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의 시론]거악 척결은 검찰의 숙명이다

2023. 4. 1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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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남 사회부장
盧 전 대통령 검찰 수사 중단돼
비리단죄 실패 진영대립 심화
특권 없는 세상 구호도 물거품
청탁·특혜 매개로 검은돈 횡행
범죄자 누구든 수사 검찰 소임
수사 독립·중립 사수해야 성공

지난 2009년 4월 30일 오후 1시 19분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대형 버스를 타고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에 도착했다. 노 전 대통령에게 기자가 “왜 국민께 면목 없다고 하셨습니까?”라고 질문했다. “면목 없는 일이지요. 자!” 침통한 표정에 백발의 머리칼이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노 전 대통령은 고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아들 건호 씨 사업 자금 명목 등으로 640만 달러, 회갑 기념 스위스 명품 피아제 시계 세트 등을 받은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다. 그는 부인 권양숙 여사가 자신 몰래 박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으며, 이를 퇴임 후 알게 됐다며 뇌물 수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최근 발간된 이인규 전 대검 중앙수사부장의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누가 노무현을 죽였나’에서 노 전 대통령은 조사 전 중수부장 사무실에서 대뜸 “이 부장! 시계는 뺍시다. 쪽팔리잖아”라고 말한 사실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이 전 부장은 책에서 자신이 중수부장이 된 이유에 대해 “나는 강성 원칙주의자다. 거악(巨惡)에 대해 타협하는 법이 없었다. 임채진 검찰총장도 이명박 정권도 박연차 회장의 불법 로비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위해 임명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박 전 회장의 정관계 로비로 돈을 받은 정치인과 공무원 등 모두 21명이 기소돼 8명은 실형, 11명은 집행유예나 벌금형이 선고됐다. 이 전 부장은 노 전 대통령 뇌물 혐의도 박 전 회장의 구체적이고 일관된 진술 외에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자신했다. 깨끗한 정치와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을 외쳤던 노 전 대통령이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면 뿌리 깊은 우리 사회 부정부패 실상을 인식하고 반부패 역량을 제고할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의 극단적 선택으로 부정과 비리의 고리를 끊어내기는커녕 진영 논리로 검찰 수사를 왜곡하고 자신의 입맛대로 해석하는 정치 극단화 현상이 깊어졌다. 이 전 부장은 당시 노 전 대통령 변호인이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의 주검 위에 거짓의 제단을 쌓고 슬픔과 원망과 죄책감을 부추기는 의식을 통해 검찰을 악마화하고 지지자들을 선동했다”고 비판했다. ‘국정 농단’ 사건으로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뇌물 수수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이명박 전 대통령도 다르지 않았다. 자신들의 부정부패 행위를 진지하게 반성하고 사과하기보다는 정치 보복 수사의 희생양이라고 항변했다. 성남시장 시절 대장동 개발 민간업자와 유착된 ‘토착 비리’ 의혹으로 기소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역시 당을 방패막이 삼아 검찰 수사를 반대 진영에 대한 보복으로 규정하고 검찰과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최근엔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 사건이 터지면서 깨끗한 정치에 대한 국민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정치인들이 여전히 부정한 돈으로 표를 사려는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07년 11월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환영 만찬에 초대된 박 회장은 베트남 화력발전 사업 허가를 받으려고 노 대통령에게 “서기장에게 잘 말씀해주십시오. 지난번 약속은 꼭 지키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보름 정도 지나 노 대통령은 박 회장에게 전화로 “우리 애들이 사업을 한다고 하는데 지금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부정한 청탁과 특혜를 매개로 돈이 오간다. 이런 음습한 비리 처단이 검찰의 숙명이다. 그 대상에는 예외가 없다.

노 전 대통령 수사를 계기로 물러난 이 전 부장은 “검사는 범죄 혐의가 있으면 그 사람이 누구든지 수사해야 한다. 그것이 검사의 소명”이라고 일갈했다. 진영 논리가 횡행하고 수사에 프레임을 씌우는 공격이 거셀수록 검찰의 진실 규명 노력도 배가돼야 한다. 전제 조건이 있다. 수사권과 기소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검찰이 자신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중립과 수사 독립성을 사수해야 한다. 권력에 휘둘리면 선택적 수사와 기소를 하게 되고, 이는 중립성과 공정성을 심대하게 훼손한다. 이로 인해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한 정치권의 압박에 더욱 휘둘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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