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가스 비축량 크게 늘며 ‘탈 러시아’ 청신호

[러, 우크라 침공]4월 기준 비축률, 12년 만에 최고치
“일부 국가, 러시아 의존 완전 탈피 가능성”

독일이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액화천연가스 수입 시설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독일 북부의 슈타데 항구. 슈타데/AP 연합뉴스

유럽연합(EU)의 4월 가스 비축량이 2011년 이후 최고치에 달하면서 일부 회원국은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단계적으로 완전 중단할 수 있을 가능성이 보이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18일(현지시각) 유럽의 가스 업계 단체 ‘가스 인프라스트럭처 유럽’ 자료를 인용해 4월초 유럽연합의 가스 비축량이 비축 시설 용량의 55.7%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5년의 4월 평균 비축률보다 20%포인트 이상 높은 것이고 2011년 이후 최고치다. 유럽연합의 가스 비축량은 지난 2주 사이에도 비축 시설 용량의 56.5%까지 다시 늘었다고 신문은 전했다.

유럽연합의 가스 비축 규모가 크게 증가한 것은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수입국을 다변화하고 재생에너지 등 대체 에너지원 확보에 적극 나선 덕분이다. 지난 겨울 기온이 예상보다 높아 가스 사용량이 크게 늘지 않은 점도 유럽의 가스 비축을 도왔다.

유럽의 가스 수입 현황을 추적하고 있는 벨기에 싱크탱크 브뤼헐의 자료를 보면,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은 지난 10일 기준으로 가스 비축 용량의 64%를 비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페인과 오스트리아의 비축률도 각각 84%와 67%에 달했다. 이탈리아와 네덜란드의 비축률을 59%였다. 반면, 프랑스(28%), 벨기에(39%), 루마니아(42%), 헝가리(43%) 등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가스 비축량이 늘면서 일부 국가의 경우 러시아산 가스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유럽연합 에너지 담당 집행위원 카드리 심손은 <파이낸셜 타임스> 인터뷰에서 “가스 비축 시설들이 절반 이상의 가스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겨울철 난방 시기를 편안하게 넘겼다는 뜻”이라며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을 대폭 줄일 여지가 생겼다고 강조했다. 심손 집행위원은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고 가스 도입 국가를 다변화함으로써, 몇몇 회원국은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 의존에서 단계적으로 완전히 벗어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러시아는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스를 무기화하면서 가스관을 통한 유럽 수출을 계속 줄였다. 유럽은 이에 맞서 해상을 통한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 수입을 크게 늘렸다. 유럽연합의 지난해 러시아 액화천연가스 수입량은 2210만㎥로, 한해 전보다 39% 증가했다. 가스관을 통한 러시아 가스 수입은 현재 흑해와 터키를 거치는 가스관을 통해서만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발트해와 폴란드를 거치는 가스관은 폭파 등으로 가동이 중단됐고, 우크라이나를 거치는 가스관을 통한 수입 물량도 미미한 수준이다.

유럽 각국이 앞다퉈 가스를 비축하면서, 올해 11월까지 가스 비축률을 90%까지 끌어올린다는 유럽연합의 목표가 오는 7~8월에 조기 달성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편, 러시아가 서방의 에너지 제재를 피해 인도.중국에 대한 석유 수출을 늘리면서 서방이 정한 ‘가격 상한선’ 이상의 값으로 수출을 지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로이터> 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서방은 대러 제재 조처의 하나로 지난해 말 배럴당 60달러 이상으로 수출되는 러시아 석유에 대해 운송 등 관련 서비스를 금지시킨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인도.중국으로 수출되는 러시아 우랄산 원유 가격은 배럴당 60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우랄산 원유는 국제 원유 가격의 기준인 브랜트유보다 배럴당 9~13달러 싼 가격에 거래 중이다. 인도는 해상을 통한 러시아 석유 수출량의 70%, 중국은 20%를 수입하고 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