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응급의료체계 미비 사망사고는 25년째 반복”
“뇌졸중은 적기에 치료를 받으면 환자가 건강한 삶을 회복할 수 있는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생명 유지를 위한 적기의 치료마저 받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응급의료기본계획이 수립되고 25년이 지났지만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환자가 아직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을 일으켰지만 수술할 의사가 없어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진 후 결국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국내 응급의료체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올해 초 보건복지부는 응급의료체계 개선을 위해 모든 의료취약지에 전문인력을 배치하겠다는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의료계는 이같은 개선안과 관련해 이송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구체적인 체계를 마련하고 현실적인 인력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뇌졸중학회는 19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개최된 ‘응급의료 기본계획 및 필수의료 지원 대책 현황과 발전방안 모색’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응급의료체계가 필수 중증 환자의 이송, 전원과 관련한 문제가 개선되지 않은 채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응급의료체계를 지속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하며 뇌졸중 전문의 기반 이송체계 구축과 진료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주제발표를 담당한 김태정 대한뇌졸중학회 홍보이사(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국내 응급의료체계가 전문진료과와 연계되지 않아 치료받지 못하는 사태가 반복되면서 119에서 치료받을 병원을 차지 못해 사망하는 환자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119에서 치료를 하는 전문 진료과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체계와 치료 전체 과정을 관리하는 관제 센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성헌 대한뇌졸중학회 병원전단계위원장(강원대병원 신경과 교수)은 “권역응급의료센터를 포함해 여러 응급의료센터가 병실과 의료진 부족 문제로 24시간 치료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 힘든 상황에서 경증 환자로 넘치는 응급의료센터의 응급실에서 중증 환자의 진료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정부가 내놓는 대책은 근본적인 해결책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응급의료이송체계 개선을 위해서는 119 구급대와 전문 치료기관의 연계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치료 전체 과정을 관리하고 환자의 최종 이송을 책임질 수 있는 관제센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배희준 대한뇌졸중학회 이사장은 “한정된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경증 환자와 중증 환자 진료를 분리해서 중증응급의료센터는 필수 중증 환자의 최종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체계가 정립돼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응급신경학 전문의 기반의 1차 진단 및 원스톱(one-stop) 진단 치료가 가능해야 하며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가 환자의 진단, 이송, 치료관리를 관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병원에서 24시간 치료가 어렵기 때문에 현재 84개뿐인 뇌졸중센터와 권역센터를 확충하고 최종진료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전체 뇌졸중 안전망을 관리하고 유지할 수 있는 관제센터인 중앙심뇌혈관센터 지정과 운영도 필수”라고 강조했다.
차재관 대한뇌졸중학회 질향상위원장(동아대병원 신경과 교수)은 “가까운 미래에 전문인력 부족으로 현재의 뇌졸중 진료 체계를 운영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올해 신경과전문의 시험합격자 83명 중 5명만 뇌졸중 전임의로 지원했다”며 “현재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 14개 중 1개 센터에만 전임의가 근무하고 있고, 전공의 없이 교수가 당직을 서는 대학병원이나 수련병원이 늘고 있다”고 인력부족 상황을 짚었다. 그는 “지금 추세라면 5~10년 뒤 연간 10만 명의 뇌졸중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뇌졸중 전문의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경복 대한뇌졸중학회 정책이사(순천향대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의료 인력 부족의 배경으로 뇌졸중 집중치료실이 낮은 수가로 운영되면서 뇌졸중 센터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제도적인 문제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종합병원 뇌졸중 집중치료실 입원료는 13만3320원으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실료 6인실 17만1360원 보다 낮다”며 “심지어 응급의료센터에는 전문의 진찰료, 관찰료 등이 수가로 산정되는데 신경과 전문의가 뇌졸중 의심 환자를 진료하면 진찰료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4시간 뇌졸중집중치료실에서 뇌졸중 환자를 진료해도 근무 수가가 2만7730원 수준밖에 되지 않아 병원에서는 사실상 뇌졸중 센터를 무리하면서까지 투자하고 운영해야 하는 이유가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처우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는 “뇌졸중에 대한 수가 개선 및 신설이 필요하고 뇌졸중 집중치료실 수가가 간호간병통합 병실료보다 최소 1.5배 이상 상향 조정해 필수 중증 분야가 젊은 의사들이 지원하고 싶은 분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희준 이사장은 ”현재 시술이나 수술을 하지 않는 뇌졸중의 경우 일반질병군으로 돼 있어 전문 진료질병군 환자를 30% 이상 유지해야 하는 상급종합병원에선 뇌졸중 환자 진료를 거부하는 사태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성인 장애 주요 원인인 뇌졸중은 전문진료질병군으로 분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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