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개기월식 달빛에 담긴 화산 폭발의 흔적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2023. 4. 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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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새벽 러시아 캄차카반도의 시벨루치 화산이 폭발하며 엄청난 분출물이 나왔다. 인근 마을은 낮에도 밤처럼 어두웠고 두께 10㎝가 넘는 화산재에 덮였다. 러시아 과학자들은 이번 폭발로 기온이 0.1도 정도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연합뉴스 제공

지난 11일 새벽 러시아 캄차카반도의 시벨루치 화산이 폭발했다. TV 뉴스에서 이날 오전 9시 화산 인근 마을의 모습이 나왔는데 깜깜한 밤이었다. 분출한 화산재가 햇빛을 완전히 가린 것이다.

시간이 지나 가라앉은 화산재의 두께가 10㎝가 넘었다고 하니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 이날 분출로 화산재가 고도 20㎞까지 올라갔고 사방 500㎞까지 퍼져나갔다고 한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캄차카반도에서 남서쪽으로 3000㎞ 정도 떨어져 있다.

그런데 뉴스에서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러시아과학아카데미 화산·지진연구소의 기후학자 알렉세이 가가린은 이번 화산 폭발이 지구 온도를 0.1도 정도 낮출 것이라고 주장했다. 화산의 분출물이 햇빛을 가려 냉각 효과를 낸다는 말인데, 과연 그럴까 고개를 갸웃했다. 만일 그렇다면 올여름 무더위에 조금이라도 덜 시달릴 테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봐야 하나 싶었다.

● 빈발한 화산 폭발이 소빙하기로 이어져 

공교롭게도 지난 6일 학술지 ‘네이처’에는 1100년부터 1300년까지 집중된 화산 폭발의 영향을 월식 기록을 통해 분석한 논문이 실렸다. 이 시기의 화산 폭발은 1300년에서 1850년까지 지속된 소빙하기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많은 화산 폭발이 이번 시벨루치의 경우처럼 당시에는 인적이 드문 곳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직접적인 기록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화산 폭발을 추정할 수 있는 증거가 있는데, 그린란드나 남극의 빙상코어(ice core)로, 빙상에서 수직 방향으로 원통을 박아 꺼낸 얼음 기둥에서 얻는 황의 농도 데이터다.

초대형 화산 폭발이 일어났을 경우 분출된 이산화황이 극지방까지 이르러 얼음에 포함된다. 얼음 기둥이 가래떡이라면 썬 조각들 가운데 황 농도가 높은 것에서 화산 폭발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셈이다.

빙상코어의 황 농도로 추정한 지난 2500년 사이 초대형 화산 폭발 16건 가운데 7건이 1100년에서 1300년 사이 일어났다. 그 결과 기온이 크게 낮아지면서 지구의 기후체계까지 영향을 미쳐 1300년부터 1850년까지 소빙하기가 이어졌다. 브라반트공국(현 네덜란드)의 화가 피터르 브뤼헐의 1565년 작품 ‘눈 속의 사냥꾼’에는 소빙하기가 절정이던 유럽의 풍경이 잘 그려져 있다. 위키피디아 제공

나이테도 정보를 제공한다. 대형 화산 폭발로 광량이 줄고 평년보다 기온이 내려가면 나무의 성장이 더뎌 나이테 폭이 줄어든다. 따라서 빙상코어 황 농도 정보와 나이테 정보를 짜 맞추면 화산 폭발 시기를 꽤 정확히 추측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1100년부터 1300년까지, 분출된 황의 추정량이 1000만 톤이 넘는 큰 화산 폭발이 7건 있었다는 걸 알아냈다. 이 규모의 폭발은 지난 2500년 동안 16건에 불과하다.

1100~1300년 화산 폭발 7건 가운데 1257년 인도네시아 롬복섬의 사말라스 화산 폭발이 유일하게 출처를 알 수 있고 가장 강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남위 8도인 저위도에서 일어난 화산 폭발이 북극권인 그린란드까지 뚜렷한 흔적을 남겼으니 이번 시벨루치 화산 폭발은 비교가 되지 않는 엄청난 규모다.
 

제네바대가 주축이 된 스위스 등 국제 공동 연구자들은 1100년부터 1300년 사이의 개기월식 기록을 분석해 당시 화산 폭발 시기와 기후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정확히 알아보기로 했다.

태양과 지구와 달이 같은 선상에 놓이면서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지는 개기월식은 그럼에도 눈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불그스름한 보름달처럼 보인다. 지구의 대기를 통과하며 긴 파장의 비율이 높아진 햇빛이 굴절돼 달 표면에 이르러 반사된 결과다.

그런데 화산 폭발로 대기가 흐려지면 통과하는 햇빛이 줄어들고 굴절돼 달 표면에 이르는 빛도 줄어 달이 어둡게 보인다. 따라서 개기월식의 달을 어둡다고 기록했다면 얼마 전에 대형 화산 폭발이 있었다는 증거가 되는 셈이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나오는 분출물에는 이산화황(SO2)이 포함돼 있다. 이산화황은 공기 중에서 반응해 황산(H2SO4)으로 바뀌어 에어로졸을 형성한다. 대류층 에어로졸(tropospheric aerosols)의 수명은 1~3주에 불과하지만 성층권 에어로졸(stratospheric aerosols)은 1~3년이나 돼 지구 기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즉 햇빛을 막는 냉각 효과와 지표 열을 막는 온실 효과를 내는데, 전체적으로는 냉각 효과 쪽이다. 지구물리학 리뷰스 제공

그런데 화산재는 며칠 못가 가라앉기 마련이고 개기월식이 자주 있는 사건도 아닌데 어떻게 달빛에 영향을 주는 걸까. 화산 폭발이 대기권에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은 화산재가 아니라 함께 분출된 가스의 성분인 이산화황이 성층권에서 반응해 만들어지는 황산 에어로졸 때문이다. 에어로졸은 대기를 떠다니는 미세한 액체 방울이나 고체 입자를 가리킨다. 

지표면에서 약 12㎞까지의 영역인 대류권에서도 황산 에어로졸이 생기지만 수명이 1~3주로 짧다. 반면 12~50㎞인 성층권까지 올라간 가스에서 만들어진 황산 에어로졸은 1~3년을 머물며 기후에 영향을 준다.

지구로 향해오는 햇빛이 에어로졸에 부딪혀 흩어지며 지표면에 도달하는 광량이 줄어 냉각 효과를 낸다. 반면 지표에서 발생한 열이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해 온실 효과를 낸다. 둘이 합친 순효과는 냉각 쪽이다.

● 동아시아 기록은 별 도움 안 돼

개기일식의 달빛을 결정하는 것도 성층권의 황산 에어로졸 농도다. 연구자들은 1100~1300년 일어난 개기일식 기록을 분석했다. 이 시기 유럽에서는 64건, 중동에서는 59건, 동아시아에서는 64건의 개기일식이 있었고 이 가운데 유럽에서는 51건, 중동에서는 7건, 동아시아에서는 61건을 기록했다. 

동아시아 천문학자들이 가장 성실해 보이지만 뜻밖에도 이번 연구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개기일식이 있었다는 사실만 기록했을 뿐 달빛에 대한 묘사는 없기 때문이다. 반면 유럽에서는 36건에 대해서 달빛의 색과 밝기까지 기록했다.

이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성서의 요한묵시록을 보면 세상의 종말 광경을 “큰 지진이 일어나고, 해는 털로 짠 자루옷처럼 검게 되고 달은 온통 피처럼 되었습니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대지진과 개기일식, 개기월식을 불길한 징조로 보고 있는 것이다. 반면 어두컴컴한 달은 신의 계시로 여겨지기도 한다.

1921년 프랑스 천문학자 루이스 댄존은 개기월식 때 달의 밝기를 0에서 4까지 다섯 등급으로 나눴는데 이를 댄존 등급(Danjon Scale)이라고 부른다. 0등급은 가장 어두워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태이고 4등급은 주황색으로 보일 정도로 밝은 상태다. 연구자들은 36건의 기록을 분석해 댄존 등급을 매겼다. 그 결과 6건을 0등급으로 분류했다.

이를 빙상코어 데이터에서 추측한 7건의 대형 화산 폭발과 비교한 결과 5건에 해당했다. 6건이 아니라 5건인 건 1258년 5월 18일과 같은 해 11월 12일 일어난 개기일식은 유일하게 실체가 밝혀진 1257년 사말라스 화산 폭발의 영향을 받아 어두워진 것이기 때문이다.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성층권 에어로졸로 대기를 통과한 빛이 줄어 개기월식이 일어날 때 달이 어둡게 보인다. 왼쪽은 인도네시아 아낙크라카타우 화산 폭발이 일어나고 한 달 뒤인 2019년 1월 20일 개기월식 때 달의 모습이고 오른쪽은 화산 에어로졸이 거의 없던 2001년 개기월식 때 달의 모습이다. Giuseppe Donatiello 제공

연구자들은 최근 수십 년 사이 일어났던 대형 화산 폭발이 개기월식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1100~1300년 5건의 초대형 화산 폭발과 6건의 개기월식을 분석했고 그 결과 화산 폭발이 일어나고 3~20개월 기간에 성층권의 에어로졸 농도가 높아 개기일식이 있을 때 0등급이 관측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개기월식 날짜를 기준으로 5건의 화산 폭발이 일어난 시기를 좀 더 정확히 추정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한편 빙상코어의 황 농도만 보면 초대형 화산 폭발이었을 것임에도 두 건은 댄존 등급이 각각 3과 4로 나왔다. 아마도 분출 각도가 기울었거나 순간 세기가 약해 이산화황 대부분이 대류권에 머문 채 확산한 결과일 것이다. 이 경우 기후 변화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동아시아에서는 개기월식 61건에 대해 199회나 기록했음에도(여러 곳에서 관측했으므로), 이 가운데 하나만이 댄존 등급을 알 수 있는 서술을 남기고 있다. 1229년 12월 2일 일어난 개기월식으로 6건의 0등급 가운데 하나다. 동아시아에서는 대부분 국가의 관리가 천문 관측 기록을 남겼지만 이 경우 특이하게도 일본의 시인 후지와라노 사다이에가 일기인 ‘메이게쓰기(明月記)’에서 묘사한 내용이다.

일본 시인 후지와라노 사다이에는 일기인 ‘메이게쓰기(明月記)’에서 1229년 12월 2일 있었던 개기월식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여기에는 1100~1300년 동아시아에서 남긴 개기일식 61건에 대한 기록 199편 가운데 유일하게 달의 밝기가 묘사돼 있어 화산 폭발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明月記 제공

“최근 개기월식과 관련해, 비록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지만, 옛사람들이 이번처럼 제대로 식별할 수 없는 달을 본 적은 없었다. 달은 월식 동안 마치 사라진 것 같았고 지속 시간이 꽤 길고 변화는 극단적이었다. 이것은 진정 두려운 사건이었다. 정말 내 70 평생 이런 일은 듣거나 본 적이 없다. 관청의 천문학자들도 두려워하며 말했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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