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탐·인]‘88세 미수전’ 연 금봉 박행보 화백

김옥조 2023. 4. 19.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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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8세 맞아 화업 63년 재조명 ‘화제’
“한 점 한 획 소홀히 하지 않았다” 회고
문기 가득 남도 산수화 여전한 품격 선보여
4월 7일부터 5월 14일까지 광주금봉미술관
‘구름에 달 가듯이’ 등 신작 30여 점 전시
▲원로 문인화가 금봉 박행보 화백이 올해 88세 미수를 맞이해 지난 4월 7일부터 오는 5월 14일까지 광주 금봉미술관에서 ‘미수전’을 갖고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사진은 그림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박행보 화백.

◇ ‘아흔 살’ 앞둔 노화백의 예술열정

금봉(金峰) 박행보 화백이 올해 나이 ‘88세’를 맞이하면서 화업 63년을 기념하는 ‘미수전(米壽展)’을 열어 화단 안팎에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많은 화가들이 평생 작품 활동을 해오지만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붓을 놓고 화실에서 물러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박 화백은 아흔 살을 바라보는 나이에 건강을 유지하며 여전히 먹을 갈고 붓을 들어 화선지를 누비는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지난 7일부터 다음 달 14일까지 광주광역시 북구 각화동 금봉미술관 제1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금봉 박행보 미수전’에는 ‘구름에 달 가듯이’, ‘금골산’, ‘꽃의 향연’, ‘내장사 가는 길’, ‘만사무심’ 등 올해에 그린 작품을 포함해 모두 30여 점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박 화백은 “미수(米壽)를 맞이해 자연의 섭리에 따라 변화하는 춘하추동 진풍경, 이 아름다운 잔상(殘像)을 화선지에 투영하고, 자신만의 필치로 그려내고자 하는 것은 화가의 꿈일 것이다”면서 “저 또한 군더더기 없이 생동감이 넘치는 함축미(含蓄美)를 추구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미수전의 소감을 밝혔습니다.

▲금봉 박행보 작 '산'. 60x55, 화선지,2007

박 화백은 한국 문인화의 기운과 전통, 정신을 계승·발전시켜 온 대표적인 화가로 꼽힙니다.

박 화백은 광주를 지키며 화업을 일궈온 원로화가로 남도산수를 꾸준히 화폭에 담아왔습니다.

남종 산수화의 거목으로 불리는 의재 허백련 화백을 사사하여 남도화백의 전통을 잇고 있습니다.

화가의 길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미 시·서·화에 능해 국전(國展)에 입선한 이후, 사군자 부문에 6회의 특선을 내리 따내 그 기량을 인정받은 바 있습니다.

이어 국전에서 문화공보부 장관상, 국무총리상, 국전추천작가상을 연달아 수상하면서 남도 화맥을 잇는 대들보로 성장했습니다.

또한 철저한 작가정신으로 화단의 귀감이 되어 호남대 미술학과 교수로서, 제자 그룹 `취림회' 등을 지도하며 후학들을 길러내는데도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박 화백은 이번 ‘미수전’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밝힙니다.

“한 점 한 획을 소홀히 하지 않았던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면, 세밀한 표현보다는 간략한 자연스러움을 추구했던 것 같습니다. 높고 낮은 산세나 사물을 거리낌 없이 붓을 휘둘러 독창적인 가락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종국에는 이러한 욕심으로 인하여 그림이 어지럽혀지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90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욕심을 버리지 못함이 심히 부끄럽고, 그러한 그림으로 미수전에 임하게 되어서 실로 애석하게 생각할 뿐입니다.”

▲박행보 작 (좌) '운주사', 70x50, 삼배지, 2023. (우) '꽃의 향연', 74x48, 운용지, 2023

◇ 남도 자연 독창적으로 담은 '금봉산수'

박 화백의 이러한 예술가로서의 품격과 태도는 그의 작품 세계에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한없이 펼쳐진 들녘 끝에 앉아 있는 산과 그 아래 돌아 흐르는 강, 산속 깊숙이 자리 잡은 기암절벽을 찾아 먹향 그득 배인 수묵산수를 주로 그려왔습니다.

고산준령보다 평평한 들판에 봉긋 솟은 낮은 산들이 어깨를 맞댄 남도의 산천을 독창적인 시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금봉산수'의 특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박 화백은 이번에 출품한 ‘금골산’, ‘산안개’, ‘산’, 날아도는 학‘ 등은 남도의 명산과 기암절벽을 즐겨 그렸습니다.

이는 남도자연의 골짜기마다 서려있는 외경의 세계를 명징하게 그려내는 작의를 드러낸다고 하겠습니다.

흔히 보아온 산수화의 낯선 분위기를 고즈넉한 고향의 그리움으로 끌어들이면서 친근한 느낌을 금방 풍겨내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가볍게 채색을 가해 부드러운 산수화의 이미지를 토해내고 있는 것 또한 그의 그림을 접하는 즐거움입니다.

비경으로 표현된 산은 장중하여 정통 산수화의 그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전통을 기반으로 펼쳐져 있는 우리 그림의 현대회화를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는 정적인 세계의 표현이자 인간이 추구해 가는 이상향의 품새를 말해준다고 불 수 있습니다.

▲금봉 박행보하백의 ‘미수전’이 열리고 있는 금봉미술관 전경

이번 전시에 선보인 ‘싱그러운 오월’, ‘여름 신선’, ‘시를 건지다’, ‘만사무심’, ‘뱃놀이’ 등 박 화백의 그림에서 산 아래 흐르는 물은 사고(思考)의 영역입니다.

동양철학의 사의적인 회화를 뜻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흐르고 변화하면서도 맑고 고요한 품위를 유지해 온 동적인 공간을 배치하고자 한 생각의 표현입니다.

또한 박 화백의 그림 속 물은 여백입니다. 동양화에서는 흔히 ‘여백도 그림이다’는 신념을 표현한 것입니다.

산으로 꽉 찬 화면의 답답함을 유동성과 투명성을 상징하는 물의 공간을 만들어 여유의 시간을 제공합니다. 그림을 대하는 이에게 잠시 쉬어 가게 하는 사유의 공간을 제공합니다.

'월출산' 등 박 화백이 주로 담아 온 남도의 산천은 전통 산수화가 고수하는 삼원법을 탈피한 현대적인 작품입니다. 멀리 원경을 과감히 생략하고 근경의 산봉우리를 부각시키는 자신만의 독창적 시선을 강조합니다.

굵은 선과 강렬한 색채로 바위산의 수려한 산세를 듬뿍 드러냅니다. 먹의 농담을 반복하지 않고 한 번에 담채로 그렸습니다. 산허리에는 피어오르는 안개를 얹혀 무거운 분위기를 가라앉혀 줍니다.

다음은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한 박 화백의 생각입니다.

“불교에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고 말하듯 그림도 그렇다고 봅니다. 우리 전통의 그림에서도 있는 사실을 그리지만 굳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리는 마음이나 보는 이의 생각이 자유로운 것이 그림이지요. 남도의 산수를 그리는 것은 먹으로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좌)박행보 화백의 ‘미수전’을 관람하고 있는 전시실 (우)제자들의 그림 작업을 지도하고 있는 작업실

◇ 전통 계승과 후학양성 매진 귀감 돼

의재 허백련 화백 문하에 입문한 박 화백은 사군자의 묵향과 문기어린 화경에 심취해 서구적 회화양식의 급속한 확장 속에서도 꿋꿋이 한국 문인화를 지키고 부흥시킨 궤적을 담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박 화백의 예술세계는 수묵에 관한 독자적인 경지를 이룬 예술가로 평가할 만큼 넓고 깊습니다.

특히 서예와 회화, 문인화를 넘나들며 남도수묵화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온 화백의 중심에서 올곧은 작업에 정진해 왔습니다.

고첩을 답습하고 농담의 기교적 표현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는 변화와 실험을 통해 젊은 작가 못지않은 독창적 세계를 고집해 온 것 또한 화단의 이목을 내내 집중시켰습니다.

▲박행보 화백은 후학양성에도 귀감을 보여 ‘취림회’ 등 수많은 중진작가들을 키워냈다. 사진은 제자들과 제주에서 행사를 가졌을 때의 모습

박 화백의 제자로 가장 가까이서 그의 화격과 예술정신을 배워온 중진화가 멱당 한상운 금봉미술관관장은 스승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추사, 소치, 의재의 맥을 계승하면서 한국 남종문인화를 집대성하시고 90년대에는 한국 문인화가의 총집결체인 한국문인화협회를 결성, 문인화를 중흥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셨습니다.

화업 63년! ‘골법산수(骨法山水)’, ‘설죽(雪竹)’, ‘세종의 얼’ 등 지금껏 화단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화풍을 끊임없이 창안, 발표하시어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셨습니다.“

우리 산천의 미감과 정서적 공간감을 화면에 일으켜 온 박 화백은 재료와 먹의 성질을 파악한 독자적인 회화세계로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두터운 화선지에 단조로운 선과 녹청색 채색을 가해 선의 미감을 한껏 뿜어낸 달궈진 필법의 극치를 선보였기 때문입니다.

`묵죽', `자조(慈烏)' 등의 문인화에서도 공간과 여백에 대한 배려는 물론 분위기의 서정성을 더욱 살리는 화면 연출이, 일가를 이룬 화가의 품위를 드러냅니다.

또한 화단에서 제자들의 가장 잘 길러낸 모범적 사례로 꼽힐 만큼 `취림회' 회원들의 활동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꾸준하고 한결같은 흐름으로 수묵의 기운을 펼쳐온 한 예술가로서의 외길 인생을 지켜 온 것이 금봉 박행보 화백이 지금도 존경받는 이유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금봉 박행보 화백
□ 금봉 박행보 화백은 누구?

△1935년 전남 진도군 출생
△25세 의재 허백련 화백, 호를 금봉(金峯) 지어줌
△36세 서예가 소전 손재형 선생 사사
△43세 한학자 만취 위계도 선생께 한시·한학 수학
△국전 특선 6회, 문화공보부장관상, 국무총리상 수상
△대한민국문인화대전·대한민국서예대전 심사위원
△광주비엔날레 이사, 초대 한국문인화협회 이사장
△전남대 미술대학 출강, 호남대 미술과 조교수
△2003년 옥관문화훈장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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