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깨버린다” 1년 간 폭언·폭행 당한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실업급여 못 받는다 [끝까지 간다]
김소영 노무사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퇴사는 기한 없어”
경기도의 한 중소기업에 재직했던 20대 청년근로자 ㄱ씨가 대표로부터 1년 이상 욕설 및 폭행 등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음에도 별다른 조치가 없어 논란이다. 한국도로공사와 협업해 장애인 차량에 무상으로 하이패스 단말기 지원 사업을 한 이 회사는 당시 대표의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됐지만 과태료 대상에서 제외됐고, 피해자는 실업급여조차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2020년 6월 하이패스 유통업을 하는 중소기업에 입사한 ㄱ씨는 이듬해인 2021년 초부터 2022년 9월까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제보했다. ㄱ씨는 사무실이 정리가 안 되어 있다는 이유로, 말대꾸를 한다는 이유로 대표가 폭언 및 폭행을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정리정돈 안 돼 있다는 이유로 뺨 때려···경찰 출동했지만 일단락
2021년 2월 설 연휴가 끝나고 출근한 ㄱ씨는 ㅇ대표에게 폭언을 들었다. 사무실 내 정리정돈이 잘 안 돼 있었다는 이유였다. 사무실 청소·정리정돈은 전직원의 몫인데 남자라는 이유로 제보자에게 강요했고, 책임을 물어왔다고 ㄱ씨는 설명했다. 제보자의 설명에 따르면, 그날따라 대표가 유독 화를 심하게 내더니 갑자기 자신의 뺨을 때렸다고 주장했다. 너무 놀라 맞고도 아무런 대응을 할 수 없었던 ㄱ씨는 대표가 쇠망치를 들고 와 “머리를 깨 죽인다”며 내려치려는 행위에 놀라 사무실 밖으로 도망쳐 경찰에 신고했다. ㄱ씨는 “경찰이 왔는데 대표는 밖으로 나간 뒤였다. 경찰이 대표님과 통화했는데 폭행사실을 인정했다고 전해 들었다”며 “경찰이 고소장 접수를 하겠느냐고 묻더라. 만약 고소장을 접수하게 되면 이 회사를 못 다니게 될 것 같아 다시는 이런 일이 또 발생하지 않게 경고를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사건은 그날 밤에 벌어졌다. 경찰신고가 있었던 당일 저녁, ㅇ대표, 대표의 동생이자 계열사 대표였던 ㄴ씨가 ㄱ씨에게 대표의 집으로 오라고 연락했다. ㅇ대표의 집에 모인 이들은 제보자에게 “경찰에 신고한 게 사실이냐, 어떻게 경찰에 신고할 수 있느냐, 죽고 싶냐”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ㄱ씨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강요했다. 끝내 무릎을 꿇지 않은 ㄱ씨에게 이들은 이후 더욱 가혹한 폭언을 일삼았다.
대표의 폭언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폭언에 이어 머리를 밀치거나 물리적 폭력이 반복되는 것을 참다못한 ㄱ씨는 폭력은 아닌 것 같다며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그 말을 들은 ㅇ대표는 '젊은 놈이 대든다'며 ‘야근식대 지급을 안 하겠다’, ‘내일 이력서를 다시 써오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폭언과 폭행에도 제보자가 퇴사하지 못한 이유는 청년내일채움공제 사업의 조건 때문이었다. 재직 당시 청년내일채움공제 사업에 신청한 ㄱ씨는 2년 만기 기간을 채우지 않으면 공제금을 받지 못하고, 이직을 하더라도 재가입이 안 된다는 사업 담당자의 안내를 받았기 때문이다.
청년내일채움공제 사업은 고용노동부에서 청년근로자를 대상으로 중소기업에서 경력을 쌓는 청년들을 위한 제도다. 청년근로자가 중소기업에서 2년 이상 근속할 경우 청년 적립금 300만원, 기업기여금 300만원, 정부지원금 600만원이 각각 적립돼 만기공제금액 12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제보자의 사례처럼 청년근로자가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다. 2021년 이 제도에 가입한 ㄱ씨는 수원고용복지플러스센터 담당자와의 통화에서 “(청년내일채움공제 담당자와의 통화에서)회사에서 폭언을 당해 너무 힘들다. 퇴사를 하면 공제금을 받을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만기를 채우라는 답변을 듣곤 참고 다녔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제보자는 직장 내 괴롭힘이 지속됐지만 청년내일채움공제 만료 기한인 2022년 9월까지 근무했다.
2021년 이 제도를 신청한 청년근로자가 퇴사할 경우 적립된 금액의 일부인 ‘중도해지 환급금’만 받을 수 있었다. 청년근로자가 만기공제금액을 받기 위해서는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공제 기간을 채우기 위해 부당함을 참고 견뎌야 했다.
김소영 노무법인 신유 대표 노무사는 “2022년부터 고용노동부가 현장 의견을 받아들여 청년내일채움공제에 가입한 청년근로자가 직장 내 괴롭힘을 받아 퇴사할 경우 그동안 적립된 금액을 전부 지급하는 것으로 개선됐다”며 “기업의 귀책사유로 해지된 경우, 재가입 요건도 까다로웠는데, 이것도 바뀌었다. 기존 ‘퇴사 후 6개월 이내’ 재취업이 필수였지만, 2022년부터 ‘퇴사 후 1년 이내 재취업’하면 재가입이 가능하도록 변경됐다”고 말했다. 이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청년근로자가 중도해지를 하려면 근로자 본인이 중도 해지 사유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선택하고, 회사도 동일한 사유를 선택하면 처리가 가능하다”며 “다만 소속 회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 신고 및 인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직장 내 괴롭힘 인정 받았지만 별다른 조취 없어
ㄱ씨는 퇴사 이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해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별다른 조취는 없었다. 이유는 제보자가 확보한 녹취 증거 파일이 2021년 2월에서 4월분까지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2021년 10월 14일 개정돼 저촉범위에서 벗어난다는 이유였다. 이전 행위에 대해 과태료 부과 등 어떠한 처벌도 어렵다는 답변을 받은 제보자는 이 부분도 제도의 허점이라고 꼬집었다.
실업급여 신청도 불발됐다. 퇴사 시점과 직장 내 괴롭힘의 증거분(2021년 2~4월)의 시점이 차이가 난다는 이유였다. 제보자는 대표가 녹음 사실을 안 뒤 회사 내 휴대폰 반입을 하지 못했던 2021년 5월부터 2022년 9월까지도 괴롭힘은 지속됐다고 설명했다.
제보자는 “2021년 2월부터 4월까지 증거 확보를 위해 녹음을 했는데, 어느 날 대표의 동생이 혹시 녹음 하느냐고 묻더라. 그래서 맞다고 했다. 그 이후로 사무실에 들어올 때 휴대폰을 밖에 놓고 들어오라고 해 녹음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제보자는 수원고용복지플러스센터 담당자와 수차례 실업급여 면담을 했지만 실업급여 대상자에서 제외됐다. 청년내일채움공제 가입 기간 중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도 퇴사를 못하느냐는 질문에 실업급여 담당자는 “(퇴사는) 근로자가 선택하는 것”이라며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기간이 지나면 실업급여 신청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또 다른 담당자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실업급여를 신청할 경우 사업주 확인서를 받아야 하는데, 대표자가 가해자면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다시 노동청에 진정을 넣어 확인받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자발적 퇴사는 실업급여 수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다만, 임금체불이나 근로시간 초과, 근로자 질병, 직장 내 괴롭힘 등은 자발적 퇴사라 하더라도 실업급여 수급 대상이 될 수 있다. 여기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발적 퇴사를 할 경우 실업급여 신청 기한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소영 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자발적 퇴사의 경우 실업급여 신청기한은 별도로 없다. 하지만 최근 실업급여 부정수급사례가 늘어나면서 기관에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퇴사했는지를 더 꼼꼼히 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한편, 제보자가 주장한 내용과 관련해 전 직장에 입장을 물었지만 답변을 들을 순 없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 [끝까지 간다]는 직장 내 괴롭힘 등 억울하고 불합리한 일을 겪고 있는 분들의 제보를 받습니다. 끝까지 취재해 세상에 알리겠습니다. 제보는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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