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 환자 매년 10만명 나올텐데 의료 체계는 붕괴 임박”...신경과 전문의들 작심발언

김명지 기자 2023. 4. 19. 14:4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한뇌졸중학회 기자간담회
“중증환자 전원·이송 문제 25년째 반복”
“정부 해결 의지 안보여”
‘119-전문의료진’ 소통체계 마련해야
배희준 서울대의대 신경과 교수(대한뇌졸중학회 이사장)이 19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대한뇌졸중학회 제공

국내 뇌졸중 분야의 최고 석학인 배희준 서울대 의대 신경과 교수는 19일 “한국의 뇌졸중 의료체계가 무너지는 건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대한뇌졸중학회 이사장인 배 교수는 이날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응급의료 기본계획 및 필수의료 지원 대책’ 기자간담회에서 현 정부의 응급의료 지원체계의 허점을 지적했다.

배 교수는 자신의 임용 시절을 회상하면서 “서울대병원에 첫 임용됐을 때만 해도 뇌졸중 전임의를 경쟁으로 5명을 뽑았는데, 지금은 뇌졸중을 치료하는 전임의가 전국에 5명밖에 안된다”며 “의료체계 붕괴가 임박했다”고 경고했다.

배 교수는 학계에서 ‘뇌졸중 명의’로 꼽히는 인물이다. 뇌신경 분야에서만 국제과학논문인용색인(SCI)급 학술지에 논문 300편을 발표했다. 배 교수는 “30년 가까이 현장을 지키면서 심뇌혈관질환 등 필수 중증의료 영역의 급성기 대응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목소리를 냈지만 되려 악화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뇌졸중은 뇌혈관이 막혀서 발생하는 뇌경색(허혈성 뇌졸중)과 뇌혈관이 터져서 발생하는 뇌출혈(출혈성 뇌졸중)로 나뉜다. 동맥경화로 혈관이 좁아지면 혈액이 원활히 흐르지 못해 혈전이 생긴다. 이렇게 생긴 혈전은 혈관 속을 흘러 다니다가 뇌혈관을 막아 뇌에 산소 공급을 하지 못해 뇌가 손상된다.

국내에서는 매년 약 10만5000명의 뇌졸중 환자가 발생하고 1만4000명이 세상을 떠난다. 뇌출혈은 치료가 쉽지 않지만, 뇌경색은 막힌 혈관만 뚫어주면 치료가 가능하다. 뇌경색 증상이 나타났더라도 3시간의 골든타임 안에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환자가 후유증 없이 일상생활에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뇌졸중 환자 중 3시간 이내에 병원을 찾는 경우는 36% 정도에 그친다.

뇌출혈로 사망한 서울 아산병원 간호사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의료계에서는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배 교수와 함께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현재의 뇌졸중 진료체계는 지속하기 어려운 체계라며 뇌졸중을 비롯한 응급 중환자 이송과 전원 체계를 갖추고 진료 수가를 인상하는 등 진료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뇌졸중학회 김태정 홍보이사(서울대 의대 신경과 교수)는 “뇌졸중 환자가 응급실에 가도 뇌졸중을 전문으로 보는 의료진과 연계되지 않아 치료 받지 못하거나 119구급차가 치료 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사망하는 사례가 25년째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서 뇌졸중 환자 수는 앞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119 이송 단계에서 뇌졸중 치료 전문 진료과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연계 시스템과 치료 전체 과정을 관리하고, 환자의 최종 이송을 책임질 수 있는 관제 센터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김성헌 병원전단계위원장(강원대 의대 신경과 교수)은 “경증 환자로 넘치는 응급실에서 중증 환자의 진료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정부가 내놓는 응급의료대책은 근본적인 해결책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앞으로 뇌졸중 진료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차재관 질향상위원장(동아대 의대 신경과 교수)은 “동아대만 해도 58세인 의사와 54세인 의사가 야간당직을 번갈아 가며 서고 있고, 전공의 없이 교수가 당직을 서는 대학병원이나 수련병원이 늘고 있다”며 “지금 추세라면 5∼10년 뒤 연간 10만 명의 뇌졸중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뇌졸중 전문의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정된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라면 경증 환자와 중증 환자 진료를 분리해 중증응급의료센터는 필수 중증 환자의 최종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체계가 정립돼야 한다는 게 학회의 제안이다.

배 교수는 “정부의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가 환자의 진단, 이송, 치료관리를 콘트롤해야 한다”며 “모든 병원에서 24시간 치료가 어렵기 때문에 현재 84개뿐인 뇌졸중센터와 권역센터를 확충하고 최종진료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