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바지사장 앞세운 '빌라 사기'…세입자만 몰라 '발동동'
세입자 보증금으로 대출이자로 돌려막아
공인중개사 " 짜고 치는 경우 알 방법, 사기 증명 방법 없어"
'전세보증보험' 보장 못해 주의해야
[아이뉴스24 김동현 기자] 수백, 수천 채의 건물을 소유한 '빌라왕' 일당에 이어 최근 '건축왕' 사건까지 벌어지는 등 전세사기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세입자들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이에 전세사기에 대한 해결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정치권 역시 대책 마련을 논의 중이나 교묘한 전세사기의 특성상 이를 방지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 빌라왕 앞세운 '판'…세입자만 모른다
사회초년생들을 비롯해 전셋집을 구하고 있는 사람들은 '빌라왕'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이전부터 '부동산 컨설팅 전세 사기' 수법에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이들이 말하는 사기 수법은 겉으로 '빌라왕'으로 알려진 바지 사장들, 그들 뒤에 있는 분양대행업체(컨설팅 업체)가 진짜 배후 중 하나다.
컨설팅 업체들은 원하는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집을 팔아주는 대신 그만큼의 '리베이트'를 요구하며 임대인들과 접촉해 매물을 내놓는다. 이후 전셋집을 구하기 위한 세입자들이 찾아오면 공인중개사들이 '전세보증보험'을 강조하며 세입자들을 안심시킨 뒤 계약을 유도한다.
또 매물 가격이 정해지지 않은 건물들에 대해 외부 감정 평가사가 전세보증보험 가입 조건인 '건물가격=공시지가 150% 이상'을 충족시킬 만큼의 금액으로 건물 가격을 평가한다. 조건을 충족시켜 매물이 전세보증보험에 가입되면 세입자들은 거액의 보증금을 내고 계약을 체결한다.
그러나 곧 임대인이 새로 바뀌게 된다. 새 임대인은 대개 보증금을 돌려줄 여력이 없거나 연락이 잘 닿지 바지 사장들, 즉 '빌라왕'으로 알려진 이들이다.
공인중개사, 감정평가사, 기존 임대인, 새로운 임대인. 이들 모두 분양대행업체가 사전에 섭외해 하나의 '판'을 짜놓은 것이다.
세입자의 보증금은 분양업체의 배분 하에 기존 임대인, 공인중개사, 감정평가사의 주머니로 돌아간다. 명의만 넘겨받아 형식적인 건물의 주인이 된 새로운 임대인, '바지 사장'에게도 수백만원이 돌아간다.
바지 사장들에게서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들은 이후 전세보증보험을 믿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보증금 대위 변제 신청을 한다. 하지만 '대항력 및 우선변제권 상실' '보증효력 미발생' '보증사고 미성립' 등 다양한 이유로 보증금을 받지 못한 사례가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대위 변제 과정 또한 간단하지 않아 세입자들은 애를 태울 수밖에 없다.
◆세입자 보증금으로 대출이자로 돌려막은 '건축왕'
최근 벌어진 전세사기 사건의 주범 '건축왕' 역시 바지 임대인을 내세우고 공인중개사들을 운영하며 범행을 저질렀다.
종합건설업체 시공사를 운영 중인 건축왕 A씨는 공인중개사나 중개보조원 명의를 빌려 토지를 사들인 뒤 자신의 시공사를 통해 1~2개 동만 건물을 짓는 저층빌라 등을 지었다. 이후 준공이 완료되면 이를 담보로 은행에서 주택담보 대출을 받았고 동시에 해당 건물에 전세를 놓아 세입자를 받았다.
A씨는 대출금과 세입자들의 전세보증금 등으로 다시 건물을 신축했고 이러한 방식으로 2천700여채의 주택을 보유하게 됐다.
그는 또 공인중개사들을 고용해 자신의 건물 중개를 전담시켰다. 공인중개사들은 세입자들에게 A씨가 건물 실소유주인 사실을 숨긴 채 계약을 유도했으며 근저당권이 설정된 건물에 대해선 보증금을 대신 갚아준다는 이행각서를 작성하며 세입자들을 안심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이들의 급여 역시 세입자들의 전세보증금 등에서 충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부동산 경기 악화와 금리 상승 등 영향으로 A씨는 대출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게 됐고 지난해 들어 그가 소유한 인천시 미추홀구 주택들이 경매에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A씨는 자신의 주택이 경매에 넘어갈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계속해 공인중개사들을 통해 세입자를 받아온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현재 세입자 161명으로부터 전세보증금 125억원을 가로채 사기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으며 그의 딸 역시 바지 사장으로 범행에 가담해 경찰에 불구속 입건된 상태다. A씨의 행위로 인해 A씨 건물에 전세로 살던 젊은 청년 3명이 최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에 따르면 현재 조사 중인 사안을 더할 경우 약 500억원의 피해 금액이 발생했으며 피해자 역시 700명에 달한다.
◆ "실효성 없는 정부 대책"…근본적 방안 나올까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자 피해자들은 정부의 구체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65개 시민사회단체 등으로 구성된 '전세 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는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피해가 커진 배경에는 정부 정책 실패가 있다.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모두가 잠재적인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한 공인중개사 B씨 역시 "세입자 입장에서 전세사기가 우려된다면 피하는 게 최선이다. 판을 짜고 치는 경우와 같은 사건은 세입자 입장에서 알 방법도, 막을 방법도, 사기임을 증명할 방법도 없다"라며 정부의 구체적인 예방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월 '임대인 선순위 근저당 설정금지' '보증가입 대상 전세가율 및 공시지가 조정' '사기 가담 시 처벌 강화' '공인중개사 의무 강화' '임대인 세금 체납 여부 공개 의무화' 등의 내용이 담긴 전세사기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다만 이 같은 대책 또한 계약 체결 이후 임대인을 바지 사장으로 변경하는 방식의 사기까지 예방할 수는 없는 등 전세사기를 100% 방지할 방안은 아니다.
또 정부가 피해자들을 위해 내놓은 저금리 전세자금 대출과 긴급 주거 지원 등 제도 역시 실효성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저금리 전세자금 대출은 소득·자산 기준을 충족하는 무주택 피해자가 새로운 전셋집(보증금 최대 3억원 이하)에 입주하는 경우에만 받을 수 있어 요건이 까다로우며 대출·주거 지원을 받기 위한 피해 확인서 역시 임차 주택의 경매 진행 등 여러 요건을 충족해야 발급된다.
긴급 주거 지원 제도 역시 주택 규모, 생활 여건 등을 이유로 실제 입주하는 피해자들이 많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건축왕' 사건이 발생한 인천시를 기준으로 긴급 주거 임대주택 238호 가운데 입주한 호수는 단 8호(3.36%)에 그친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8일 국무회의에서 원 장관으로부터 경매 일정의 중단 또는 유예 방안을 보고받고 이를 시행하도록 했다고 대통령실 이도운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밝혔으며 원 장관은 오늘(19일) 세부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김동현 기자(rlaehd3657@inews24.com)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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