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어 EU도 ‘반도체법’...TSMC·인텔은 ‘적극’, 삼성은 ‘글쎄’
각국이 반도체를 전략 산업화 하는 가운데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도 막대한 정책자금을 풀어서 지원하는 ‘반도체법(Chips Act)’ 시행에 합의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유럽에 생산공장을 지으려는 인텔·TSMC와 달리 삼성전자는 일단 관망하는 모습이다. 유럽이 반도체 생산기지로서 사실 큰 매력이 없다는 평가도 있어서다.
EU는 18일(현지시간) 반도체법안에 대한 집행위원회·이사회·유럽의회간 3자 협의가 최종 타결됐다고 발표했다. 이 법안은 2030년까지 민간 및 공공에서 430억 유로(약 62조원)를 투입해 반도체 생산공장·연구소·디자인 시설 등의 설립을 지원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통해 2나노미터(㎚) 반도체 등 최신 설비를 역내에 마련하고, EU의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현재 9% 수준에서 20%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게 목표다. 이제 EU 반도체법은 유럽의회·이사회 각각의 승인을 거치는 형식적인 절차만 남았다.
EU에는 최신 반도체 생산에 필수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ASML(네덜란드)가 있고, 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연구하는 아이멕(벨기에)이 있다.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지난해 6월 유럽출장을 마치고 돌아와서 “ASML과 아이멕에서 차세대, 차차세대 반도체 기술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었다”며 “첫번째도 기술, 두번째도 기술, 세번째도 기술”이라고 말했다. 차량용 반도체 기업과 자동차 회사가 많다는 점도 EU의 장점으로 꼽힌다.
유럽연합이 역내에 들이길 원하는 첨단 반도체 기업은 선폭 3㎚ 이하 초미세공정 기술을 가진 TSMC와 삼성전자, 그리고 파운드리(위탁생산) 사업 재진출을 선언한 인텔 정도다.
특히 파운드리 후발주자인 인텔은 10년간 유럽에 800억 유로(115조원)를 투자키로 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독일 마그데부르크에 170억 유로(24조원)를 들여 공장을 짓고, 아일랜드에 있는 인텔 공장을 두 배로 확대키로 했다. 인텔 자체 물량과 일부 고객사 물량을 이들 공장에서 생산할 것으로 보인다.
TSMC와 삼성전자를 따라잡으려면 생산기반을 최대한 마련해야 하는데 여기에 유럽 등의 보조금을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TSMC도 독일 드레스덴에 차량용 반도체 공장을 짓는 프로젝트를 검토 중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3사 중 유일하게 유럽 투자 계획을 발표하지 않았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유럽에는 삼성 파운드리의 고객사나 협력사가 많지 않다”며 “(미국·중국 시장과 달리) 삼성이 뛰어들 유인이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유럽은 전력·용수 비용과 인건비가 높고, ASML 정도를 제외하고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협력사가 거의 없다.
파운드리는 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나 종합반도체회사(IDM) 물량을 수주해야 한다. NXP(네덜란드)·인피니온(독일)·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스위스) 등 유럽 회사들은 삼성전자가 주력하는 모바일·서버용 칩이 아닌 차량용 칩(전력반도체·마이크로컨트롤러 등)을 설계한다.
이들 차량용 반도체는 구형인 8인치 웨이퍼(반도체 원판)를 사용하고 90~180㎚ 공정이 대부분이다. 칩 가격도 평균 2달러 수준으로, 자동차 1대에 들어가는 모든 반도체의 가격을 합산해도 자동차 판매가의 2~3%에 그치는 등 부가가치가 낮다. 향후 시장규모가 커질 자율주행용 칩은 EU보다는 미국·이스라엘 팹리스의 수준이 더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TSMC는 이미 유럽 팹리스에서 차량용 반도체 물량을 받아 생산하고 있고 독일 드레스덴 공장 프로젝트 역시 이들 고객사를 염두에 두고 추진한다는 점에서 삼성보다는 유럽 투자에 대한 부담이 적다.
한편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EU의 반도체 제조 역량이 강화될 경우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경쟁이 심화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국내 소부장 기업의 수출 기회 확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기회요인도 병존한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유럽 투자 가능성을 묻는 경향신문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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