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세월호’냐고 묻기 전에 [플랫]

플랫팀 기자 2023. 4. 1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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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은 사람이라면 함께 울어야 하는 날이다. 세월호참사 9주기였던 지난 16일, 오전에는 인천에서 일반인희생자 추모식이 있었고, 오후에는 안산에서 기억식이 있었고, 저 멀리 침몰해역에서는 선상추모식이 있었다. 전국에서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준비되고 진행됐다. 9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건 참으로 다행이다.

안산의 기억식에서는 304명의 합창단이 무대에 올라서 합창을 하고는 304명 희생자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었다. 곧이어 고 이영만의 형 이영수씨는 차분하게 편지를 낭독했다.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열린 선상추모식에서 한 탑승자가 국화꽃을 헌화하기 전에 기도를 하고 있다. 김세훈 기자

“이례적인 일은 사실 언제나 이례적이지 않다는 걸. 너희를 보내고 남은 우리가 해온 건, 슬픔의 강요가 아니라는 걸. 너희의 죽음만 특별하게 기억하려는 게 아니라, 반대로 모든 죽음이 위로받을 일이고 모든 생명이 귀함을 알아주길 원했다는 걸. 나라는 언제나 사람들의 삶과 안전을 담보로 서 있다는 걸. 그리고 대규모 참사는 그 약속에 뚫린 큰 구멍을 보여주는 일이란 걸. 여기에 ‘놀러 가서 죽었는데’ ‘적당히 해야 하는데’ 같은 말은 들어올 자리가 없다는 걸.”

아이를 잃은 부모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동생을 잃은 형의 입장에서 담담하게 써 내려간 편지였다. 유가족들만이 아니라 거기 참석했던 사람들이 함께 울었다.

더 집요하게 ‘다른 길’ 만들어야

이영수씨의 편지글이 낭독되는 중에도 기억식장 밖으로부터는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을 모욕하는 발언들, 혐오발언들이 성능 좋은 마이크를 통해 계속 들려왔다.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이 자라면서 추억을 쌓았던 그곳에 추모공원인 ‘생명안전공원’을 만들고자 하는 유가족들을 향해 수위 높은 욕설까지 퍼부었다. 이것도 매년 있는 일이다. 혐오세력들의 수는 예전만큼 안 될지 몰라도 그들의 발언 수위는 훨씬 극악해지고 있다.

9년이 지났으니 지겹다고, 이제 그만하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재난공화국’이라는 오명을 가진 대한민국에서는 재난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한 추모공원 하나 제대로 만들어본 적이 없다. 성수대교 희생자들의 위령탑은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성수대교 북단에 있고, 삼풍백화점 피해자들의 위령탑은 참사 현장이 아니라 아무런 연고도 없는 양재 시민의 숲 한가운데에 숨겨져 있다.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들의 추모공원은 마련되어 있지도 않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아픈 죽음이라면 저 멀리 밀어내고, 치우고, 덮고, 가리는 것으로 대응해온 결과가 세월호참사이고, 이태원참사가 아닐까.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16일 9주기 선상추모식에 참석해 참사 해역에 떠 있는 노란 부표를 응시하고 있다 김세훈 기자

아픈 참사일수록 가까운 곳에 기억의 장소를 만들고, 그로부터 부지런히 성찰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다짐을 하고, 실질적인 대책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9·11테러로 사망한 이들을 위한 기억의 장소가 바로 그 참사의 현장에 만들어져 있는 것이 그런 이유이다. 우리 사회가 세월호를 놓는 순간, 우리는 세월호조차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서 더 위험한 세상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되지 않게 하려면, 지금보다도 더 집요하게 이전의 재난참사 때와는 다른 길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안산 화랑유원지에 건립될 예정인 ‘생명안전공원’은 차질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목포신항에 거치된 채 녹슬고 있는 세월호도 계획대로 이전, 복원하여 ‘세월호생명기억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아울러 서울시의회 앞에 있는 세월호 임시기억관도, 서울시청광장의 이태원참사 분향소도 시민들의 기억장소로 제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이례적인 피해자도 참사도 없다
16일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9주기 기억식에서 한 유가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문재원 기자

안산의 기억식에서는 두 엄마의 대화가 영상으로 나왔다. 세월호참사 유가족은 우리가 더 잘 싸우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고, 이태원참사 유가족은 그때 슬퍼서 울기만 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런 불행한 인연이 우연일까? 재난참사의 아픈 기억을 지우는 그 자리에서 또 어떤 재난참사가 생겨나고, 어느 누군가는 새 피해자가 되어 고통의 시간을 맞는 불행을 겪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언제까지 세월호를 붙들고 있을 거냐고 묻기 전에 세월호부터 제대로 기억하자고 말해야 하는 것, 이것이 안전한 세상을 바라는 시민의 태도여야 한다. 더 이상 재난참사로 소중한 생명을 잃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면 그래야 한다. 이례적인 피해자는 없고, 이례적인 재난참사는 없다.

▼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플랫팀 기자 areumlee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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