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돌보느라 꿈·학업 미뤄둔 청년들…서울시, 고립·우울감 지원
김이현(가명)씨는 어머니의 암투병이 시작되면서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 원하는 학교에 가서 꿈도 생겼지만 취업준비를 할 때쯤 어머니가 아팠다. 이사를 가려고 모아둔 돈은 고스란히 어머니 치료비로 사용했다. 차시우(가명)씨와 김수영(가명)씨도 가족 돌봄 때문에 장기휴학을 택했다. “의료비를 마련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차시우) 아르바이트가 급했고 “돌봄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고 아등바등 돈을 벌어야”(김수영) 했기 때문이다. 휴학하는 동안 또래 동기들이 앞서 나가는 걸 보면서 박탈감도 들었다. 김철민(가명)씨는 회사에 다니면서 가사·돌봄 노동을 병행하는 데 부족한 병원비 등을 벌기 위해 “주말에도 일용직으로 경제활동을 더 하며” 버티고 있다. 서울시가 첫 실태조사를 통해 발굴한 가족돌봄청년의 이야기다.
서울시는 19일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실시한 조사를 통해 가족돌봄청년 900명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서울에 거주하는 14~34살 청년·청소년 총 2988명이 참여했고, 이 가운데 ‘돌봄대상자 여부’, ‘돌봄 여부’ 또는 ‘생계부담 여부’ 항목에 ‘긍정’으로 응답한 인원을 추렸다. ‘서울시 가족돌봄청년 지원에 관한 조례’는 ‘장애, 정신 및 신체의 질병 등의 문제를 가진 가족을 돌보고 있는 14~34살의 사람’을 가족돌봄청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응답자 900명 중에 여성은 66%(598명), 남성은 34%(302명)이다. 개인 소득은 ‘100만원 미만’이라고 답한 인원이 응답자의 45%(409명)으로 가장 많았다. 돌봄대상자는 (외)할머니가 28.2%(229명)으로 가장 많았고, 아버지(26.1%, 212명), 어머니(25.5%, 207명)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중고생과 학교밖청소년은 조부모를 돌보는 비중이, 대학생과 일반 성인은 부모를 돌보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특히 이들은 돌봄대상자와 성별이 다른 경우 어려움을 느꼈다. 김지원(가명)씨는 “아버지가 남성이고 우리는 여성이다 보니 샤워를 해드릴 때 불편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김수민(가명)씨도 “아버지가 남성이라 저보다 몸이 큰데 정신질환이 있다 보니 폭력성이 있거나 흥분상태일 때 치료를 거부하는 상황이 오면 제압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실태조사에선 가족돌봄청년이 겪는 어려움을 22개 유형으로 나눠 조사했다. 그 결과 ‘경제적 어려움’(3.22점)과 ‘주거비 부담’(3.22점)을 가장 크게 느끼고 있었다. (1~5점 척도로 1점은 ‘전혀 어렵지 않음’이고 5점은 ‘매우 어려움’이다.) 정신건강 문제를 호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박은민(가명)씨는 “할머니의 우울증이 (내게도) 전가가 된 느낌이다. 돌봄을 시작한 뒤 정신의학과에 다니기 시작했다”며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그 죄책감도 다 끌어안을 것 같은 부담감이 있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생계와 돌봄 지원 요구가 가장 높았고 △금융·사회·여가 △ 상담 △학습·취업 면에서도 외부지원을 받고 싶다고 밝혔지만 외부지원에 대한 인지도는 떨어졌다. 응답자의 76.4%가 외부지원을 ‘전혀 모름’ 또는 ‘잘 모름’이라고 답했다. 표적집단면접(FGI) 참가자 다수가 ‘가족돌봄청년’이란 개념이나 ‘본인이 가족돌봄청년에 해당하는지’ 등을 이번 조사를 통해 알게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서울시는 이번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가족돌봄청년을 복지 대상으로 포섭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나갈 예정이다. 학교·병원·동주민센터 등 유관기관과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가족돌봄청년 지원 전담기구’(가칭)를 운영해 사례관리를 하며 관련 복지정책을 연계한다. 고립감과 우울감 해소를 위해 멘토링과 자조모임 등도 지원한다.
서울시 복지정책실 관계자는 “소득 단위별로 임대주택을 지원하는 등 청년 또는 취약계층을 지원해 온 기존 정책과 연계할 수 있는 부분을 검토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지원 범위를 넓히는 방법 등을 찾아볼 것”이라고 밝혔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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