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0.05㎜ 분말→가스터빈 핵심부품 ‘뚝딱’…3D프린팅, 두산의 新먹거리로 우뚝

2023. 4. 1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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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소재 ‘두산에너빌리티 3D프린팅팹’ 가보니
2021년 국내 최대 규모 3D프린팅 전용 팹 구축
가스터빈 연소기 노즐, 독자 양산 성공
1600개 이상 부품 제작…“국가대표 3D프린팅 기업될 것”
두산에너빌리티 창원 공장에서 3D프린터로 제작 중인 부품의 모습. [두산에너빌리티 제공]

[헤럴드경제(창원)=김은희 기자] #. 0.05㎜ 크기의 연회색빛 금속분말이 3차원(3D) 프린터 빌드플레이트(Build Plate) 위에 머리카락 두께로 얇게 깔리자 레이저 빔은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고출력 레이저에 분말은 녹았다가 이내 굳었고 빠르게 움직이는 레이저의 길을 따라 진한 회색 자국으로 남았다. 레이저쇼를 하듯 전체 면을 정신없이 쏘아대더니 끝.

1분도 채 걸리지 않아 한 개의 층이 쌓였다. 단면만으로 3차원 형상을 쉬이 예상할 수는 없었지만 모니터에 띄워둔 3D 모델링 도면을 보고 나니, ‘이런 단면이 층층이 쌓여 하나의 제품이 되는구나’는 생각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육안으로도 확인이 쉽지 않은 금속분말이 15~20㎝ 크기의 가스터빈 핵심 부품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이다.

헤럴드경제가 지난 11일 찾은 경남 창원시 성산구 소재 두산에너빌리티 3D프린팅 팹(FAB·제조공장)에선 3D프린터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금속분말을 깔고 레이저를 쏘고 남은 분말을 제거하는 작업 자체는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높이 40나노미터(㎚·10억분의 1m)의 층을 쌓아 올리다 보니 제품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짧게는 나흘, 길게는 열흘 이상 걸리는 장기전이다. 자동화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만큼 현장 직원은 3D 모델링 작업 등을 하며 틈틈이 프린팅 상황을 점검할 뿐이었다.

농구장 약 3개 규모의 팹에는 크고 작은 3D프린터 8대가 설치돼 있었다. 0.5㎜ 두께의 작은 부품부터 최대 가로 80㎝·세로 40㎝·높이 50㎝의 부품까지 폭넓게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이다.

두산에너빌리티 창원 본사에 있는 3D프린팅 전용 팹 내부의 모습. 김은희 기자

대형 플랜트 전문 기업 두산에너빌리티와 3D프린팅은 어쩐지 의아한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3D프린팅은 소재 제작 사업의 일환으로 두산에너빌리티가 적극 추진 중인 신사업 중 하나다.

실제 출발은 주력 사업인 가스터빈의 ‘부품 선진화’였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가스터빈 성능 향상을 위해 혁신적인 설계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2014년 3D프린팅 기술을 도입했다. 그 과정에서 사업의 성장 가능성을 읽었고 2021년 국내 최대 규모의 3D프린팅 전용 팹을 구축하는데 이르렀다.

한정민 두산에너빌리티 기술혁신연구원 수석은 “중공업 사업을 수행하며 축적한 금속소재기술 노하우와 데이터로 3D프린팅 기술 역량을 빠르게 향상시킬 수 있었다”며 “해외 3D프린팅 기업과 비교해도 패스트팔로워(빠른 추격자)로 잘 가고 있고, 이제는 퍼스트무버(선도자)로 나아갈 때”라고 말했다.

3D프린팅은 원료를 여러 층으로 쌓거나 결합해 3차원 물체를 만들어 내는 기술로 정식 명칭은 적층 가공(AM)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AM 중에서도 금속분말을 레이저로 녹이는 PBF(Powder Bed Fusion) 방식 설비를 운용하는데 정교하고 섬세한 형상 조형이 가능해 금속제품 제작에 적합하다.

지난 11일 찾은 경남 창원 두산에너빌리티 3D프린팅 팹에서 한정민 수석이 3D프린팅 공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은희 기자
두산에너빌리티 3D프린터로 제작 중인 제품. [두산에너빌리티 제공]

팹은 회사가 내건 비전에 따라 ‘만들 수 없는 것을 만들어 내고(Make the unmakable)’ 있었다. 가공틀이 내부로 접근할 수 없는 닫힌 형태나 직선·곡선을 넘나드는 자유 형태처럼 기존 기계가공으로는 제작이 불가능한 복잡한 형상을 구현하는 것이다.

3D프린팅의 강점은 성능향상과 경량화, 단가 절감이다. 부품을 통합·제작할 때 검사, 관리 등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기존 형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특화 설계는 성능을 높인다. 비행체의 경우 경량화를 최대 55%까지 달성하기도 했다.

한 수석은 “각 부품의 요구에 따라 강점이 달라지는데 지금은 이들 효용성이 ‘오어’(or)로 묶여있다면 앞으로는 ‘앤드’(and)로 묶일 것”이라고 했다.

두산에너빌리티 창원 본사에 있는 3D프린팅 전용 팹 내부 모습. 중형 3D프린터 앞으로 특수 소화기가 놓여 있다. 김은희 기자

두산에너빌리티는 그동안 1600개 이상의 부품을 만들었고 그중 400개 이상을 소규모로나마 양산했다. 프로토타입(시제품)도 1200여개 가지고 있다.

대표작은 단연 ‘가스터빈 연소기 노즐(관)’이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설계 개선과 공정 파라미터 개발 등을 수행하고 독자적으로 양산하고 있는 첫 구조 부품이다. 3D프린팅 제조 사업을 시작하는 계기가 된 기념비적 부품이기도 하다.

3D프린팅을 통해 활용 가능한 소재도 알루미늄, 티타늄, 니켈, 스테인리스 등 총 11종으로 다양하다. 프린터 추가 구비와 함께 소재 공정을 개발해 2025년에는 양산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3D프린터로 제작한 제품의 구조 안정성 확인하기 위해 3D 스캔을 하는 장면 [두산에너빌리티 제공]

두산에너빌리티는 자체 가스터빈 부품 외에도 항공·방산·우주 분야 굴지의 대기업, 연구소 등과 협업해 부품을 제작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국산 전투기 시제기에 들어가는 부품을 공급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미 전체 제작 물량의 절반 이상은 사외 제품이 차지한다. 우주 발사체나 항공기, 자동차 등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들어 공급하는 게 두산에너빌리티의 목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지난해 말 세계 1위 금속 3D프린터 기업인 독일 EOS와 기술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사업 기반 다지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 3D프린팅 기업으로도 역량을 키워나가겠다는 구상이다.

두산에너빌리티 관계자는 “설계, 소재, 공정, 생산, 품질관리 등 모든 분야에 있어 국내 최고 수준의 3D프린팅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며 “앞으로 경쟁력 있는 제품을 선보이며 3D프린팅 소재 제작 사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eh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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