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우 연기에 나도 속았다” 캡틴 손아섭이 말하는 NC 돌풍의 비결
5회초 2사 주자 1, 3루. 타석에는 4번 타자 손아섭. 대개는 홈런 한 방을 노리겠지만 NC의 선택은 달랐다. 1루 주자 박건우가 의도적으로 크게 리드를 가져갔고, LG 투수 함덕주가 견제구를 던지자 3루 주자 도태훈이 곧장 홈으로 뛰었다. 상대 허를 찌르는 작전이었다.
도태훈이 득점에 성공했지만, 박건우가 태그 아웃 되면서 손아섭은 타석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중심타자의 한 방 대신 작전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손아섭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경기에 더 집중했다. 다음회 다시 맞은 타석에서 2루타를 때렸고, 이후 두 타석에서 1안타 1볼넷으로 100% 출루를 했다.
이날 손아섭의 최종 기록은 4타수 3안타 1볼넷 1타점. 지난 8일 키움전 이후 10일만의 멀티히트, 개막 18일 만에 나온 첫 3안타 경기였다. 손아섭의 활약으로 18일 NC는 LG를 꺾고 가장 먼저 10승 고지를 밟으며 리그 1위로 부상했다.
경기 후 손아섭은 5회 상황에 대해 “주자들끼리만 사인이 나온 것 같다. 저는 몰랐다”고 말했다. 당시 투수 견제에 1루 주자 박건우가 중심을 잃고 넘어진 것에 대해서는 “건우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저까지 속았다”고 웃었다.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았냐는 질문에는 “그런 건 전혀 없다. 제가 성적이 좋은 것도 아니고, 팀이 이기는게 중요하다. 저 역시 아직 타율은 좋지 않지만 어떻게든 팀이 이기는데 도움이 되려고 한다”고 말했다.
손아섭은 KBO 리그 대표적인 슬로 스타터다. 지난해 개막 21타석 무안타로 크게 부진했고, 올시즌도 출발이 썩 좋지 못하다. 56타수 6안타로 타율 0.232에 머물고 있다.
손아섭은 “(프로 통산) 안타를 2300개 가까이(2242안타) 쳤는데, 안타 하나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끼고 있다. 안타 하나가 감사하다”면서 “잘 안풀리다 보니 타석에서도 생각이 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부담감은 고참들이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 부담도 이겨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국인타자 제이슨 마틴이 옆구리 근 긴장으로 이탈한 이후 손아섭은 4번 타자로 계속 나서고 있다. 생소한 타순이다. 최근 5년간 손아섭이 4번타자로 나선건 2021년 5타석이 전부다. 2015년 14타석을 소화했고, 이후 2021 시즌 전까지는 단 한차례도 4번타자 역할을 맡지 않았다. 타격감도 좋지 않은데, 타순의 부담이 없을 수가 없다.
손아섭은 “누군가는 4번이든, 5번이든 중심타선에 들어가야 한다”면서 “(김)주원이나 (오)영수나 저보다 저 잘치고 있지만, 그래도 어린 후배들이 좀 더 편한 상황에서 자기 플레이를 하는게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부담감은 저랑 (박)석민이 형이 다 짊어지면 된다. 욕도 저랑 (박)석민이형이 고참으로써 다 먹어야 한다”고 다시 웃었다. 후배들은 그저 경기장 안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자기 플레이를 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당초 NC는 하위권 전력으로 평가받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주축 선수들의 부상 이탈도 줄을 잇고 있다. 강인권 감독이 농담 섞어 “우리팀 라인업보다 한 센 팀이 없다”고 할 정도다. 그런데도 NC는 우승후보 강팀들과도 맞부딪히며 선전하고 있다. 손아섭은 “야구는 특히 슈퍼스타 1~2명으로 성적이 좌우되는 스포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후배들, 고참들 모두 각자 위치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부분들을 하고 있는게 성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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