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는 ‘가족돌봄청년’ 5명 중 1명은 미성년자…월소득 100만원 미만이 절반
김모씨는 어머니의 암 투병이 시작되자 학업을 포기했다. 원하던 대학에 진학하면서 학교 가는 것이 즐거웠고 공부를 하면서 어려운 가정 형편에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꿈도 생겼지만 현실은 녹록지가 않았다. 취업 준비를 시작해야 할 때쯤 어머니 간병이 시작돼 그동안 모아둔 돈마저 치료비로 썼다. 그의 20대는 가족을 돌보느라 꿈을 키울 시간은 없었다.
서울에 사는 가족돌봄청년(영케어러) 5명 중 1명은 미성년자인 것으로 추정되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김씨와 같은 대학생까지 포함하면 3명 중 1명이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돌봄 부담을 안은 상태다.
서울시는 14~34세 청년·청소년 2988명을 설문·표적집단면접(FGI)으로 조사해 약 900명의 가족돌봄청년(영케어러)을 발굴했다고 19일 밝혔다.
이들 가운데 중·고등학생(16%)과 학교밖청소년(3%)이 약 20%를 차지했다. 대학생(12%)까지 합치면 30%에 달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12월부터 지난달까지 서울 시내 종합병원과 동주민센터, 학교, 청년활동지원센터 등 대상자가 있을 만한 곳에 조사원이 나가 설문하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복지·청년 관련 홈페이지 등에서 다각도로 진행됐다. 복지 사례 관리 대상자 중에서도 찾았다.
참여자 가운데 자신이 돌보는 대상이 있거나 생계 부담을 지고 있다고 답한 900명을 추린 것이다. 서울시 조례는 장애와 정신·신체 질병 등을 가진 가족을 돌보는 14~34세 사람을 가족돌봄청년으로 규정한다.
가족돌봄청년 중 여성의 비중은 66%였다. 성별에 따른 돌봄 쏠림 현상은 영케어러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들이 돌보는 대상은 할머니(28.2%)와 아버지(26.1%), 어머니(25.5%) 순으로 많았다. 중·고등학생과 학교밖청소년은 조부모 비중이, 대학생과 성인은 부모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남성은 아버지(32.5%)와 어머니(26.2%)를, 여성은 할머니(29.6%)와 어머니(25.1%)를 주로 돌봤다.
부모가 모두 생존한 경우(62%)가 많았으나 생계 등을 이유로 가족 돌봄은 청년이 부담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영케어러 개인의 월 소득은 100만원 미만인 경우가 45%로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월 300만원 이상 버는 경우는 7%에 그쳤다.
영케어러들은 돌봄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3.22점, 5점 척도)과 주거비 부담(3.22점)이 가장 크다고 답했다. 돌봄 자체의 어려움, 자신의 정신 건강 관리·문제(각 3.13점)에 대한 지원도 요청했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박모씨는 가족 돌봄을 시작한 후 정신과를 다니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할머니의 우울증이 전가된 느낌”이라며 “돌아가시면 그 죄책감도 다 끌어안을 것 같은 부담감이 있다”고 전했다.
특히 돌봄 대상자와 청년의 성별이 다르면 더 큰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지원 대상인 점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76.4%)가 대부분으로, 가족돌봄청년의 개념이나 본인이 가족돌봄청년에 해당하는지를 이번 조사를 통해 알게 됐다는 참여자가 많았다. 부모가 아프지는 않지만 경제력이 없어 대신 생계를 책임지는 청년들이 특히 자각하지 못했다.
서울시는 이번 조사를 바탕으로 성장해야 할 생애주기에 가족 구성원을 돌보며 생계 부담을 진 가족돌봄청년을 제도권 내 복지 대상으로 편입할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가족돌봄청년 지원 전담기구(가칭)를 운영해 발굴부터 지원 정책에 연계해 관리하는 등 단계별 지원 체계를 갖춘다.
김상한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은 “복지 사각지대에서 있는 가족돌봄청년이 사회의 관계망 안에서 건실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관계 기관과 협력해 지원하겠다”라고 말했다.
https://www.khan.co.kr/national/health-welfare/article/202304021439001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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