하지 못한 것에 대해 당시 당 대표로서 도의적 책임을 느낀다"고 밝혔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송 전 대표에게 귀국을 요청한 뒤에도 "이 대표의 말씀과 당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고, 내 입장도 충분히 설명해 드렸다"고 말해 조기 귀국 의사가 없음을 내비쳤다. 하지만 설사 본인의 의사와 무관한 일이었더라도 이 모든 사단은 송 전 대표의 당선을 위한 것이었다. 도덕적 책임으로만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시시각각 촉각을 곤두세우고, 작은 움직임에도 민감한 선거 기간에 캠프 관계자, 동료 의원 등 적어도 100명 가까운 주변 인사가 개입된 사안을 전혀 몰랐다고 하는 것 또한 비상식적이다. 송 전 대표가 버티면서 민주당은 더욱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국민의힘뿐 아니라 민주당 내에서도 그의 오불관언 태도에 불만이 터져 나오는 이유이다. 당내 최대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더미래)는 19일 입장문에서 "귀국을 미루며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전직 대표로서, 책임 있는 지도자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공개 비판했다. 쏟아지는 녹취 파일들을 손바닥으로 가릴 수는 없다. 전 당 대표로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20년 전도 아닌 불과 2년 전에 당시 집권 여당이었고, 지금도 국회 최다 의석을 보유한 정당이 검은돈을 주고받으며 당 대표 선거를 치렀다는 의혹은 믿기 어려울 만큼 초현실적이다.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돈봉투 사건'이 벌어진 것이 2008년이다. 그때도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300만원 제공만 인정한 법원은 박희태 전 국회의장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런데 15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퇴행적 관행이 정치판, 그것도 거대 주류 정당의 한복판에서 버젓이 횡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공교롭게 민주당 의원 10여명에게 건네진 것으로 의심되는 돈도 각각 300만원이라고 한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생생한 통화 음성이 연일 공개되는 것과 관련해 검찰이 정치적 의도에서 통화 파일을 유출한 것으로 의심한다. 증거품으로 압수된 휴대전화가 검찰 손에 있다는 점에서 이씨 측이 심경의 변화로 파일을 자진해 언론에 흘렸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이번 사건의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피의사실 공표 문제는 별도로 따져볼 일이다. 민주당은 반성과 성찰이 우선이다. 의혹이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된 시점에서는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조치를 내놓고, 철저한 혁신도 뒤따라야 한다. 후진적 사고와 의식은 그대로인 채 얼기설기 겉모양만 바꾼다면 유권자들이 먼저 알아차리고 심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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