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세월 무색하게 하는, 이경규의 유연성[스경연예연구소]

하경헌 기자 2023. 4. 1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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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이경규. 사진 스포츠경향DB



방송인 이경규는 개그맨, 예능인 등 기타 수식어보다는 ‘예능 대부’로 불린다. 1981년 MBC 개그콘테스트로 데뷔한 이후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활동했는데, 그 경력에 비해 너무도 활동이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흔히 40년이 넘는 방송인들이 부업을 하며 조용히 지내거나, 어느새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지만, 이경규는 그렇지 않다.

그의 그러한 롱런에는 기본적으로 재미를 잡아내는 감각, 다채로운 캐릭터 소화력, 연기력 여러가지가 있지만 ‘유연성’에 가장 큰 방점을 두고 싶다. 이경규는 또 생각하지 못한 변신을 통해 안방에 신선함을 몰고 왔다.

지난 18일 첫 방송 된 ‘뭉뜬 리턴즈’의 새 에피소드는 개그우먼 박미선과 조혜련, 신봉선 그리고 가수 노사연 등 네 명의 ‘언니’들이 베트남으로 떠나는 여행기를 담았다. ‘뭉뜬’(뭉쳐야 뜬다) 시리즈는 원래 김용만, 김성주, 안정환, 정형돈 등 4인방의 전유물이었지만 이번 에피소드를 통해 확장을 꾀했다.

방송인 이경규 JTBC 예능 ‘뭉뜬 리턴즈’ 출연 장면. 사진 JTBC



놀랍게도 네 명의 후배, 친구가 이경규를 모시고 가는 여행을 상상할 수 있지만, 이 여행은 이경규의 ‘수발기’를 다루고 있다. 개그우먼 중에서는 기가 세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박미선, 조혜련, 신봉선과 함께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왕년에 호흡을 맞추던 노사연까지, 식성도 취향도 까다로운 이들의 수발을 까다로운 이미지의 이경규가 맡게 됐다.

하지만 이러한 의외의 조합은 예상됐던 불협화음을 만들면서 예상외의 재미를 만들어냈다. 늘 호통을 치고, 투정만 부렸던 이경규가 여성 연예인 4인방의 취향을 맞춰야 하는 수세에 몰렸기 때문이다. 이경규는 음식도 자신이 하고, 짐도 맡으려 애를 썼지만 마음대로 잘되지 않아 사고를 쳤고 이러한 모습은 40년 된 예능인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했다.

방송인 이경규(왼쪽)의 JTBC 예능 ‘뭉뜬 리턴즈’ 출연 장면. 사진 JTBC



이경규의 안목과 유연성은 원래 유명했다. 버라이어티와 콩트쇼가 유행했던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쳐 2000년대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대가 오자 ‘남자의 자격’으로 스며들어 유행을 이끌었고, 2010년대 관찰 예능의 시대가 오자 ‘개는 훌륭하다’ ‘아빠를 부탁해’ ‘도시어부’ 등의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가 “나중에 예능의 끝이 될 것”이라고 했던 다큐멘터리 스타일은 이미 관찰 예능의 형식으로 예능의 대세가 됐고 그가 누워서 방송하겠다고 하면 ‘눕방’, 개와 함께하겠다고 하면 ‘견방’이 됐다.

방송인 이경규가 출연한 웹 예능 ‘RE경규가 간다’ 포스터. 사진 스포츠경향DB



최근에는 유튜브를 비롯한 뉴미디어가 방송의 선봉에 서자 유연하게 흐름에 빠져들었다. 지난해 연말 웹 예능 ‘RE경규가 간다’를 통해 카타르월드컵 현지 분위기를 전할 때 그가 택했던 파트너는 기성 연예인이 아닌 여행 유튜버 ‘오킹’이었다. 그는 또한 최근 김태호PD가 만든 제작사 ‘TEO’의 유튜브 크리에이터 회의 콘셉트의 프로그램 ‘테오 유튜브 총회’에도 출연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무한도전-예능 총회’ 특집 당시의 화려한 의자에 앉아 있으면서도 까마득한 후배들과 한 치도 밀리지 않는 재기 대결을 벌였다. 적당히 ‘꼰대’처럼 거들먹거리다가도 후배가 멘트를 치고 들어오면 멍하니 당해주는 모습은 ‘액션’과 ‘리액션’에 능한 예능고수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여실하게 보여줬다.

방송인 이경규(왼쪽에서 네 번째)가 출연한 웹 예능 ‘테오 유튜브 총회’ 한 장면. 사진 TEO



또한 이 자리에서는 그는 조만간 유튜브 채널을 개설할 것이라며 “800만”을 구독자수로 호언장담해 새로운 도전에 나설 것임을 밝히기도 했다.

사실 이런 발언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환갑이 넘은 이경규의 나이와 40년이 넘은 그의 경력을 따지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그는 항상 호통을 치고, 권위적인 것 같지만 누구보다 후배를 챙기고, 현장의 공기에 민감하며 상황에 따라 모습을 유연하게 바꾸는 예능인이었던 셈이다.

데뷔 40년이 넘은 방송인이 아직도 새로운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뭉뜬 리턴즈’의 이경규 모습은 그의 ‘롱런’ 이유를 밝혀주는 증거 영상과도 같았다. 유재석도, 강호동도, 신동엽도 있지만. 이경규는 이경규다. 그의 길은 여전히 독보적이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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