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人워치]주총 '숨은 조력자'가 바라본 K-주주행동주의는
"행동주의펀드 주주 공감대 이끌어낼 소통 부족"
"상장회사도 편법보단 지배구조 개선 의지 중요"
머로우소달리란 이름은 몇년 전만 하더라도 금융투자업계에서 낯선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은 주주총회를 준비하는 기업들이 먼저 찾는 곳이 됐다. 머로우소달리는 뉴욕과 런던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80개국에서 사업을 하는 글로벌 기업 자문사다. 우리나라에는 2019년 사무소를 열고 2021년 3월 법인 지위를 갖췄다.
정성엽 머로우소달리코리아 대표는 15년간 대신증권에서 IB맨으로 근무하다가 2014년 한국ESG연구소(당시 대신경제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ESG연구소에서 ESG본부장으로 일하던 그는 2020년 머로우소달리코리아로 넘어와 법인 전환 셋팅부터 참여해 시장 안착에 기여했다.
벚꽃이 이르게 핀 4월 초 서울 강남구 에셈타워에서 정성엽 대표를 만나 올해 정기주총에 대한 평가와 의결권 자문시장의 과제를 들어봤다.
올해 '핫' 주총 모두 참전한 머로우소달리코리아
머로우소달리코리아는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업무를 하고 있다.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는 주주총회 안건에 대해 주주들에게 의결권을 권고하는 것부터 위임장을 받아오는 업무까지 모두 해당한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본인 혹은 제3자에게 의결권 행사를 대리시키도록 권유하는 행위 △의결권 행사 또는 불행사를 요구하거나 의결권 위임의 철회를 요구하는 행위 △의결권 확보 또는 취소를 목적으로 주주에게 위임장 용지를 보내거나 의견을 제시하는 행위 등을 모두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정성엽 대표는 의결권 대리행사 업무에서 주주분석 노하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탁결제원 주주명부를 보면 A펀드, B펀드로 나열되어 있다. 펀드매니저가 누군지는 나와있지만, 제3자가 의결권 행사를 하기도 한다"며 "특히 해외나 대형기관일수록 펀드 매니저와 의결권 행사 직무 담당자가 별개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이를 잘 알지 못하면 의결권 행사 권유가 비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며 "프로파일링을 통해 정확하게 담당자에게 자료를 전달하고 운용사에서 온 피드백을 회사로 전달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머로우소달리코리아는 올해 핫한 주주총회에 모조리 참전했다. 4대 금융지주를 비롯해 DB하이텍, JB금융지주, KT, KT&G, SK스퀘어, SM엔터테인먼트, 금호석유화학, 대신증권, 헬릭스미스, 화성산업 등 14곳의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업무를 맡았다. KISCO홀딩스와 오스템임플란트에서도 비공식 자문을 맡았다.
올해 주총 시즌 들어 목소리가 더욱 커진 행동주의펀드들이 그의 주요 '카운터파트'였다. 따라서 정 대표가 신경을 많이 썼던 부분도 행동주의펀드에 대한 대응이었다. 그는 "주주 캠페인을 하다보면 가장 어려운 게 첫 번째 해다. 행동주의펀드는 상당 기간동안 기업의 약점을 공격하기 위해 벼르고 나오고 반대로 회사는 이를 준비할 시간이 없는 상황에서 주총이 시작되기 때문"이라며 "어떻게 (행동주의 펀드를) 방어할지를 최우선 과제로 보고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정성엽 대표는 올해 주총 시즌을 준비하면서 가장 고민이 많았던 기업으로 KT&G와 JB금융을 꼽았다. KT&G는 안다자산운용,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로부터 배당, 자사주 소각, 자사주 취득, 사외이사수 확대 등 주주제안을 받았다. JB금융은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과 배당확대와 사외이사 선임을 두고 표 대결을 펼쳤다.
그 중에서도 KT&G를 가장 어려웠던 주총으로 꼽았다. 그는 "행동주의펀드가 오랜기간 동안 기업의 취약점을 파악해 준비했고 사전에 다른 주주들과 교감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며 "회사 행동엔 제약이 있었기에 방어를 하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이어 "JB금융도 얼라인파트너스가 보유한 지분이 15%였기 때문에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며 "외국인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캠페인이 성공적으로 끝나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행동주의펀드 소통 부족…기업도 변화 의지 중요"
머로우소달리코리아가 의결권 자문을 맡은 기업 대부분은 행동주의펀드와의 표 대결에서 승리를 거뒀다. 정 대표는 주총 결과와 관련 "프리뷰를 통해 주주들을 설득하기 위해 회사가 어떤 안건을 상정할지, 행동주의펀드에 맞서 안건 내용을 어떻게 바꿀지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카운터파트'였던 행동주의펀드가 예상과 다르게 표 대결에서 다소 아쉬운 결과를 맞이한 원인을 '주주 커뮤니케이션 부족'으로 꼽았다. 그는 "행동주의펀드가 제기한 이슈는 분명 기업이 아파할만한 지점이었던 건 맞다"면서도 "행동주의펀드가 문제로 지적한 것에 대해 주주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못한 게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반대로 행동주의펀드의 대표적인 주총 캠페인 성공 사례로는 작년 3월 얼라인파트너스의 SM엔터에 대한 주주제안을 꼽았다. 당시 얼라인파트너스는 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의 개인 회사인 라이크기획과의 계약을 지적하며 주주로서 감사 후보를 추천했다.
정 대표는 "5년 전 KB자산운용이 제기한 문제였지만, KB자산운용은 대형사여서 행동주의 운동에 제약이 있었다"며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가 주주 눈높이에 맞춰 아젠다(안건)을 뽑아냄으로써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정 대표는 행동주의펀드의 문제제기와 마주하는 상장회사들도 지배구조 개선 의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금호석유화학은 2년 전 대주주인 박철완 당시 상무와 현 경영진 사이에 경영권 문제가 벌어졌다"며 "당시 박 상무 측의 지적 사항이 회사의 가장 아픈 부분이었다. 회사가 이를 차곡차곡 개선함으로써 다음 주총에서는 박 상무 측이 첫해만큼 강력하게 공격할 만한 원동력을 상실하는 결과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회사가 변화의 의지를 갖고 있다는 점을 주주들에게 전달해야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며 "회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업체가 할 수 있는 범위도 좁아진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주총 운영에 대해 "편법이나 꼼수는 절대 권하지 않는다"며 "단기적인 효과만 있고 이번 주총이 끝난 다음 다음 주총에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고 조언했다.
ISS 등 의안 분석 기관, 영향력 비해 책임 적어
정 대표는 의결권 의안분석 기관의 영향력이 높아지는 만큼 규제도 필요하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ISS나 글래스루이스는 해외 기관투자자들에게, 한국ESG연구소 등은 국내 기관투자자들에게 의안분석 보고서를 작성해 큰 영향을 미친다"며 "그럼에도 보고서에 관한 책임이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의안 분석의 사실관계에 오류가 있더라도 기업이 분석 기관에 보고서 재발행을 요청하는 절차가 쉽지 않고, 분석 기관들이 주주가 아님에도 주주들에게 꽤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정성엽 대표는 "예전엔 의안 분석 보고서를 돈주고 본다는 것 자체도 어색했지만, 지금 시장이 훨씬 커지고 성숙해진 상황에서 규제를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며 "기업에 보고서 의견에 대한 반론 기회를 주거나 피드백을 받아 추가 리뷰를 발간하는 절차, 혹은 의안 분석 기관에 이해상충 요소가 있다면 이를 투자자에게 명확하게 밝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백지현 (jihyun100@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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