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지휘 거장 야노프스키가 꼽은 오케스트라 ‘4대 기준’
연주하고 싶은 한국 연주자는 ‘당연히 조성진’
지휘자들이 오케스트라의 역량과 수준을 가늠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뭘까. 독일의 거장 마렉 야노프스키(84)가 꼽은 ‘좋은 오케스트라를 평가하는 4대 기준’은 악장, 호른, 오보에, 팀파니였다. 그는 오는 2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케이비에스(KBS) 교향악단을 지휘해 베토벤과 브람스의 교향곡 2번을 각각 연주한다.
18일 저녁 서울 여의도 케이비에스 교향악단 연습실에서 지휘자 야노프스키와 청중이 미리 얼굴을 마주했다. 공연을 앞두고 지휘자와 청중이 ‘미리 만나는 콘서트’ 였다. 전 세계 수많은 명문 오케스트라를 지휘했고, 지금도 독일 드레스덴 필하모니를 이끌며 현역으로 활동 중인 이 노장은 유머를 섞어가며 청중과 소탈하고 자유롭게 대화했다.
청중석에서 ‘지휘자의 능력과 단원들의 역량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하냐’는 물음이 나오자 그는 “매우 어려운 질문”이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악기를 잘 다루는 게 지휘 동작보다 훨씬 어렵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는 “옛날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악장이 지휘자를 대신할 수 있었는데 악단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연주자들의 음악적 의견을 교통정리하고 운전자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해졌다”며 지휘를 운전에 비유했다.
이어 또 다른 청중이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평가하는 기준’을 물었다. 그는 “독일의 어떤 유명한 지휘자가 전해준 얘기”라며 “어느 백만장자가 좋은 오케스트라를 만들어보라고 한다면 우선 훌륭한 악장과 호른, 오보에, 팀파니 연주자를 먼저 선택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모든 단원이 노력해야 하지만 이 네 자리가 특히 중요한 자리”라고 덧붙였다. 제1 바이올린 파트의 수석 연주자가 맡는 악장은 현악 사운드의 중심을 잡아주는 자리다. 호른과 오보에, 팀파니는 각각 금관악기군, 목관악기군, 타악기군의 주축을 이룬다. 이 중에서도 폭넓은 음색에 풍부한 표현력을 지닌 호른은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악기로 꼽힌다. 그만큼 공연에서 실수가 잦은 악기이기도 하다.
같이 연주하고 싶은 한국 연주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머뭇거리지 않고 ‘당연히 조성진이 원픽’이라고 답했다. “처음 그의 연주를 들어보고 단번에 좋은 연주자가 될 거라고 알아봤어요. 앞으로 훌륭한 커리어를 이어가며 크게 성공할 것으로 예상했지요.” 그는 2011년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을 이끌고 내한해 조성진과 협연했다. 당시 조성진은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한 신예 피아니스트였다. 그리고 4년 뒤인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야노프스키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야노프스키는 묘하게 방송교향악단을 자주 맡았다. 지휘자 정명훈이 2000년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니의 음악감독을 맡기 전까지 16년 동안 이 악단을 이끌어 국내에선 ‘정명훈의 전임자’로도 친숙하다. 유럽의 방송교향단은 일정 비율 이상 현대음악을 연주해야 한다. 그 역시 알반 베르크와 버르톡, 스트라빈스키, 쇤베르크 등 20세기 초반 현대 작곡가들의 곡을 자주 연주했다. 하지만 그 이후 현대 작곡가들의 작품은 썩 내켜 하지 않는 듯했다. “80살이 넘고 보니 이제 현대곡을 연주하는 책임에서는 벗어나도 되지 않나 싶군요.” 그는 “이번에 베토벤과 브람스의 곡을 연주해달라고 해서 기뻤다”며 웃었다. 그에게 음악사를 바꾼 가장 위대한 작곡가는 역시 베토벤이었다. “미래로 향하는 문을 열어젖힌 가장 위대한 작곡가지요. 특히 후기 현악사중주와 후기 피아노 소나타, 교향곡들은 후대에 미친 영향이 지대했어요.”
그가 드레스덴 슈타츠 카펠레를 지휘해 녹음한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은 명반으로 통한다. 지난해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독일 만하임 극장 버전 ‘링 사이클’을 무대에 올린 연출가 요나 킴도 이 음반을 ‘필청 음반’으로 꼽았다.
최근 연주 도중 팀파니가 찢어지는 돌발상황에 침착하게 대처해 화제에 오른 팀파니 연주자 이원석이 통역자로 나서 눈길을 끌었다. 이날 상황을 담은 유튜브 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LiacoXRQO-8) 은 341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케이비에스 교향악단이 처음으로 연습실을 외부에 공개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앞서 최은규 음악평론가가 ‘D 장조’ 조성이란 공통점이 있는 베토벤과 브람스의 2번 교향곡을 해설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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