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급 킬러 전도연도, 블랙요원 장혁도 결국 이들 앞에선 옴짝달싹 못하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외형은 사람 목숨 몇 개쯤 쉽게 처리해버리는 액션 장르물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가족극에 가깝다?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길복순>에 이어 새로 시작한 tvN 월화드라마 <패밀리>는 공교롭게도 비슷한 맥락을 갖고 있다. 하나는 킬러이고 다른 하나는 국정원 요원이지만, 어쨌든 그 정체를 가족에게 숨기고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길복순>과 <패밀리>는 장르가 다르다. <길복순>이 칼과 총과 도끼가 날아다니는 본격 액션물이라면 <패밀리>는 한 회에 총이 한 번 정도 등장하긴 하지만 그보다는 끝없는 이 권도훈(장혁)네 가족의 장광설과, 일터의 정체를 숨기고 있어 말 못하는 간극 때문에 생겨나는 시트콤에 가까운 가족 코미디가 그 주력 장르다. 그래서 색깔이 확연히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작품에는 공유하고 있는 요소들이 있다.
예를 들어 <길복순>과 <패밀리>의 포스터는 닮은 구석이 있다. <길복순>의 포스터에서 길복순(전도연)이 한 손에는 도끼를 다른 한 손에는 마트에서 장 본 봉투를 들고 있는 것처럼, <패밀리>의 포스터에서 권도훈(장혁) 역시 한 손에는 권총을 다른 한 손에는 식재료가 든 봉투를 들고 있다. 두 인물의 이중생활(?)을 표현한 포스터들이다.
사실 이러한 요원(스파이든 국정원이든 킬러든)이지만 정체를 숨긴 채 이중생활을 하는 이야기는 이미 <트루 라이즈>나 <스파이> 같은 영화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내 뒤에 테리우스> 같은 작품에서 시도된 바 있다. 그러니 새로울 건 없는 소재다. 그런데 K콘텐츠에서 그리는 요원들의 이중생활에는 하나의 일관된 특징이 있다. 그건 일과 가정을 그리는데 있어서 그것을 마치 두 개의 패밀리처럼 다룬다는 점이다.
<길복순>에는 MK ENT라는 이벤트 회사를 가장한 킬러 회사가 등장한다. 게다가 살인청부업체들은 이 회사를 중심으로 연대하며 하나의 패밀리 같은 모습을 보인다. 저마다의 룰이 있지만 선배와 후배가 나뉘고 명령에 복종하며 불복하거나 룰을 어길 시에는 죽음의 대가가 따르는 패밀리. 일로서 그 일을 하게 된 길복순은 그 패밀리에서도 가장 상위 그룹으로 대표 차민규(설경구)와 거의 친구 같은 관계를 유지한다.
<패밀리>에도 이런 관계가 등장한다. 권도훈과 오천련 부장(채정안)의 관계가 그렇다. 집에 국정원 블랙요원이라고 말할 수 없는 권도훈은 중요한 미션 때문에 집안 대소사에 참석하지 못하게 될 때마다 오부장 탓을 한다. 그래서 도대체 오부장이 누구냐고 아내 강유라(장나라)가 참다못해 그를 집으로 부르고 그렇게 권도훈의 가족에게 오부장이 소개되면서 이 가족에 변화가 생겨난다. 오부장이 마치 자기 가족이나 되는 듯이 권도훈 가족들을 챙기기 시작하자 강유라와 묘하게 부딪치게 되는 것.
길복순이나 권도훈이나 모두 두 개의 패밀리 속에 들어가 있고, 이중생활을 하기 때문에 이 양자 사이에 벌어지는 마찰과 갈등을 겪게 된다. 길복순은 킬러 하나쯤 쉽게 죽일 수 있는 인물이지만 딸 재영(김시아) 앞에서는 서툴기만 한 싱글맘이다. 권도훈 역시 일발백중의 스나이퍼로 미션에서 맹활약하지만 아내 강유라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남편이다. 일과 가정. 그 양자 사이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은 두말할 것 없이 우리네 샐러리맨들의 자화상 그대로다.
일터조차 '패밀리'임을 강조하는 이 특징은 한국적인 요소다. 외화에서 일은 일이고 가정은 가정이라는 그 분리된 지점이 명확하다면, 한국 콘텐츠에서 일터의 모습은 종종 유사가족의 형태처럼 그려지곤 한다. 실제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이라 말하면서 일터 바깥에서도 일을 하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곤 하는 그런 모습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우리네 일터에 남아있는 모습들이다.
그래서 <길복순>이든 <패밀리>든 그 장르가 확연히 달라도 우리가 주목하는 건 겉으로 드러나는 액션물이나 스파이물이 아니라 그 이면에 깔려 있는 가족극이다. 패밀리라 주장하지만 그저 일터일 수밖에 없는 저들의 틈입에 의해 위협받는 가족의 서사가 그것이다. 심지어 이러한 목숨을 거는 일을 하는 이들이 굳이 등장하는 이유는, 일터의 강박에 의해 희생되기도 하는 가정의 문제가 저 살풍경한 바깥일만큼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기 위함이다. 시원한 액션이나 빵빵 터지는 웃음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포장지를 벗겨내면 여지없이 보이는 것. 일만큼 중요한 가족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넷플릭스,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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