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걸그룹’ 여성농악단…30~90대 어우러진 부활

2023. 4. 19.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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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2일 서울남산국악단 ‘무풍’
대한민국 ‘최초의 걸그룹’ 여성농악단
약 60년 자취 감춘 원로 예인부터
평균 나이 30대의 연희단팔산대까지
우리나라 최초 여성농악단인 남원여성농악단의 첫 상쇠 장홍도(왼쪽에서 세 번째)는 알츠하이머로 사라지는 기억을 붙잡으면서도 60여년간 잊고 있던 농악의 근육을 되살려 다시 무대에 선다. [연희단 팔산대, 남원문화원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아무 것도 몰라. 다 잊어버렸어.”

우리나라 최초 여성농악단의 첫 상쇠 장홍도(93·본명 장봉녀). 2년 전이었다. 망백의 여성상쇠는 뼛속 깊이 새겨진 ‘잊혀진 소리’들을 다시 꺼냈다. 60여년간 봉인된 기억이 해제되자, 무뎌진 감각은 빠르게 회복됐다. 여전히 강건한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고, 그 소리에 맞춰 손장단을 쳤다. 그 다음엔 북채를 잡았고, 마침내 꽹과리를 들었다. 원로 예인의 기량은 ‘공백’을 허용하지 않았다.

가무악을 아우르는 여성농악단은 ‘대한민국 최초’의 걸그룹이었다. 때는 1958년. 한국전쟁이 끝나고 5년 뒤였다. 남원국악원은 ‘남성 중심’의 농악단 세계에 꽤나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하나 던졌다. 젊은 나이의 여성이 중심이 되는 농악패를 결성하기로 한 것이다. 2년 뒤 남원여성농악단이 등장하자, 세상은 발칵 뒤집혔다. 이들은 전국농악대회를 비롯한 각종 경연대회를 석권했다. 그 뒤로 지역명만 바꾼 여성농악단이 줄줄이 등장, 1960~70대 팔도강산을 사로잡았다. 여성상쇠 장홍도(남원여성농악단)는 전국 최고 인기 걸그룹의 리더였다.

잊혀진 여성농악단의 주역들을 찾아낸 김양오 작가는 “당시 남원여성농악단이 생긴 이후 ‘춘향여성농악단’, ‘전북여성농악단’, ‘호남여성농악단’ 등 많은 단체들이 만들어져 유랑 공연을 했다”며 “서울공연을 가면 입장료를 가마니로 긁어모았고, 밤새 인두로 펴서 종이로 묶어둘 만큼 흥행했다. 단원들을 보쌈을 당할까봐 혼자 거리를 걷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60년간 자취를 감췄던 여성농악단의 유랑 무대 ‘무풍’ [연희단 팔산대, 남원문화원 제공]

▶ 자취 감춘 여성농악단의 부활=60년간 자취를 감췄던 여성농악단이 다시 유랑 무대를 시작한다. ‘무풍(舞風)’(4월 22일·서울남산국악당)을 통해서다. 2014년 초연한 ‘무풍’은 사라진 여성농악단을 계승한 연희단 팔산대의 대표 공연이다.

이 공연을 통해 최초의 여성농악단을 이끈 상쇠 장홍도와 노영숙(소고), 박복례(소고), 배분순(상장고) 등 남원 출신의 원로 여성예인들과 여성농악단의 마지막 소고잡이인 김운태(호남여성농악단), 이들을 계승하고자 태어난 연희단 팔산대가 만난다. ‘채상소고춤’의 명인 김운태는 호남여성농악단 단장 김칠선의 아들이다. 성별을 구분하기 어려운 유년시절, 모친을 따라 농악단에서 활동한 그는 “어려서부터 하늘을 제비처럼 날아다녔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다 1995년 대학로에 서울두레극장을 세우고 아주머니가 된 옛 단원들을 모아 연습을 시키며 여성농악의 명맥을 이어갔다.

평균 나이 30대의 연희단 팔산대가 옛 여성농악을 되살리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을 맡은 진옥섭 연출가는 “농악은 사실 3D 업종 중 하나라고 할 만큼 어려운 작업으로 무용부터 판소리 기악까지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연희단 팔산대엔 판소리, 무용, 기악을 전공한 젊은 여성들이 모여 2011년 예능훈련을 시작했다. 김운태와 옛 호남여성농악단 단원으로부터 ‘농악의 비기(秘器)’를 전수받았다.

여성농악단이 K-팝 걸그룹 못잖은 인기를 누리던 시절엔 매회 한 시간씩, 하루에 10회 공연을 이어갔다. 땅 위에서 팽그르르 돌고 뛰고, 심지어 날아다녔다. 당대의 여성농악을 고스란히 살리기 위해 가장 바탕이 돼야 하는 것은 체력이었다. 진 연출가는 “여성농악의 역사를 되살리려면 어마어마한 체력이 필요하다. 옛 여성농악단이 장구를 ‘떵!’ 하고 치면, 공이 울리자마자 링으로 뛰어나가는 인파이터 복서의 헝그리 정신이 살아났다”며 “연희단 팔산대는 체력을 쌓기 위해 일반 레슨과는 다른 특공부대를 만드는 것과 같은 훈련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공차기를 비롯해 운동선수들에게 요구되는 수준의 체력 훈련으로 농악단이 갖춰야 할 덕목들을 채워갔다. 진 연출가는 “인이 박혀 춤이 저절로 나올 수 있는 훈련 과정을 거쳐 농악의 근육을 다졌다”며 “정말 현란하고 아름다운 것은 애교가 아닌 힘에서 나온다는 것을 여성농악을 통해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라진 여성농악단을 계승한 연희단 팔산대의 ‘무풍(舞風)’을 통해 최고 90대의 원로 예인과 평균 나이 30대의 젊은 여성농악단이 한 무대를 꾸민다. [연희단 팔산대, 남원문화원 제공]

▶ 30대~90대 아우른 무대…기록으로 남기는 역사=올해 공연이 더 특별한 것은 세대와 역사를 관통하는 무대라는 점에 있다. 김양오 작가는 이 공연에 대해 “30대부터 90대까지 신구 세대를 아우른 무대”라고 했다.

‘무풍’은 여성농악단의 연희를 복원, 열두 거리(‘문굿’, ‘만고강산’, ‘풍물굿’, ‘소고춤’, ‘남도민요’, ‘오채질굿’, ‘오방진’, ‘장한몽’, ‘학춤’, ‘민살풀이춤’, ‘팔산장구춤’, ‘채상소고춤’)를 담아낸다. 이 공연의 명장면은 ‘농부가’다.

김 작가는 ”농악의 백미는 ‘농부가’다. 원로 예인들과 젊은 농악단이 소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무대를 통해 묵은지 맛을 내는 깊은 소리와 젊은 소리의 어우러짐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공연은 2년간 이어지는 프로젝트다. 서울을 비롯해 남원 진주 여수 통영 대구 정선으로 향해 각 지역의 명인들과 함께 무대를 꾸민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았다. 진 연출가는 “과거엔 여성농악단들이 각자 알아서 순회공연을 했는데, 지금은 극장과 연계해 새로운 유랑을 할 수 있는 진일보한 공연이 됐다”며 “내년까지 서울을 비롯한 여러 지역을 돌며 해당 지역의 예인들과 어우러진 여성농악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3D 카메라로 생생하게 담아 기록한다. 농악만큼 3D와 잘 어우러지는 역동적인 예술은 없다는 것이 창작진의 판단이다. 김 작가는 “60년 만에 원로 예인들이 서는 이 공연은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찰나의 부활이다. 사라진 여성농악의 원류를 기록으로 남긴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진 연출가는 “농악의 맨 앞에는 꽹과리가 서고, 제일 끝에는 소고가 선다. ‘무풍’은 여성농악인 첫 상쇠와 마지막 소고잡이가 어우러져 역사를 시작하고 끝맺는 무대가 되리라 본다”며 “이들의 역사를 3D 공연 영상물뿐만 아니라 3D 다큐 영화로도 만들어 기록하고 기억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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